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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02. 2022

발리 바닷가엔 모래 고양이들이 있었는데요

 

KUTA BEACH


발리에 있으면서 서핑을 안 하면 유죄인가. 주변 서핑 사람들과 안부를 물을 때 빠지지 않는 한마디가 있다. "서핑 한 번만 해봐!" 나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무섭다. 어릴 때 물에 빠진 적이 있어서인지 그저 겁이 많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물에서 하는 놀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노클링이나 다이빙도 마찬가지다. 물속 예쁜 물고기들도 잠깐 보고 나면 흥미가 사라진다. 서핑 사람들은 도대체 서핑이 얼마나 재미있길래 서핑을 못 시켜서 안달일까. 오늘도 나는 친구들 서핑하는 거 구경하러 꾸따 비치에 왔다. 서핑 사람들이 이렇게 한가한 꾸따 비치를 보면 얼마나 여기에 들어가고 싶을까.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가끔 죄책감 같은 것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답답한 날들에 나만 바다 보고 있어서 어쩌지, 나만 하늘 보고 있어서 어쩌지, 나만 노을 보고 있어서 어쩌지 싶어 가끔 불특정 다수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요즘은 여기저기 점점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꾸따 비치 주차장에도 오토바이가 슬금슬금 차고 노점상들도 줄지어 서서 장사를 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고 비치워크 앞 도로에 차 한 대 찾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은 사람도 많고 차도 늘었다.

어느새 서핑을 마친 어린이가 모래놀이를 하러 달려온다. 이모는 꾸따 비치에 모래 고양이를 잔뜩 만들고 싶다고 하니 작은 손을 보탠다. 파도가 밀려와서 고양이들이 자꾸 쓸려가니까 파도를 막아주겠다며 땅을 파고 있다. 어린이의 다정한 마음씀씀이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꾸따 비치 나뭇가지에 빈 옥수수자루가 매달려 있다. 옥수수알 하나 붙어있지 않은 말끔한 빈 옥수수자루의 정체가 궁금해서 비치 보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침에 누군가 나무에 알이 꽉 찬 옥수수 한 자루를 매달아 두면 다람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옥수수 한 알 한 알 뜯어먹는다고 한다. 해가 지기도 전에 어느새 옥수수 알 다 뜯어먹고 빈 자루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왔다 갔다 하면서 옥수수를 뜯어먹는 다람쥐를 상상해도 귀엽고, 아침마다 나무에 옥수수를 매달고 있을 누군가를 상상하는 것도 기쁘다. 다람쥐를 위해 매일 옥수수 한 자루 챙겨 바다로 나오는 마음이 참 예쁘다.



Melasti Beach



 발리 남쪽에 있는 수많은 해변 중에 제일 좋아하는 바다는 멜라스티다. 투명한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보면 이미 발리에 있는데도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하얀 모래를 밟고 뜨거운 햇빛 받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코코넛 마시면서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Balangan Beach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발랑안이다. 주말 당일치기 나들이로 "어디 가고 싶어?" 물으면 눈을 반짝이며 "발랑안!" 하고 외친다. 모처럼 다 같이 한가한 주말을 맞아 발랑안에 간다. 도착과 동시에 어느새 바다 탐험을 시작한 어린이는 신기한 바다생물 한 번씩 들고 와 보여주고 다시 바다로 되돌려준다. 바다에 살고 있는 것들은 꼭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 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양철통 가득 잡은 작은 게들도 집에 가기 전에 다시 바다로 놓아준다. 어린이가 바다를 종횡무진 다닐 동안 난 모래 고양이를 만든다. 아주 살짝 젖은 모래로 모래 고양이를 만들면 귀가 쫑긋 선 귀여운 고양이를 만들 수 있다. 적당한 습도의 모래를 찾는 방법을 이젠 알 수 있다. 그리고 비눗방울을 분다. 한숨 쉬는 대신 불기 시작한 비눗방울은 뜻밖의 피리 부는 사나이 효과를 내고 있어서 비눗방울을 불 때면 동네 꼬마들이 졸졸 따라오게 만들 수 있다. 난 좀 고독하게 이 시간을 즐기고 싶은데 그러기엔 어린이들에게 너무 흥미로운 놀이지? 한참 놀다보니 바다가 눈부시다. 파도가 부서지는 자리마다 햇빛이 잔뜩 묻어서 맨눈으로 보기 힘들 만큼 바다가 반짝거린다.





Padang Padang Beach


 이른 아침 어스름한 바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초록 식물들이 신기하고 대견하다. 어떤 물을 마시면서 크고 있는지 궁금하다. 식물도 말을 할 수 있다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텐데 식물은 답을 할 수 없으니 구글에 물어봤다. 해수를 먹고도 자랄 수 있는 맹그로브처럼 세상 짠맛에도 덤덤하고 바위도 뚫고 살아낼 만큼 강해지면 좋으련만.


바닷가 근처에 살면 축축하고, 소금기 많은 바람이 불어와 힘들다고 하던데 매일 이런 풍경을 본다면 조금 참아볼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 발리의 남쪽 바닷가 투어를 할 예정이고, 그중 빠당빠당 비치를 들러보겠다고 한다면 입장료를 끊고 내려가는 복작복작한 바닷가 말고 조금 뒤편으로 돌아가 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알던 그 빠당빠당 비치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있다.


바닷물을 많이 머금은 흙으로 모래 고양이를 만들어본다. 고양이가 매끈매끈하게 잘 만들어지는 흙의 습도를 찾아 괜히 앉은자리를 이리저리 옮겨본다. 만들어진 틀에 흙을 담고 뒤집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이게 왜 늘 어려운지 알 수가 없다. 몇 번 시도 끝에 귀가 쫑긋하게 선 고양이 만들기에 성공했다. 어느 정도 감을 잡았으니 이제 고양이를 잔뜩 만들어 바다에 놓아둔다. 고양이를 만들 땐 혼자 상상을 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이게 뭐지 하며 가까이 왔다가 고양이잖아 하고 피식 웃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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