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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원 May 06. 2022

아버지의 장례를 맞이 하고, 마치며.

맞이 하고,


 월요일 퇴근 전 어머니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다급하신 목소리로 지금 어디냐고 물어보셨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셨습니다. “해원아. 아빠가 쓰러지셨어.”

처음 든 생각은 아버지가 넘어지셨나? 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침에 어머니와 산책과 출근 전 저와 대화도 나눴고. 하루 전에도 테니스를 몇 게임이나 치고 오셨을 정도로 건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였는지 아버지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오가실 때도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건강하셨기에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아버지는 1시간 반 만에 뇌경색 시술을 마치고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도 하셨었습니다. CT촬영을 하러 가는 길에 아버지를 뵌 게 그때가 쓰러지신 후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눌한 말투지만 대화가 가능했고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아버지가 “미안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이 호전되는 것 같던 아버지는 뇌졸중 집중 치료실로 옮겨지신 후 다음날 새벽부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시면서 뇌가 부어오르고 코마 상태에 빠지셨습니다. 분명 호전되고 있던 아버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시자 가족들은 그때부터 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을 잠도 못 자고 병원에서 기다렸지만, 아버지의 뇌는 손상이 많이 되었고, 그렇게 아버지 상태는 계속 안 좋아지셨습니다. 그리고 혈압이 많이 떨어지면서 병원에서 5일, 금요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만 69세 나이로 가족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마치며.


아버지는 참 좋은 선생님이셨나 봅니다. 정년퇴임을 하신지 8년이 지난 아버지의 장례식 동안 약 100여 명의 제자분들이 찾아주셨고, 제자들이 보낸 화환은 30개가 넘었습니다. 오시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전해주신 분들은 더 많았습니다. 5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한 나이에 제자분들이 아버지 가시는 길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연락을 못 드린 학교도 많았는데 정말 놀랍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저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최소 8년에서 많게는 35년 전의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온다는 게, 그리고 운다는 게 저에게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기억되는 선생님도 없기에.. 이해 되지를 않았습니다. 3일간 장례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제가 36년을 아버지를 잘 모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분명히 참 좋은 선생님이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의 가시는 길을 함께해주신 모든 제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참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문제아였고, 아버지는 학생부장을 오래 하셨지만 저를 많이 이해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커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저한테 뭐라 하면 아버지는 저와 멀어질 것 같아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늘 친구 같은 아버지였습니다. 영원히 아버지를 기억하며 어머니와 누나를 가장으로서 잘 챙기겠습니다. 그리고 아빠 보고 싶어, 사랑해.




추신

현재 아버지는 용인공원 아너스톤 3층 노블관 C관 0324 에 모셨습니다.

아너스톤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새래로 1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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