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건물이 육체라면 계단은 내부를 향한 성찰의 몸짓일까 외부를 향한 질주의 날개짓일까. 내면의 어둠 속을 파고든 계단의 이야기를 적다가 그만두었다. 하소연과 넋두리가 섞인 주저리 글로 빠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이제는 좀 밝은 글을 쓰고 싶어 방향을 틀었다. 지금 나는 새로운 두 개의 세계로 뻗어나가려고 계단을 놓고 있다. 하나는 시의 세계, 하나는 물의 세계.
시는 짧고 시집은 얇다. 그리고 가볍다. 그동안길고 두껍고 무거운 책들만 이고 지고 살았다. 읽는 척 아는 척 하느라 더 무거웠다. 내가 빈수레라면 그냥 빈수레로 있기로 했다. 물론 시 역시 이해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자주 무겁게 다기오기도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시는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어떤 시들은 가식 하나 없고 군더더기 없는 속살로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준다. 무심한 듯 간결한 문장 앞에 머물면 무수히 쏟아내고 싶은 불필요한 말들이 사라지고 나는 가벼워진다.
“나는 열심히 부끄러워 봤어”
“그런데 내가 벗어 준 마음이 가난한 것일까 봐” - 고선경 시집 중에서
부끄러운 감정, 가난한 마음을 응시해본다. 이 상태가 잘못된 것이 절대 아닌데 왜 그렇게 도망치려고만 했을까. 늘 주눅들고 혼난 사람처럼 살았던 인생을 껴안아 본다. 한 계단 오르고 보니 이렇게 다른 것이 보이는구나.
물은 나에게 공포이자 넘사벽이다. 그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호흡법과 몸짓이 필요하다. 강습 4번으로 어림없다. 여전히 킥보드와 아직 킥보드와 헬퍼에 의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맨몸으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야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느려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수영강습 영상 중에서
물에 몸을 던져도 죽지 않고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나는 하지 못했다. 수영이 안맞으면 안해도 되지만, 나에게는 자기 신뢰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 다음이 어떻게 되든 나를 던져보는 진짜 경험을 하고 싶다. 그동안 여러 문제들 앞에 머뭇거기리만 했다. 수영은, 물의 세계에 내 몸을 던져보는 것은 이런 나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한꺼번에 활짝 펼쳐내는 날개란 없다. 시간과 정성으로 한 계단씩 뻗어나가야 한다. 사실, 날개가 될지 다른 세계로 연결해주는 통로가 될지 거기서 멈추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지금 나는 어제보다 조금 가벼워졌고, 새로운 두 세계와 가까워지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계단 하나 올라 서는 것만으로도. 그 다음 계단 위에 서서 보게 되는 세상은 또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