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문노트

한 가장의 모습을 슬픈 눈으로 응시하다

‘가장’

by 책선비

네이버사전 ‘가장’ 검색

1.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정도가 높거나 세게.

2.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

3. 태도를 거짓으로 꾸밈.

4. 시체를 되는대로 대강 또는 임시로 묻음.



가장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그동안 육아의 무게에 눌러 다른 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부딪혀보고 싶다.


남편의 투덜거림, 짜증스러운 말투, 다그침, 잔소리는 가장의 무게에 짓눌려 나오는 작은 외침으로 이해하는 중이다. 이런 외침조차 허락되지 않으면 무게에 눌려 질식하던지, 더 강력한 방법으로 표현할지도 모른다.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폭력을 쓰거나.


200점 남편이자 아빠이다.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남편은 자주 지적질을 한다. 그래서 -300점을 받아서 최종 마이너스 상태가 된다고 할까. 남편의 지적질에 나는 자주 기분이 상하고 아이들은 억울해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다. 우리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남편은 이내 멈춘다. 자기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지만 더 큰 싸움을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귓가에는 항상 남편의 잔소리와 부정적인 피드백말이 맴돌고 있다.


지난주 교회에서 남편은 한 교회 지인과 대화 중이었다. 수련회 때 식사담당했던 팀들끼리 회식하기 위해 시간을 정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에게 담은 주 일요일 예배 마치고 바로 저녁 시간에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고, 지인은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집에 가냐고 물었다. 남편은 약간 비웃듯, 별 거 아니라는 듯 “자기들 알아서 가겠지 뭐”


나머지 가족들은 나와 4명의 아이들이다. 차를 남편이 가져가면 우리는 어떻게 가냐고 지인은 물은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저렇게 대답했다. 지인은 약간 머뭇, 당황하면서 옆에 있던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지인차 타고 모임 가고, 나는 우리 차에 아이들 태우고 집에 가면 된다고 말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저렇게 말하는지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가장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였을까.


지금 나는 수영과 헬스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2번씩 하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어깨에 파스를 붙이기도 하고 좀 피곤해하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왜 돈을 주고 고생을 사서 하냐는 식이다. 나는 안 쓰는 근육을 써서 그렇다고, 곧 50인데 운동해야지 라며 계속 일일이 변명하고 있다. 나는 가장의 무게에 더 짐을 얹는 사람일까.


별일 아닌데 내가 민감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로 남편에게 말하면 남편은 더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그동안 늘 반박하고 변명하고 따졌는데 지난주 교회에서 보인 남편의 태도를 본 이후로 아무 말 하지 않고, 슬퍼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저런 대우 밖에 받지 못한다면 내가 그 정도의 인간이겠지, 저런 반응에는 그동안 내가 남편에게 대했던 태도가 반영되었겠지,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남편 이면에 저런 부정적인 태도를 감당하는 것도 나의 역할이니 어쩔 수 없지....


그냥 남편의 약함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끝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가장으로 사는 게 힘든가 보다라고. 사사건건 잔소리와 지적질에도 내가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도록 단단해져야겠다고 다짐하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게 포기처럼 느껴질까. 이러다 보면 미세한 금이 큰 균열로 이어질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구체적으로 얼마큼 가장의 무게를 느끼는지 적어보련다. 막연히 6인가족 생계비라고만 생각했는데 더 자세히 물어보고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남편의 지적질을 가만히 응시하며 슬퍼하기로 해본다. 그러다 보면 그게 진짜 슬픈 일인지도 판단하게 되고 또 그다음 단계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