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불편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쁨'에 자주 말한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첫 반응이 '좋다'였고 나사렛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좋은 소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구약에서 기쁨과 관련된 단어가 500회 이상 나온다. 근원적인 기쁨은 하나님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뻐할 상황에서만 기쁘다고 한 것이 아니다. 포로 생활을 해야 했던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의 새 언약에 기뻐했고, 감옥에 갇혔던 바울은 형제자매들에게 기뻐하라고 편지를 보낸다. 어떻게 기쁠 수 있는가. 지금도 한숨이 턱턱 나올 정도로 힘들고 미래는 불안하고 막막한데.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자신의 뜻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음, 인격적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고통 중에 있는 나를 만나고 돌보고 계신다는 믿음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기쁨을 잃어버린, 한 신실한 자가 여기에 있다. 바로 세례요한. 메시아 오시길 고대하며 예수님께 세례까지 베풀었던 자. 그가 예수님을 보면서 의문에 휩싸인다. "오신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자신이 상상했던 메시아가 아니어서 당황했다. 왠지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길 바라는 것 같다. 진정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는 것을 조급하게 확인받고 싶어서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것처럼 보인다. 의심과 불안, 전 생애를 바쳐 기다리고 기다렸던 자신의 존재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레이첼 에반스의 <헤아려본 믿음>은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고 의심과 회의가 들 때 질문을 던지며 신앙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완벽한 답과 굳건한 확신이 신앙이 아니라 질문을 하고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신뢰가 깊어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녀가 어떻게 '확신하는 신앙'에서 뛰쳐나와 질문하는 신앙이라는 모험을 시작했는지, 그 모험이 얼마나 신앙을 풍요롭게 했는지 용감하고 지혜롭게 기록한다. 의심하고 '회의하는 신앙'의 길로 한 걸음 내딛으며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공동체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레이첼 에반스는 재미있고 사려 깊은 친구이며, 그녀가 지은 글들은 질문하며 진화하는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하다."
하나님은 질문을 기꺼이 들어주시고 우리에게 자신을 믿고 따를 만큼의 답도 알려주신다고 생각한다. 각자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더 깊어질 수 있는 나름의 응답 같은 것. 간증일 수도 있고 소소한 대화일 수도 있다. 거리낌 없이 질문할 수 있는 현실은 큰 축복이다. 하나님 께든 공동체에게든. 내 질문이 좀 이상하고 어리숙하더라도 들어주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자 은혜이다. 그래서 기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여전히 내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아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수 있다.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이니 더 기뻐하리라.
세례요한은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고, 자신 안에 찾아든 실망과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에수님을 새롭게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기대하고 알아왔던 예수님을 넘어서 예수님 자체를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해야 합니다. 강렬한 심판자의 메시아를 넘어서서, 한없는 은혜를 베푸는 구원의 메시아를 만나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 우리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우리 안에 제안해 둔 지식이, 이만하면 되었다고 안주하며 다 안다는 교만이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찾아오시는 낯설고 불편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분과 함께 한걸음 내디디는 모험이 우리를 온전한 믿음과 신앙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2025.12.14.맑은물교회 설교 중에서
여러 질문과 불만이 생기는 상황들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어제 모임에서 느닷없이 뺨을 맞은 듯한 일을 겪었다. 니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나름 정리해서 전달했는데 황당한 반응을 겪었다. 사람들 모두가 다 내 마음 같지 않고 자기 상처와 판단에 따라 자기 식으로 표현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사람과 상황을 보면서 가려서 했어야 했다. 무조건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말해놓고선 왜 저 사람은 저것 밖에 안되냐고 그 사람을 몰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음이 상하고 낙심되는 순간이었다. 민망하고 서글퍼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내 기대와 기준에 다다르지 않았다고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내가 착각하고 어리숙했던 부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주님께 은혜를 구한다. 도망가지 않고 겪어낼테니 저를 바른 믿음으로 온전한 신앙의 길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한다.
낯설고 불편했다 아주 몹시.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