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문노트

순리는 다르게 흐른다

‘순리’

by 책선비

순리가 대세라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다. 그 방향에 따르는 일은 당연한 것이며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낭떠러지라고 여겼다. 어느 조직에 가든 빨리 대세를 파악하여 묻어가려고 했다. 나와 달리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간혹 다른 시선에 놀랍기도 했다. 그러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대세가 곧 순리가 아니라는 것을.


얼마 전에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 에세이를 읽었다. 계엄 첫날 부터 파면 선고 기간까지 고군분투의 시간을 견딘 일기가 담겨 있다. 일상을 살아내면서 집회에 참여하고 뉴스를 챙겨 읽고 분노와 불안이 뒤섞인 나날이었다. 환하게 반짝이던 순간도 있었지만, 작가는 본업인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단하고 고통스런 시간을 명료한 문장으로 적어내려갔다.


인상적이고 곱씹을 문장들이 정말 많은데 그중에 한 장면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집회 현장에서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야유를 퍼붓는 일반 시민들의 반응에 작가가 큰 위협을 느끼는 모습이다.


작가는 거센 태도를 보인 옆사람의 무릎을 잡고 이곳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라고 차분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들의 드러남과 목소리가 순리와 어긋난다고 여기는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마도 작가는 절망에 가까운 좌절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 속에서도 당사자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마음을 추스린다.


한동안 민주주의가 무너질 것 같은 공포를 겪었던 우리.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오랫동안 이런 공포와 위협을 당해왔던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외침을 무시했던 시간들이 쌓여 국민 전체로 그 공포가 퍼지게 되었다는 작가만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세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자기들만의 이치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들을 외면하게 되면 우리 모두도 언젠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외면당할 수도 있다. 내 안위를 위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말로 들릴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들과 나는 분리 된 것이 아니라 같은 시민으로서 한 공동체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대세가 되고 순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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