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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23. 2022

발리에서 먹는 백반, 나시 짬뿌르

Nasi campur


 나시 짬뿌르는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을 한 접시에 담아 먹는 음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시고렝에 그 '나시'다. nasi는 밥, campur는 섞다라는 의미로 말 그대로 밥과 반찬이다. 한국에서 백반을 한 접시에 담아먹는다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카사바 이파리로 만든 나물과 매콤 달콤하게 양념을 한 템페 볶음, 갈비찜처럼 오랜 시간 여러 가지 양념으로 푹 끓여 만든 비프른당, 매콤하게 양념한 닭튀김, 간장소스로 양념한 닭튀김, 평범한 닭튀김, 그냥 간장소스로 조린 닭, 빨갛게 양념해서 조린 닭, 삶은 달걀튀김, 간장소스로 조린 삶은 달걀, 옥수수와 잘게 썬 채소를 각종 향신료와 섞어 튀긴 콘 프리터, 짭짤한 면요리, 발리 특유의 시큼한 두부를 빨간 양념으로 조린 두부조림, 줄콩, 가지나물, 데친 브로콜리 등등 당장 기억을 더듬어 떠올리는 평범한 짬뿌르 가게 진열장 안 반찬 종류만 나열해보아도 이 정도다. 발리 짬뿌르 가게 대부분은 등나무를 엮어 만든 소쿠리같이 생긴 접시를 사용하는데 이 접시가 어찌나 탐이 나는지 마음에 드는 짬뿌르 접시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소중하게 들고온 짬뿌르 접시


스미냑에서 자주 가던 짬뿌르 가게는 (지금은 르기안 쪽으로 이사했음) Warung Cabe Cabean이다. 대로변에 있어 매연이 걱정됐지만 모든 반찬이 맛있어서 매연이고 뭐고 참을 수 없다. 들어가자마자 주스 코너에 가서 수박 주스를 한 잔 시키고 수박 믹서로 갈아줄 동안 쇼케이스로 달려간다. (수박주스 1잔 15K=1,300원) 이름 모를 낯선 음식들. 그중에 아는 맛과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골라 밥과 함께 담는다. 주인장이 접시를 척 들고 꽃 모양 코팅종이를 깔면 밥 색깔을 고른다. 하얀 쌀밥, 강황을 섞어 지은 노란 쌀밥, 빨간 쌀이 섞인 메라 (merah). 밥 색깔을 고르면 이제부터 반찬을 마음껏 고르면 된다. 짬뿌르 가게 대부분은 메뉴에 이름이 붙어있지 않아 생김새와 색깔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른당이랑 고렝안,채소들을 실컷 담고 갈비탕 같은 국도 하나 주문한다. 소고기 갈비탕같이 생긴 것은 소고기 갈비탕 같은 것이다. soto (국) sapi (소) 보통 다른 가게에서 먹는 소토 사피는 너무 짜서 시킬 엄두도 안 났는데 이 가게 음식은 하나도 안 짰다. 이러면 현지 사람들이 좋아하려나 싶게 안 짜다. 친구가 시킨 메뉴 한 숟가락 떠먹어보고 기뻐서 냉큼 하나 주문했다. 발리에서 짜지 않은 음식을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반갑다. 고기를 얼마나 오래 끓인 건지 뼈에 포크를 갖다 대면 고기가 뼈에서 스윽 분리될 정도로 부드럽다. 기름이 엄청 둥둥 떠있지만 이 정도면 감사한 한 그릇이다. 이거 한 그릇에 얼마일까? 친구랑 내기를 했다. 친구는 25K 나는 5K를 불렀다. 밥 한 그릇을 이렇게 많이 담아도 40k인데 저게 그렇게 비쌀까? (내 생각) 소고기는 어디서나 비싸다. 여기도 가격이 그럴 것이다. (친구 생각) 다시 한번 가격을 수정해서 친구는 20k 나는 10k로 바꿨다. 가까운 가격을 맞춘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진 사람은 오늘 밥값을 내야 한다.


진열장 안 가득한 반찬들. 그옆엔 또다른 유리 진열장이 있다. 저렇게 하나 가득 담아도 3,000원이다. 그렇다면 국 한그릇은?

 접시 하나 가득 담긴 음식을 열심히 먹고 수박주스까지 들이부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계산대에 서서 영수증을 확인했는데 내가 졌다. 저 고깃국은 한 그릇에 23k (2,200원)였다. 밥값보다 더 비싼 국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투덜거렸지만 맛있었으니 됐다. 이 가게는 현지인보다 외국인 손님이 많다. 도시락통을 따로 들고 와 밥과 반찬을 포장해가는 외국인들을 볼 때마다 나도 도시락통을 들고 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매번 까먹고 유리 진열장 앞에 서서 아차 한다.


 또 사랑하는 짬뿌르 가게가 있다. 남쪽 바닷가로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들른 곳인데 얼마나 마음에 드냐면 이 짬뿌르를 먹으러 40분쯤 오토바이를 타고 와도 괜찮겠다 싶은 맛이다. 짬뿌르 가게는 숙소 바로 옆이었는데 지나가면서 기웃거릴 때마다 항상 손님이 한가득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저렇게 사람이 가득 있는지 궁금해서 안 가볼 수 없다. 이곳은 발리에서 본 짬뿌르 가게 중에 제일 아기자기하고 깔끔하다. 먹고 싶은 반찬 이것저것 담아 한가득 먹어도 가격이 저렴하다. 뭘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리 비싼 것들을 담아도 40k (3,600원)을 넘겨본 적이 없다.


오샤레 짬뿌르 가게에서 제일 기쁜 건 진열장 안 반찬마다 명찰이 놓여있는 것이다. 스미냑이나 짱구에서 외국인들 많이 가는 짬뿌르 가게를 가도 반찬에 명찰이 없다. 뭔지 모르는 것들을 물어봐가며 대충 이런 맛이겠지 짐작해가며 먹었던 그동안의 짬뿌르와 차원이 다르다. 제목을 보고 맛을 유추해서 주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적이다. 줄콩 라와르와 달콤 새콤 치킨, 템페 레드 카레, 템페 칠리 솔트, 템페 볼. 제목을 찬찬히 읽는 것도 재미있다. 외국인 많은 동네답게 템페 종류도 가지가지다. 채식주의자들에게 어떤 인도네시아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템페를 좋아한다는 답변을 많이 들었다. (템페는 콩을 발효시켜서 만든 인도네시아 음식이다. 딱딱한 청국장 같은 느낌이지만 식감이 더 바삭하고 맛은 고소한 것이 두부랑 비슷하다.)


 나시고렝이나 미고렝을 주문할  끄루푹이라는 새우칩  과자를  때마다  밥이랑 과자를 같이 먹는가 생각했는데 짬뿌르 가게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있다.  밥반찬으로 볶음면을 먹는가.  질문은 오래 지나지 않아 시들해졌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가끔 논쟁이 되는  단팥빵이라길래 단팥빵이 어떻게 논쟁거리가   있는지 이해가  됐다. 곡식에 곡식이 들어있는  너무 이상하다파와 단팥빵 맛있다파가 잊을만하면  번씩  문제로 논쟁을 벌인다고 했다. 내가 단팥빵이 이상할 거라고   번도 생각해본  없는 것처럼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볶음밥을 새우칩에   먹거나  위에 면을 얹어먹는  이상하다고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겠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남쪽 바닷가에서 먹는 짬뿌르의 장점이 또 있다. 더운 나라 특유의 짜고 단맛이 거의 없다. 적당한 간에 적당한 양념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만은 늘 과식을 했다. 카사바 이파리 나물에 간이 적당하니 한국에서 먹던 나물반찬들이 절로 생각난다. 특히 발리 음식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콘 프리터다. 옥수수와 채소 반죽에 향신료를 섞어 튀기는 콘 프리터를 앉은자리에서 네 개쯤 가뿐히 해치울 수 있다.


 오샤레 짬뿌르 가게는 아침 8시에 오픈하지만 오픈과 동시에 음식 준비를 시작한다. 8시에 가면 밥과 반찬 두어 종류뿐이다. 대략 11시쯤 가면 대부분의 반찬이 나와있으니 점심시간에 맞춰 가는 게 반찬 선택의 폭이 넓다. 시간 맞추기가 까다롭지만 아침 아홉 시에 가서 반찬이 추가로 진열장에 놓일 때마다 하나씩 추가하다 보면 짬뿌르 가게를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 가는 게 꽤나 중요한 일이다.


 사실 이 가게의 진짜 이름은 오샤레 짬뿌르 가게가 아니다. 처음 이 식당에 왔을 때 재영 오빠가 이곳은 가게도 멋지고, 도자기 접시도 멋지다며 (대부분의 짬뿌르 가게는 다 비슷하게 생긴 저렴한 등나무 접시를 사용한다.) 오! 여기는 되게 오샤레 짬뿌르다라고 말했는데 이 표현이 너무 재밌어서 우리끼리 말할 땐 오샤레 짬뿌르 가게로 부르기 시작했다. 버릇처럼 친구들한테도 오샤레 짬뿌르 먹으러 간다고 했는데 누군가 구글맵에 아무리 오샤레 짬뿌르를 찾아봐도 안 나온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미안해요. 오샤레 짬뿌르는 별명이에요.  


짬뿌르, 정말이지 이름은 너무나 낯설지만 나에겐 발리 생활 중 만난 뜻밖에 ‘전주 가정식 백반’ 같은 메뉴였다.


* 오샤레: おしゃれ 멋(모양)을 냄, 멋쟁이




빙인비치 오샤레 짬뿌르 가게








본문 첫 번째 짬뿌르 가게. 지금은 르기안 쪽으로 이사를 갔어요.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면서 인테리어도 멋있게 바뀌어서 사진 속 분위기랑은 다르답니다.


https://goo.gl/maps/9QrCmbnWPufVZtyU8



본문 두 번째 짬뿌르 가게. 빙인비치 근처라면 가볼 만한 곳이에요.

https://g.page/dalviekitchen?share



짱구에서 짬뿌르를 먹고 싶다면 와룽시카!

https://goo.gl/maps/c7GnX3oajktqvMtG6


우붓 짬뿌르 맛집은 이곳! 짬뿌르 하나를 주문하면 접시에 밥과 반찬이 적당량 골고루 덜어져 나와요. 골라먹는 재미는 없지만 전통 가옥에서 가정식 백반 먹는 느낌으로 먹을 수 있어요.

Sun Sun Warung

0813-5318-7457

https://maps.app.goo.gl/54ALZM5nwkqgraPcA?g_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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