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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21. 2022

인도네시아 어린이 생일잔치에 초대받았다

아주 조그마한 우정

 우리 집 대문 입구에는 빌라 1번이 있다. 빌라 1번에는 7살, 4살, 3개월 세 자매와 엄마, 사촌언니가 함께 살고 있다. 세 살 터울의 7살, 4살 언니 둘은 늘 작은 손을 꼭 잡고 집안을 돌아다닌다. Ayo (아요라고 읽는다)는 Let's go라는 의미인데 둘이 손 꼭 붙잡고 Ayo 하는 순간이 귀엽다. 첫째 올리브는 인도네시아인 아빠와 인도네시아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둘째 바나는 호주인 아빠와 인도네시아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둘은 엄마는 같고 아빠는 다른 자매다. 바나의 아빠는 일 때문에 호주에 머물고 있고, 엄마와 사촌언니는 3개월이 된 동생을 돌보느라 바쁘다. 꼬맹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학교를 가니 두 아이는 자매인 동시에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다. 두 어린이는 이른 아침부터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참견을 하고 둘만 아는 이야기를 소곤거린다. 처음에는 낯을 가려 인사하기도 힘들더니 매일 마주치며 어느새 정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제 아침이 되면 작은 꽃송이들을 한 아름 손바닥에 건네고 내 방에 거침없이 들어온다. 체중계에 한 번씩 올라가서 어제보다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확인하고 간밤에 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미리 사다둔 간식을 까먹으며 넷플릭스를 본다. 키즈모드로 들어가서 오늘은 뭘볼건지 묻는데 어느 날 '신비 아파트'라는 만화를 골랐다. 신비 아파트는 하리, 두리 남매와 도깨비가 귀신이 나타나는 아파트에서 귀신들을 승천시키는 내용의 한국 만화다. 미혼에 아이가 없지만 신비 아파트가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콘텐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친구 중 자녀가 이 만화에 열광하는 걸 굉장히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대략의 줄거리를 알고 있다.) 7세 이상이라고 적혀있는데 이걸 보겠다고? 이미 집에서도 매일 보는 것이라며 노래를 완벽하게 따라 부르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아 일단 틀어본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좋아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걸 보는 건가. 오늘 아이들이 고른 에피소드는 알코올 중독인 아빠가 어린 형제를 학대해서 옥상으로 올라간 아이들이 물탱크에 빠져 죽고 귀신이 된 형제를 주인공들이 하늘로 보내준다는 내용인데 옆에서 딴짓하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술이 잔뜩 취한 아빠가 아이들에게 "Crazy kids, get out!" 하면서 화를 내고 있다. 친구가 이 만화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신비 아파트는 한국에서 꽤 인기가 많아 뮤지컬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내용을 정말 어린이들이 봐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넷플릭스를 한편 보고 나면 계속 더 놀자는 동생에게 언니 올리브가 제법 의젓하게 훈수를 둔다.

"이모는 쉬어야 돼. 엄마가 그랬어. 이모한테 아무 때나 찾아오면 안 돼."

이모 방을 하도 찾아가서 엄마한테 몇 차례 주의를 들은 올리브는 내 방에 온 지 한 시간이 넘어가면 동생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아이들이 다급하게 이모를 부른다. 손을 잡아끌고 간 곳은 창고처럼 쓰는 뒷마당이다. 집에 뭔가가 침입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친구네 빌라에 악어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설마 여기도 악어가 왔나 싶었다. 저 구석을 보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데 그 끝에 50cm쯤 돼 보이는 커다란 도마뱀이 있다. 비명과 웃음소리가 마당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당황한 도마뱀이 간신히 도망칠 구멍을 찾아 집 안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아아 그 방향이 아닌데. 하필 막다른 골목으로 도망가 더 이상 갈곳 없어진 도마뱀은 장대 끝에 동그란 매듭을 지어 만든 올가미에 걸려 밖으로 끌려나갔다.


신바람이 난 어린이들,검거되는 도마뱀


 바나는 응석쟁이다. 함께 숨바꼭질을 하다가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울음을 터트려 기어이 꼭꼭 숨어있는 언니와 이모를 불러낸다. 고작 세 살 터울 언니는 늘 동생을 어르고 달래고 양보한다. 첫째로 자란 나는 그 모양이 짠하지만 막무가내로 울음을 터트리는 4살 어린이에게는 져줄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브가 떠났다. 아빠가 있는 자와 섬으로 가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단다. 혼자 남겨진 바나는 이제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내 방에 온다.

"이모네 엄마는 어디 있어? 아빠는 어디 있어? 재밌는 거 보여줄까? 난 분홍색이 좋아. 이모는? 난 아이스크림이 좋아. 이모는?" 하루 종일 조잘조잘 떠들고 젤리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함께 편의점에 간다. 외출을 자주 하지 않는 4살은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보도블록 사이 커다란 틈새를 두발로 깡충 뛰어넘으면 함께 박수를 친다. 혼자 걸을 땐 시시한 길인데 이 어린이와 함께 걸으면 마치 무시무시한 도시 정글을 걷는 것처럼 작은 장애물 하나하나 물리치며 걷는 모험의 길이 된다. 짧은 모험을 마치면 대문 앞 정자에 앉아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헤어진다. 약속이 있어 아이를 들여보내야 하면 그 마음이 또 짠하다. 바나는 이모가 왜 매일 나가야 하는 건지 자기랑 하루 종일 놀면 안 되는 건지 의문 투성이다.


아침마다 꽃을 주는 아이,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던 정자


 나는 누군가와 헤어질 때 뒷모습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꼬맹이를 보낼 때도 그녀가 대문을 밀고 들어갈 때까지 늘 보고 있는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집으로 들어가는 꼬맹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나가 뒤를 돌더니 내게 묻는다.

"이모는 왜 날 계속 보고 있어?"

"나는 널 좋아하니까 계속 보는 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튀어나온 대답인데 꼬맹이는 꽤 마음에 드나 보다. 살짝 웃어 보이곤 손을 흔들며 들어간다. 다음날 또 집으로 가는 꼬맹이 뒤꽁무니를 눈으로 좇고 있는데 몇 걸음 떼다 말고 또 뒤를 돌아본다.

"Do you love me?"

아 이 질문이 애틋하고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당연하지. 사랑은 그런 거야. 사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꼬맹이는 언젠가 잊겠지만 나중에 내가 없어지거나 계속 뒤를 바라보지 못할 때 혹시 더 이상 저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괜히 걱정이 됐다.



 바나의 엄마가 4살을 맞은 꼬맹이의 생일 초대를 두 번이나 했다. 첫 번째 초대는 웃음으로 사양했는데 두 번째 초대는 거절할 수 없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던 분홍색 코끼리 인형을 품에 안고 쭈뼛거리며 빌라 1번으로 갔다. 꼬맹이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끊임없이 모여든다. 빌라 1번은 이미 생일잔치가 한창이다. 알록달록한 갈랜드와 풍선이 여기저기 걸려있고 수영장에는 커다란 튜브가 여러 개 떠있다.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케이크가 있고 아래엔 선물이 가득하다. 꼬맹이가 좋아하는 유니콘 모양 피냐타도 걸려있다. 꼬맹이와 친구들은 광대 아저씨랑 신나게 게임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어쩐 일인지 바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신나 보이지 않는다. 사실 바나는 낯을 엄청 가려서 가족 외에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다. 바나의 가족들은 나를 따라다니는 꼬맹이를 보며 항상 신기해했다. 이 낯가리는 꼬맹이는 자기 생일 파티에서마저 낯을 가리고 있다. 좋아하는 색깔 풍선이 터져서 울음보가 터진 꼬맹이를 안고 5분쯤 서있었더니 팔이 떨려온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인사한 뒤 집으로 도망 왔는데 바나의 엄마가 생일잔치 음식을 못 먹어서 어떡하냐며 도시락을 보내왔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생일잔치에 어떤 걸 먹나 궁금해서 주방을 기웃거렸는데 괜히 부담을 준 건가 싶었다. 파스타와 가도 가도 (땅콩소스 샐러드), 카나페와 인도네시아 디저트, 과일 같은 것들이 잔뜩 있었다. 도시락을 옆에 두고 차가운 바닥에 대자로 뻗어 누웠는데 생각할수록 재밌다. 내가 지금 여기서 4살짜리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서 애들이랑 놀다 오다니.


4살 생일파티 풍경
생일잔치 음식


 꼬맹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 이모로 통했다. 집안에서 낯선 누군가를 마주칠  상대방이 환하게 웃으며 “ 당신이 하나 이모군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하면 바나의 친구 유모이거나 친척이다. 발리를 떠날 때쯤 미리 빌라 1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꼬맹이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말을 이해한 건지 아닌지   없다. 언젠가부터 바나는 마주칠 때마다 하나 이모를 외치며 달려와 작은  팔로  초쯤 말없이   끌어안고만 있는다. 어쩐지 평소와 다른 조용한 모습에 꼬맹이가 지금  알고 이러는 건가 기분이 이상해진다.  아이에게 헤어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고민만 하다 결국은 인사 한마디 하지 못하고 떠났다. 지금 바나는 이름도 낯선 나라 한국에서 왔던 하나 이모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요즘 나는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작은 꽃들을 마주치면 아침마다 작은 꽃송이들 손바닥 가득 안기던  아이가 생각난다.






작은 액세서리나 소품, 문구류를 파는 가게예요. 어린이들 선물을 사거나 머리핀 머리끈 같은 것들이 필요할 때 구경하기 좋아요. 구글맵에 Stroberi를 치면 여기저기 매장이 있어요.

Stroberi

(0361) 4471219

https://maps.app.goo.gl/yzvZbCSDUHNaysYz7?g_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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