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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04. 2022

발리에서도 과자를 구워볼까요

 직접 만든 과자를 선물하는 일은 행복하다. 오븐에서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걸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좋고, 한 김 식힌 과자를 포장하며 리본을 매는 것도 즐겁다. 포장할 땐 받는 사람의 얼굴을 생각한다. 별것 아닌 작은 선물에 항상 크게 기뻐해 주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산더미 같은 설거지도 잠시 잊을 수 있다. 과자를 선물하며 맺어진 인연들도 많다.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준다.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취미는 집에서 혼자 시간 보내기 좋아하는 내게 시간을 더 즐겁게 보내는 법을 알려주었고 주변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매일 메고 다니는 작은 갈색 가방엔 언제나 과자가 들어있다. 지퍼에 손을 대면 눈을 반짝이며 오늘도 과자 만드셨어요? 물어보는 사람들이 귀엽다. 한나는 내가 매일 가방에 과자를 들고 다니는 모양이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 꺼내서 친구들 나눠주는 거 같다며 갈색 가방만 보면 웃었다. 발리로 오면서 베이킹 재료들을 당근 마켓에 내다 팔고, 당분간 주인 손길 닿을 수 없는 베이킹 도구들을 정리하면서 조금 울컥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발리에서 빵 굽는 친구가 있다. 제빵을 주로 하는 친구와 제과를 주로 만드는 내가 만나면 우리가 매일 달콤하고 고소하게 지낼 수 있겠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지낼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가 베이킹을 함께 해보기로 했다. 주영이는 빵을 만들고 나는 과자를 만들며 서로 배워보는 날이다. 우선 재료를 사러 간다. 한국에서라면 대형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한 번에 사 올 수 있지만 여긴 사정이 다르다. 전자기기 전문점, 철물점, 주방용품 전문점 등 제품 카테고리마다 매장이 다 따로 있어서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땐 가게를 이리저리 찾아다녀야 한다. 주방용품 가게도 판매하는 물건이 달라서 냄비나 조리도구만 잔뜩 파는 매장은 또 따로 있다. 오늘은 우선 베이킹 도구와 재료를 사러 As Kitchen으로 간다. 1층에는 업소용 오븐이나 반죽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같은 것들을 판매하고 있고 2층은 베이킹 재료와 도구, 주방용품들이 있다. 우리는 베이킹 재료를 사러 왔으니 2층으로 올라간다. 각종 유제품과 설탕, 밀가루, 코코아 파우더, 향신료, 스프링클같은 것들이 신기하다. 발리 설탕은 입자가 굵다. 한국 천일염 반의반만큼 굵다. 베이킹용 흰 설탕을 구하러 여기까지 왔다. 베이킹용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한국 슈퍼마켓에서 흔히 보는 설탕과 같은 물건이다. 발리에서는 이 설탕을 사려면 베이킹 용품 판매점까지 와야 한다. 게다가 흰 정제 설탕은 가격이 두 배다. (인도네시아 설탕에 비해 비싸다는 이야기고 한국 설탕 가격과는 비슷하다.) 발리에서 베이킹을 하는 게 벌써부터 어렵다. 그랜드럭키마트에 들러 스모어 쿠키에 넣을 마시멜로와 초코볼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친구네 집은 가스오븐을 사용한다. 친구가 직접 산 게 아니라 집주인이 사둔 오븐이란다. 가스오븐으로 베이킹을 하는 건 처음이라 궁금한 게 많다. 친구도 처음엔 우왕좌왕하다가 이제는 손에 익어서 불 조절을 척척 잘하게 됐다고 한다. 밑불을 주로 사용하는 가스 오븐은 구움색이 잘 안 난다. 과자를 만들 때마다 윗부분 구움색이 부족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오븐 앞에 서서 뚫어져라 지켜본다. 버터쿠키 반죽은 냉장고에 한 시간 넘게 넣어뒀는데 밀대로 미는 사이 바로 실온으로 변한다. 손이 느린 편이라 최선을 다해서 빠르게 찍어내는데도 버터가 녹는 게 눈에 보여서 전전긍긍한다. 집에서 사용하던 오븐이라면 대부분의 쿠키는 170도에서 180도 사이에 12분 정도 구우면 되는데 가스오븐은 다르다. 예열을 잔뜩 해두었는데도 잠깐 문을 열면 2,30도가 뚝 떨어져 버린다. 다시 온도가 오르길 기다리고 혹시라도 바닥이 타지는 않는지 계속 오븐을 들여다봐야 한다. 얼굴에 열이 올라 과자 대신 피부가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오븐 앞을 지키려니 가스오븐으로 과자 굽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한국에서 대유행 중인 스모어 쿠키도 만든다. 초코 반죽으로 곰돌이를 만들고 마시멜로를 잘라 코를 붙였다. 스모어 쿠키에 올릴 초코볼이며 예쁜 과자들을 찾느라 반나절을 돌아다니느라 지쳤던 것도 잊을 만큼 과자들이 귀엽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이 참 달라서 같은 반죽으로 만들었는데도 친구와 내 곰돌이 생김새가 퍽 다르다. 주영이는 동화책 속 삽화 같은 얼굴의 곰돌이를 만들어냈고, 나는 동글동글하고 얼굴이 짧은 곰돌이를 만든다. 다 구워진 과자들은 한 김 식힌다. 수영장에서 놀고 있던 어린이가 달콤한 냄새에 입맛을 다시며 달려온다. 아직 뜨거우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 부탁하고 어린이를 다시 물속으로 보낸다. 과자를 만드는 사이 발효가 끝난 빵 반죽이 오븐에 들어간다. 고소한 빵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진다. 하루 종일 야단법석을 떨며 만든 빵과 과자를 포장하고 보니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제 포장을 할 수 있을 만큼 식었으니 먹어도 좋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린이가 과자를 한입 앙 문다.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맛있다고 말해주니 마음이 뿌듯하다. 요리도, 베이킹도 역시 맛있게 먹어주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게 행복하다.


첫 번째 베이킹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빵 만드는 것을 배워보고 싶었지만 각자 정신없이 반죽 만드느라 물어볼 틈도 없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친구들의 생일마다, 크리스마스에 그리고 또 맛있는 베이커리를 먹고 싶을 때마다 불 조절이 어려운 가스오븐으로 함께 베이킹을 했다. 의외로 발리엔 입에 맞는 베이커리가 없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커피를 사러 들렀던 프랜차이즈 제과점 진열대를 보고도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디저트가 아쉬웠다.


갓구운 식빵과 스모어쿠키
꽈배기 만들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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