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방황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켜주고 싶은 한 명의 파수꾼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민음사)
<호밀밭의 파수꾼> 제목에서부터 고전적이고 진중한 인상을 풍긴다. 예상과 달리 전학 간 학교마다 쫓겨나고 4번째 옮긴 학교에서도 위태위태한 16살 남자 고등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며 등장한다. 주인공 홀든은 ‘멍청이, 바보, 변태, 얼빠진’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교장선생님이 학부모들을 만날 때 부의 수준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거나, 학교 건물에 기부한 어른들이 다짜고짜 기숙사에 쳐들어와서 그 흔적을 찾으려고 소란을 피울 때 어김없이 튀어 나오는 불평불만의 욕들. 그러나 거칠고 불쾌한 욕지거리를 거두고 가만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가 비정상적이고 불안한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상이 그렇다는 판단이 들기 시작한다.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인생이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운동 경기와 같단다”라는 선생의 말에 주인공 홀든은 이렇게 일갈한다.
“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19쪽)
5과목 중 4과목 낙제를 받은 홀든은 어른들이 말하는 규칙에서 한참이나 벗어난다. 그는 답을 적어야 할 시험지에 그 과제 주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죄송하다는 정중한(?) 편지를 적는 학생이었다. 결국 그의 미래를 두고 걱정이 가득한 선생님과 면담을 하지만 그 와중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시험 주제가 아닌 다른 것이 더 궁금했다. 자신의 집 뉴욕 센트럴 파크 남쪽에 있는 연못이 얼어붙었는지가 궁금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오리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지가 알고 싶었다. 홀든은 왜 그랬을까?
1950년대 미국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시키는 일이야말로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홀든처럼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과 달리 자신보다 아닌 추운 겨울의 오리들을 더 염려를 한다. 그래서 오리가 어떻게 될지 어른들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고민을 하는 홀든을 더 염려하며 다그치기 바쁘다. 그때와 지금 비슷한 모습인 것 같다.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걱정을 하는지 어른들은 궁금해하지 않고 아이들이 해야 할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하지 않은지에만 관심이 있다.
학교에서는 홀든의 고민과 방황을 이해하고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호텔과 술집과 바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았지만 대화를 나눌 만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깊은 우울감과 슬픔만이 더해갔다. 결국 막내 동생 꼬마인 피비를 만나 대화하고 싶어서 부모님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집으로 향했다.
피비는 어린 꼬마이지만 무척 상냥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한참 동안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을 향한 홀든의 온갖 불평과 욕을 듣다가 피비는 오빠에게 무얼 좋아하는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달라고 한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 줄까? 만약 내가 그놈의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중략)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중략) 말하자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230쪽)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홀든의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홀든에게는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일까?
홀든에게는 두 살 아래 앨리라는 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을’ 정도로 멋지고 똑똑했지만 백혈병으로 몇 년 전에 죽었다. 앨리가 죽은 날 차고에 숨어서 유리창을 다 깨부수었다.
옆집 친구 제인과 매일 만나서 운동을 하며 친해졌다. 고주망태 의붓아버지에게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한계가 많았다. 또한, 이전 학교 같은 반 제임스 캐슬은 나약하고 존재감 없는 친구였다. 그는 집단 폭행을 당하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홀든은 그가 겪은 부당함에 고통스러워하지만 학교의 안일한 대응에 더 분노하였다.
지켜주지 못했던 동생과 친구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홀든은 앞으로 사람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집이며 학교며 온통 어른들이 가득한데 그들은 지켜야 할 것은 지키지 않고 자신의 규칙과 관심사만 집중한 채 방황하는 홀든과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다. 사실 홀든이 그날 새벽 고독한 방황 끝에 전화를 걸고 방문했던 누구보다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선생님 집에 잠시 방문했지만, 그의 또 다른 모습에 경악하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마지막까지 홀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어른은 없었던 것이다.
“멀리 떠나기로 결심했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학교도 가지 않고. 피비만 만나서 작별 인사를 하고는.. 차를 얻어 타고, 서부로 떠나리라… 그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다른 사람들을 모르는 곳에 가는 걸로 족했다… 그 돈을 모아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사는 것이다.”(261쪽)
홀든은 과연 서부를 향한 차를 타게 될까 아니면 일련의 방황을 접고 속물과 바보들이 득실거리는 5번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될까. 정답은 그의 꿈에 있다. 파수꾼은 누군가를 어떤 것으로부터 지키고 싶은 사람이다. 그 어떤 것이 없는 곳으로 가면 지킬 것도 지킬 일도 없게 된다.
홀든 주변의 어른들에게는 절망했지만 피비와 같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으로 자라난다면 희망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파수꾼 노릇을 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홀든이 파수꾼이 되기를 바라고 그 꿈을 지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