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황국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모노파와 타르콥스키
222-228p.
마감 기한도 따로 정해두지 않고, 음악에 대해 지금까지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일단 전부 배제한 후, 새하얀 캔버스를 마주하는 자세로 곡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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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후에 미술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이우환 선생님과 스가 기시오 씨 등은 '모노파'(もの派)라는 총칭으로 불렸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꾀바른 상상력 따위는 던져버리고 '모노'(もの) 그러니까 물체 그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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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앨범을 위해 작업해온 바흐의 편곡들은 모두 버리고 무심의 상태로 돌아간 순간, 문득 커다란 캔버스에 굵은 붓으로 짧은 선 하나를 그어낸 이우환 선생님의 페인팅 작품이 머릿속에 스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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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에서 촉발하여, 저의 새로운 앨범에서는 모든 사물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뇌의 습성을 부정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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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씨의 말에 따르면 밤하늘의 별들을 마음대로 이어 붙이는 인간의 뇌의 특성, 즉 이성을 '로고스'라 칭하며 이에 대비되는 별 본래의 실상을 '피시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피직스(물리학)의 어원으로 '자연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죠. 언제부터인가 후쿠오카 씨와 시간을 보낼 때면 항상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하면 로고스를 뛰어넘어 피시스에 근접할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정말이지 집요할 정도로요.
보통의 음악은 소리와 소리의 관계를 치밀하게 구축하는 방식으로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번 새 앨범을 만들 때 만큼은 그와 정반대의 방법론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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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단계에서인가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중심 콘셉트가 떠올랐고, 그것 또한 창작의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바로 '가공의 타르콥스키 영화 사운드트랙'이라는 콘셉트입니다. 타르콥스키는 <시간의 각인>이라는 책에서, 영화에는 원래 음악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이크를 넣어 촬영하는 영상 자체에 이미 소리가 들어가 있으니, 의도적으로 나중에 삽입하지 않아도 이미 영화 안에 음악이 넘쳐 흐르는 것 아니냐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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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노스탤지아>에서의 가장 큰 음악은 물이었습니다. 매우 주의 깊게 설계된 물소리가 곧 영화음악인 것이죠.
<async>
228p.
모든 것이 동기화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의도적으로 등을 돌려 문자 그대로 '비동기'(非同期)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을 제목에 담았습니다. 실제로 이 앨범 속 몇 곡은 비동기를 구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