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문노트

내 통장 이름은 제로, 하지만

‘제로’

by 책선비

통장을 자주 열어본다. 당연히 0이 찍혔는 줄 알면서도 또 클릭한다. 더 많은 0이 나타났으면 하는 허무맹랑한 바람도 없는데 수시로 통장을 열고 0을 애써 확인한다.


생활비 통장이나 강사료 받는 계좌에는 몇 개의 0이 머물다 사라진다. 6인 가족 생계는 겨우 유지된다. 모든 통장에 0이 되는 순간에는 아찔하다. 요즘 둘째의 축구 진학을 알아보면서 남편의 마이너스 통장의 숫자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돈이 부족했던 적은 많았지만 아예 없었던 경우는 별로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지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결혼 전에는 아빠와 남동생에게 기댔고 최근까지는 남편에게 의지한 채 보냈다. 내가 돈이 없는 사람이라는 현실을 덮어놓고 살았다. 돈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을 추구하며 산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하면서.


몇 년 전 이사를 앞두고 남편이 나에게 ‘모은 돈 좀 있냐’고 물었다. 혼자 감당해야 했던 부담감에 하는 소리였지만 나는 ‘넌 무능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넷 온종일 육아에 허덕이는 나에게 그 질문은 뼈아팠다. 한동안 남편을 원망했지만 돈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남편이 재정 관리를 하기로 하고 나는 식료품비만 받기로 한지 1년이 지나고 있다. 내 용돈 통장은 내 강사료로 채운다. 1-2주 사이에 둘 다 0이 되곤 한다. 이런 현실을 눈으로 마주하면서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하거나 내가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큼 언제까지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을지, 고정급을 받는 일을 구해야 할지 고민해 본다. 당분간은 계속 내 용돈 통장은 0으로 남을 것 같다. 비어 있는 숫자보다 내 삶이 더 단단하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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