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문노트

흉터에 머문 시선에서

‘시선’

by 책선비

네이버사전 ‘시선’ 검색

1.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2.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투시 도법에서, 시점(視點)과 물체의 각 점을 잇는 직선

4. 신선의 기풍이 있는 천재적인 시인

5. 시험을 보아 뽑음




평생 여름을 싫어했던 내가 올해 처음 여름을 만끽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평생 내 오른팔에 들러붙어 있던 그 시선.


사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하다. 길고 큰 흉측한 흉터에 자주 머물던, 당혹스러워하며 흔들리는 눈빛. 나를 쳐다보고 이것에 대해 물어야 할지, 모른 척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모습. 그들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모든 시선을 가져와 나를 꽁꽁 묶어버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혼하면 남편한테 수술해 달라고 해” 엄마는 나의 오른팔을 보며 말씀하곤 했다. 자신의 무능력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일까.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고였고 이미 세월은 흘렀으니깐. 앞으로 가능성에 내 오른팔을 맡기고 싶었던 것일지도.


남동생 돌잔치 날 옆집 할머니집에 맡긴 딸이 뜨거운 주전자에 걸려 넘어져 오른팔과 옆구리에 커다란 흉터를 가진 아이로 자랐다. “빨리 병원에 갔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는 말을 그대로 믿었던 나는 부모를 원망한 적도 없고 수술해달라고 조른 적도 없었다. 그저 얼굴에는 흉터 하나 남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 여름 하복을 입었던 3개월 동안 나는 늘 부채를 들고 다니며 오른팔을 가리는 데 온통 신경을 쓰며 살았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내 팔에 머무는 그 당황스러운 시선을. 누구 한 명이라도 내 팔을 보고 어떤 시선을 던진 일이 있는 날이면 일주일 동안 끙끙 앓았다. 공부도 뒷전이었다. 내 존재 전체가 이 흉터로 뒤덮인 것 같아 괴로웠다. 이는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었어도 정도만 덜 했을 뿐 1년의 1/4은 나를 흉터로 인식하며 살아갔던 것 같다. 아니, 여름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하며 보냈던 봄까지 합치면 더 오랜 시간이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이 흉터로 결혼도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지 남편의 수용과 약간의 무심함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정신없는 결혼과 육아 생활 가운데 어느 정도 극복된 줄 알았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그대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런 흉터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내 오른팔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여름날 수업 갈 때 반팔을 입고 가면 위축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토론 진행을 하다가 아이들의 시선이 가만히 내 오른팔에 머물 때도 많았다. 사실 일에 집중하느라 그런 시선을 신경 쓸 틈도 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내가 반팔 상의 정장을 사지 못하는 모습에서 아직도 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정장 반팔을 입으면 얇은 긴팔을 걸칠 수 없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최대한 오른팔을 가리면 좋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옷을 살 때 그 기능만 따졌다. 올해 여름을 앞두고 문득 이런 고민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반팔 여름옷을 내게 잘 어울리는지 아닌지만 보고 고르고 싶었다.


아마도 올해 초부터 수강했던 글쓰기 수업에서 나의 어둠과 못남을 직시하고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내 흉터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남이든 나 자신이든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또 다른 말로, 내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니 이 팔의 흉터도 별로 신경 안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징그럽고 희끄무레한 흉터의 소유자, 내 오른팔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한 친구의 손길과 눈빛이 생각난다. 대학 동아리 친구였던 그녀는 왼손으로 감싸고 있던 내 오른팔을 보더니 기존 사람들과 비슷한 시선을 잠깐 두는 듯했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이 친구가 어떤 반응을 할지 무척 궁금했다.


누구처럼 애써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얼굴 너머로 시선을 돌리겠지 라는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그녀는 내 오른팔을 감싸던 왼손을 확 치우더니 오른팔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흉터를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찬찬히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야? 많이 아팠겠다” 그리고는 호기심 어린 담대한 표정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때 90프로 이상은 치유가 다 되었다. 나머지 10프로를 덜어 내는데 20년이 걸렸다. 스스로 직면하고 질문하고 위로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렸어야 했을까. 아쉽기만 하다. 남의 시선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만든 시선 안에 나를 가두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털어내서 다행이다.


언제 그랬냐듯 요즘 아무렇지 않게 반팔을 꺼내 입고 원피스 수영복도 척척 입으며 내 오른팔에 흉터는 아예 잊고 지낸다. 누가 쳐다보면 ‘아 흉터? 있겠지 뭐’ 라며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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