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물고 있는 집에는 집 전체를 관리하는 매니저 1명과 하우스키퍼 2명, 가드너 1명, 밤에 집을 지키는 가드 2명이 일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이 지내는 건 아무래도 매일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하우스 키퍼들이다. 일주일에 두 번 방을 청소해주고 매일 아침 산책을 나설 때마다 슬라맛 빠기 (selamat pagi: 좋은 아침이에요.), 디 마나? (Di mana: 어디 가요?)를 버릇처럼 물어보는 따뜻한 그녀들. 내 대답이라 봤자 늘 커피 마시러 가요뿐인데 늘 새롭게,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 그 인사에도 어느새 적응이 됐다. 와얀은 60을 바라보는 중년 여성인데 그녀는 특히 내 끼니 걱정을 많이 했다. 농사의 민족이라서 그런가 발리 사람들도 밥 먹었는지 많이 물어본다. 가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신기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밥 먹었어?"라는 인사를 꼽는 걸 봤는데 발리에선 밥 먹었어 인사가 자연스럽다. 한국에서 '밥 먹었어'의 유래는 가난했던 시절 끼니를 챙기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누군가 마주칠 때 끼니 걱정을 했다는 걸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위안부 이야기'라는 책을 읽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군인 일본에게 쌀을 빼앗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힘들게 지냈던 부분에서 어쩌면 이곳도 이런 역사가 있어 다들 밥 먹었는지 자연스레 물어봤던 걸까 생각했다.
또 다른 하우스 키퍼 Zero는 30대 초반에 8살짜리 딸이 있다. 어느 일요일 학교에 가지 않은 8살 어린이가 엄마를 따라와 꾸벅 인사를 하길래 커다란 리본이 달린 스크런치를 선물로 줬다. 아이는 내내 그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학교에 가고 손빨래를 해 밤새 말리고 또 학교에 갈 땐 그걸로 머리를 묶고 간다고 했다. 내겐 그저 별거 아닌 머리끈일 뿐인데 8살 어린이에게는 인생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소중히 다뤄지고 있으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Zero가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이 있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그 머리끈이 어느 나라껀지 물었을 땐 하마터면 웃을뻔했다. 미국에서 산거라고 했더니 "아메리카.. 아메리카.."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왜 궁금해는지도 물어봤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머리끈 자랑을 하는데 한국사람이 준 거니까 한국 제품일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산 것일지 확실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졸지에 어릴 적 124색 크레파스를 사다 주셨던 미국 이모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이 집에서 일하는 정원사다. 그는 언젠가 내게 북한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농담인 줄 알았다가 진심으로 묻고 있다는 걸 알고 북한 사람들은 여행을 할 수 없다고 짧은 바하사로 번역기를 돌려가며 한참 설명했다.
어느 일요일, 분명 전날에 이번 일요일은 휴무라고 말했던 Zero와 마주쳤다. 쉬는 날이지만 남편이 출근하는 날이라 그냥 따라 나와서 그가 퇴근하길 기다리는 중이라길래 난 노을을 보러 가겠다며 인사를 했다. 집을 나서 200m쯤 걸었을까 누군가 뒤에서 이름을 부른다. 돌아보니 오토바이를 탄 Zero가 있었다. 바다까지 걸어간다는 나를 데려다주고 싶어서 뒤따라왔다고 한다. 상냥한 사람 같으니. 아직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함께 바다를 보러 갈까 묻고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사 가기로 한다.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는 그녀는 오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타벅스에 와본 날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스타벅스 파트너에게 커피에 대해 한참 묻고는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주문한다. 쁘띠뜽읏 해변엔 노을을 기다리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런 순간마다 머릿속에서 비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스미냑 해변 빈백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노을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을 떠올린다. 나는 월급이 160,000원 정도인 인도네시아 사람이 그 월급의 절반을 부모님께 드리고 있지만 그게 너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급여가 줄고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적은 월급이나마 받아서 가족에 보탬이 될 수 있어 본인은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며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그 고민을 멈춘 것도 이 바닷가다. 맨발로 오토바이 타고 달려와서 바다로 풍덩 뛰어들어가 친구들이랑 파도를 타며 깔깔거리고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저 사람들의 행복을 함부로 재단했다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고민을 멈췄다.
노을을 기다리며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문득 그녀가 날 걱정한다. 위험한 길을 매일 걷고 있으니 오토바이나 차들을 조심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한다. Zero의 집은 낀따마니다. 낀따마니에서 스미냑까지 매일 왕복 4시간이 걸려 출퇴근을 한다. 빠르게 달려 1시간 30분이면 스미냑에 올 수 있지 않냐고 묻는 내게 Zero는 왼팔을 걷어 내보인다. 오래전 만화영화에서 봄직한 커다란 상처에 무심하게 꿰맨 스티치가 다섯 개쯤 있다. 어림잡아도 20cm는 족히 돼보이는 상처인데 꿰맨 자국이 다섯 개밖에 안되다니. 한국에선 내 새끼손가락이 0.5cm쯤 찢어졌을 때도 흔적을 안 남기겠다며 의사가 다섯 바늘을 꿰매 줬는데 말이다. Zero는 몇 년 전 오토바이를 타다 마주오는 차랑 부딪혀 크게 다쳤다고 한다. 몇 미터를 붕 떠서 날아갈 정도로 큰 사고였는데 운전자는 도망을 갔고 뺑소니 사고는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앞니가 다 부러져 의치를 했고 상처는 꽤 오랜 기간 아물지 않았다고 한다. 무서운 마음에 그 후로는 운전을 천천히 한다고 했다. 교통 사고 이야기도 듣고 남편과 처음 만났던 이야기도 듣고 가족들 이야기랑 재래 시장에서 바가지를 쓰지 않는 법도 배웠다. 한국 사람과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는 건 처음인데 항상 한국 요리를 만들어 나눠주고 다정하게 대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야말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며칠 후 장을 보다 Zero에게 줄 비타민 음료를 집어왔다. 들어오는 길에 음료를 꺼내 건네니 표정이 난감해진다. 도무지 영문을 몰라 혹시 이걸 싫어하는지 물었더니 조금 망설이다 뜻밖의 고백을 한다.
"사실은 지금 임신을 했고 3개월째인데 비타민 음료를 마셔도 될까요?"
8년째 둘째 아이를 기다리는 걸 알고 있으니 나도 함께 뛸 듯이 기쁘다. 정말 축하해요 하며 급하게 검색을 한다. 임신을 안 해봤으니 비타민 음료를 먹어도 되는지 어떨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내가 사 온 비타민 음료는 임신부에게도 일일 권장량을 벗어나지 않으니 마셔도 된다. 이 기쁜 고백을 들은 이후로 오히려 전전긍긍하게 된 건 나다. 매일 복층 건물을 청소하느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질 때마다 몸이 괜찮은지 일이 너무 힘들지 않은지 걱정이 된다. 그렇게 그녀의 배가 점점 불러오던 어느 날 빌라 1번 꼬맹이랑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내 방에 들어와도 되는지 묻고 계단에 앉아 우리 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꼬맹이한테
"아줌마 뱃속엔 아기가 있어."
하는데 Zero가 입을 뗀다.
"사실은 지난주에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아기가 죽어있대요."
너무 놀라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나와 달리 그녀는 조금 덤덤하다. 일을 줄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남편과 맞벌이를 해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무리를 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이라 슬프지만 괜찮아하는 Zero와 계단에 쪼그려 앉아 함께 울었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는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이 흘렀다. 몇 달이 지났을까 집에 들어오는 나를 불러 세우며 Zero가 웃는다. 그동안 입이 간질간질했는데 사실은 지금 임신한 지 4개월이 됐다며 안정기에 접어들면 말하려고 기다렸다고 한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어떻게 말해야 내 형편없는 인도네시아어로 그녀에게 축하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쓸데없이 그녀를 붙잡고 이번엔 정말 건강하게 게으름도 부려가며 아이를 잘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점점 배가 불러오는 Zero를 볼 때마다 마음으로 빈다. 그녀가 건강하게 출산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한국에 간다며 인사하는 내게 꼭 아기를 만나러 다시 발리로 돌아오라고 약속을 받아내던 Zero에게 어제 전화가 왔다. 영상 통화 중에 조심스럽게 "아기는?" 하니 커다란 배를 보여주며 이제 다음 달이면 아기가 나온다고 웃으며 말한다.
누군가를 안아주는 것에는 많은 품이 들지 않는다. 그저 두 팔을 벌리고 마음과 마음이 닿으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진심을 전할 수 있다. 그녀는 항상 내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고마운 건 오히려 이쪽이다. 외로운 내 인생에 매일 안부를 물어주던 다정한 인사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이렇게 또 내게는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친구가 하나 더 늘었다.
주말이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노을보러 많이 가는 해변. 스미냑 해변 바로 옆에 있어요.
Petitenget Beach
https://maps.app.goo.gl/WpdCf1V8KxvtUbJZ6?g_st=ic
쁘띠뜽읏 해변에서 갈만한 비치클럽. 수영장이 있고 해변이랑 연결돼 있어요. 작은 나무 다리를 건너면 쁘띠뜽읏 해변 랜드마크인 커다란 그네가 있어요. 매장 입구 화단에 있는 선인장들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추천
Mano Beach House
(0361) 4730874
https://maps.app.goo.gl/ZoJUgQ1zMjmSGxCr7?g_s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