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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비 Dec 11. 2023

푸쉬킨의 진실한 역사 읽기 평민의 위대한 삶을 드러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 푸쉬킨”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구절이다. 여러 책이나 명언집에서 자주 눈에 들어온 명문장에 하나가 아닌가. 이 시를 쓴 사람은 바로 ‘알렉산드로 푸쉬킨’. 그는 러시아의 근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위대한 시인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그를 두고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일컫는다. 유명한 작가들로부터 “푸시킨 이후의 작가들은 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극찬을 받는 대문호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로 푸쉬킨은 1799년 모스크바 명문 귀족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외조부는 표트르 대제에게 속량받은 에티오피아 흑인 출신으로서 러시아 명문가를 이루었고 푸쉬킨은 큰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에 유모로부터 러시아의 설화, 민담과 민요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러시아 민중의 삶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또한 성인이 되어서는 자유주의와 농노 제도 및 전제정치를 공격하는 시를 발표하여 추방당하기도 했다. 


푸시킨의 <대위의 딸>(열린책들, 2006)은 작가의 배경과 사상이 고스란히 스며든 작품이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역사 소설이지만 왜곡와 축소, 희화화의 과정을 거쳐서 묘사되는 부분이 많다. 이는 러시아 민중의 삶을 드러내고 역사의 다른 면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승자의 기록이자 권력자 중심의 역사적 인식을 넘어서 당시 민중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위의 딸>은 18세기 러시아 농노혁명이 주요 배경이다. 당시 남편 대신 권력을 잡은 ‘예까쩨리나’ 여제는 계몽군주라고 자처했지만 자신과 귀족을 위한 정치를 했다. 끊임없이 크고 작은 봉기가 일어났고 그 중에 ‘가자끄’의 봉기가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이를 목격한 ‘뿌가쵸프’는 농민 봉기의 선봉장이 되었고 자신이 바로 살해된 ‘뾰뜨르 3세’라 주장하며 수많은 추종자를 모았다. 큰 세력으로 성장하여 오렌부르그 요새를 함락시키고 여러 지역까지 점령했지만 결국 1775년에 처형당했다. 


작품은 귀족의 아들인 ‘그리뇨프’가 군대에 입대한 후 뿌가쵸프 반란을 경험하며 ‘마리야’와의 사랑을 지켜내는 이야기다. 그리뇨프는 요새로 가는 도중에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었지만 어느 농부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착한다. 그는 사령관 ‘미로노프’ 대위의 가족과 친해지고 그의 딸 ‘마리야’와 사랑에 빠진다. 선임 장교인 ‘쉬바브린’은 두 사람의 관계를 시기하여 그리뇨프와 결투를 벌이기도 한다. 뿌가쵸프 반란군들이 쳐들어와 요새가 함락되었고, 사령관 부부는 처형되지만 그리뇨프는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쉬바르린의 밀고로 반역자가 된 그리뇨프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소설은 역사의 이면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승자의 기록이라고 일컫는 역사이지만 한 개인의 선택과 결정, 사소한 실수와 우연들이 겹쳐서 형성되는 부분도 있다. 권력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고 결정짓는 모습을 통해 역사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뇨프의 하인 ‘사벨리치’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하찮은 존재이지만 절대 절명의 순간마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시종일관 병약하고 의존적이었던 ‘마리야’가 감옥에 갇힌 그리뇨프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지를 발휘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인간을 성장시키는 사랑의 힘을 드러낸다. 술과 향락에 빠져 살았던 그리뇨프는 군인이 되었어도 규율을 어기는 어리숙한 모습이었지만, 사랑하는 ‘마리야’를 위해 위험에 직면하고 내적 갈등을 겪으며 성장한다. 그리뇨프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뿌가쵸프와 협상을 벌인다. 이로 인해 나중에는 반역자라는 죄까지 뒤집어쓴다. 소명의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뇨프는 자신의 명예와 안위를 포기한 채 끝까지 ‘마리야’를 지켜낸다. 


주인공은 그리뇨프이지만 작품의 제목은 <대위의 딸>, 마리야이다. 부모를 잃고 반란군 눈을 피해 숨어 지내면서 무기력했던 미리야. 혼란스런 역사적 사건 속에서 고통받았던 민중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그녀가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처럼, 작가는 평민들도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읽고 푸쉬킨을 알게 해준 시를 다시 떠올려보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그대’는 그 시대 농민들이 아닐까. 동시에 지금 우리, 일반 시민에게도 필요한 문장이다. “우울한 날을 견디면 /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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