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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달리는 여행, 나를 채우는 시간

3키로 천천히 달리기

by 책선비

매일 새벽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여권도 짐도 필요 없는 여행. 목적지는 없지만 도착지는 언제나 같다.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바로 3키로 30분 달리기이다. 아직 낯설고 버겁기도 하지만 가쁜 호흡과 함께 스며드는 작은 성취감 덕분에 이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처음 뛰던 날이 선명하다. 몇 걸음만에 숨이 턱 막혔고, ‘괜히 나왔나’ 싶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겨우 1킬로미터를 달렸다. ‘내 체력이 이 정도였나’ 싶은 실망감도 있었지만 곧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운동을 시작하는 거지, 이게 지금의 나니까.’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고, 다들 1킬로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고요한 새벽에 오롯이 나를 마주하고 다독이는 순간이 나를 긍정하게 했고,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내가 매일 운동하는 장소는 우리집 앞 공원이다. 50걸음이면 갈 수 있다. 도서관 옆 더 예쁜 공원이 집 바로 앞에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킬 충분한 동력이 된다. 도서관 내부의 환한 불빛과 함께 한층 더 근사하고 멋있게 서 있는 도서관 옆을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공원이 한 눈에 보인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 6시. 공원 입구부터 따스한 노란 전등이 나를 환영하듯 반긴다. 겨울의 끝자락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원 한 가운데 황토빛 잔디밭은 여전하다. 바삭한 과자처럼 발끝에서 와사삭 부서질 것만 같다. 그 주변에는 한 겨울을 버틴 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다. 가지 끝이 앙상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나무에게 눈인사를 한다. 겨울을 통과한 나무들의 단단함이 오늘의 나에게 용기를 건넨다. ‘이 정도 추위 쯤은 괜찮을거야.’


나는 곧바로 소나무들 앞에 선다. 푸르른 잎을 간직한 소나무들은 고개를 한껏 들어야 끝이 보인다. 길다란 키를 자랑하는 그들은 매일 내 곁을 지키는 달리기 메이트들이다. 늘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환호한다. 내가 지치지 않기를, 멈추지 않기를 응원해주는 듯하다. 이들의 소리 없는 격려를 받으며 준비 운동을 끝내고 산책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저 멀리 까마귀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메아리친다. 둔탁하지만 배짱있게 울리는 소리에 화답하듯, 참새들도 맑고 날카롭게 지저귄다. 가끔씩 경쾌하게 울리는 까치의 외마디까지. 소리의 파동이 공기 위를 맴돌다 내 귓가를 스친다.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합주곡 같다. 악보 없이도 조화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처음엔 힘들게만 느껴지던 시간인데 지금은 그저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바람처럼 흘러간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가기 전보다 발걸음은 더 가볍고, 마음은 낯선 자신감을 품고 있다. 밝고 화사한 기운이 내 주위를 감싸며 머물러 있는 듯하다. 누구를 만나도 목소리를 높여 먼저 인사할 것만 같다.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 충만함으로 빛나는 순간이다. 달리면서, 나는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오늘 주어진 삶을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이 조용한 새벽의 루틴이 내 인생의 중심을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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