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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02. 2022

Bermain sulap, 마술 삼촌


 ㅌ씨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다. 낯선 곳, 낯선 사람 앞에서 얌전하고 말수 적은 나와 달리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삼십 분만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매력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비법이 있는데 그중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를 웃게 만드는 건 마술이다. 마술에는 손재주도 필요하지만 표정연기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동그랗고 단단하게 뭉친 작은 구슬 모양 휴지를 입에 넣는 척하며 손가락 사이에 끼워두고 배에서 꺼내는 척할 땐 정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대방 얼굴까지 찡그리게 만든다. 구슬 휴지를 높이 던져 하늘로 시선을 돌린 다음 상대방 귀에서 꺼내는 척할 땐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눈을 두배는 더 커다랗게 뜨면서 본인이 더 놀란다. 숟가락을 코에 척 붙이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여기까지는 어른들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흥! 하는 표정으로 이 정도는 나도 알지 생각한다. 그런 어른들마저 다 녹여버리는 건 이쑤시개 마술이다. 일단 수건 한 장과 이쑤시개를 준비한다. 이중으로 바느질된 수건의 네 면 귀퉁이에 이쑤시개를 하나씩 집어넣고 "이거 부러뜨려봐." 하면 지금 뭐 하는 건가 하면서 다들 열심히 이쑤시개를 부러뜨린다. 두 동강으로도 모자라 반의 반 또 그 반의 반  더듬더듬 찾아가며 열심히 부러뜨린다. 네 귀퉁이에 있는 이쑤시개를 꼼꼼하게 부러뜨린 상대는 의기양양하게 ㅌ씨에게 수건을 돌려준다. 그러면 ㅌ씨는 남몰래 손가락 사이에 숨겨두었던 새 이쑤시개를 재빠르게 꺼내며 부러진 이쑤시개는 수건 가운데 쪽으로 밀어 넣는다. 손이 보통 재빠른 게 아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하는 건지 알고 있는 내 눈에도 보이질 않는다. 이쯤 되면 팔짱 끼고 바라만 보던 사람들도 두 팔이 스르르 풀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수건 귀퉁이 어딘가에 자신이 부러뜨린 이쑤시개 조각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수건 귀퉁이를 하염없이 주무르게 된다. 이미 중앙으로 밀어 넣은 이쑤시개가 발견될 리 없다. 온전한 모양의 이쑤시개 한번 쳐다보고, ㅌ씨 얼굴 한번 쳐다보고, 본인 손 한번 쳐다보고 정신이 없다. 여기까지 하면 모두들 웃느라 바쁘고 이렇게 ㅌ씨는 어느새 모두의 마음을 뺏는다. 물론 마술 말고도 다른 좋은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런 가벼운 마술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너무 적합하다.


 낀따마니에 캠핑 가서 마술을 보여줬을 땐 크리스 씨가 진지하게 혹시 직업이 레크리에이션 강사 같은 거라서 이런 걸 하는 건지, 우리 아이 생일 파티에 와서 마술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물었다.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서 정말 ㅌ씨를 마술사로 생각하는 것 같아 사정을 아는 우리들은 깔깔 웃었다. 꼬맹이는 친구들 앞에서 어깨가 한껏 으쓱해졌다. "얘들아. 이 사람은 ㅌ라는 사람인데 내가 데리고 왔어. 이 사람이 마술 엄청 잘하지? 내가 데려왔어."



 ㅌ씨와 함께 나들이를 할 땐 작은 사탕 주머니를 준비한다. 언제 어디서 마술을 할지 모르니 휴지를 뭉치는 대신 사탕을 이용하고, 남은 사탕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술 삼촌은 발리의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나는 사탕 주머니를 들고 옆에 서서 마술 삼촌을 돕는다. 이 순간이 그리워질 때를 대비해 연신 동영상도 찍는다. ㅌ씨가 마술을 하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발리의 어린이들은 낯선 어른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술 보여줄까 물어봐도 고개를 도리도리 젓거나 다리를 배배 꼬면서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쑥스러워한다. 그런 아이들이 ㅌ씨가 말랑카우를 하늘 높이 던졌다가 (정확히는 던지는 척했다가) 자기 귀 뒤에서 꺼내는척하고 눈앞에 내밀면 눈을 크게 뜨고 gimana? gimana? (어떻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속닥이다가 하하하 웃는다. 이 초롱초롱한 눈빛들과 놀라워하는 표정들은 자려고 누울 때 몇 번이고 생각나서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고, 신기해하고, 감탄해주는 걸까. 간단한 마술을 보여준 대가로 행복한 순간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으니 나는 매일 사탕 주머니 가득 채워 ㅌ씨가 마술 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우리는 렘봉안 시골 언덕에서 기념품을 파는 어린아이들 앞에서, 짐바란 해변에서 맨발로 뛰어놀던 아이들 앞에서,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발이 묶인 문둑의 작은 와룽 사장님 가족 앞에서 마술을 보여주고 함께 웃었다. ㅌ씨는 그중에서도 특히 발리 시골 어린이들 앞에서 마술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TV나 영상매체를 자주 접하지 않는 아이들은 이런 걸 보여주면 더 많이 신기해하고 행복해하니까 그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건 기쁜 일이다.


오늘도 작은 와룽이 가득 찬 틈을 타 아이들을 불러본다. 인도네시아어로 마술은 SULAP이다. 술랍 술랍 하면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 눈을 반짝이며 ㅌ씨의 손을 주시한다. 나는 또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터질 것 같은 심정이 되어 마술을 하고 있는 ㅌ씨와 ㅌ씨 손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보석 같은 미소들은 마음에 새겨두고 사랑스러운 웃음소리는 귀에 담아둔다.  마술 한바탕 하고 나니 분주했던 식당에도 앉을자리가 생겼다.  


Kuta beach, Jimbaran, Pasar, warung 어디서나 합니다. 마술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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