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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26. 2022

발리에서 밀가루떡이 먹고 싶으면 만들어야지 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나는 떡볶이 귀신이다. 온 동네 맛있다는 떡볶이는 다 찾으러 다니는 통에 친구들이 머릿속에 떡볶이 지도 같은 걸 그려놓고 사냐고 놀릴 정도로 떡볶이만 좋아하고 떡볶이만 먹는다. 처음 발리에 간다고 이야기했을 때 친구들이 제일 걱정해 주었던 것은 "떡볶이 못 먹어서 어떡해?"였다. 사람들이 정말 거기 가서 지내는 게 괜찮겠냐며 물을 때도 진지한 표정으로 떡볶이 말고는 걱정되는 게 없다고 대답했고 진심이었다. 비싸고 좋은 식당에 가는 것보다 오래된 떡볶이 가게를 더 좋아하고 쌀떡보단 밀떡을 더 좋아한다. 발리에서 밀가루떡 구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밀가루 떡 만드는 방법을 열심히 검색했다. 레시피를 달달 외울 정도로 읽었고 그중 떡이 가장 탱글탱글해 보이는 레시피를 골라 여러 번 연습을 했다. (계량을 정확하게 한 블로그 글도 봤는데 계량대로 했을 때 대실패 했다.) 먼저 떠난 ㅌ씨 가방에 1kg짜리 떡볶이 소스도 넣었다. ㅌ씨는 내가 떡볶이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있으니 군소리 없이 무겁고 커다란 떡볶이 소스 봉지를 들고 가줬다.


첫 번째 도전

밀가루 500G과 물 적당량 (촉촉한 수제비 반죽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물을 가감하는 것이 좋다), 소금, 후추, 기름을 한데 뭉쳐 치댄다. 많이 치댈수록 떡이 쫄깃하고 부드러워진다. 냉장고에서 하룻밤 휴지 시킨 반죽을 떡볶이 떡 모양으로 성형해 끓는 물에 넣어 익힌다. (15분에서 20분 사이) 밀가루떡은 의외로 오랜 시간 익혀야 한다.

 얼음물에 담그면 떡이 더 쫄깃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발리에선 얼음 녹는 속도도 무척 빠르다. 얼음을 그릇에 가득 채워 떡을 넣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얼음이 금세 녹아버렸다.

 밀떡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자려고 누워서도 얼마나 두근두근했는지 모른다. 내일이면 드디어 여기서 밀가루떡으로 만든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고대하던 첫 번째 밀떡은 반만 익힌 밀가루 반죽을 먹는 맛이었다. 씹을 때마다 날밀가루 맛이 났고 쫄깃하지도 않았다. 짐작되는 몇 가지 요인을 보완해서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다. 떡은 끓는 물에 최대한 오래 삶아야 했고 반죽에 물을 조금 더 넣어 더 촉촉한 밀가루 반죽을 만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기름을 좀 더 넣어야 했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반죽에 기름을 크게 2 숟갈 넣었고, 물 양도 조금 더 늘렸다. 반죽을 많이 치대고 싶어서 밀가루 반죽을 작은 덩어리로 분할해 한참 치댔다. 끓는 물에 20분 이상 삶고 얼음에 담근 후 아예 냉동실에 넣어서 얼려버렸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사각 어묵을 사 왔다. (발리에서 한국의 사각형 어묵을 찾으려면 큰 마트로 가야 한다.) 이번엔 냉동실에서 이틀을 보관했다. 그리고 밀가루 떡은 오래 끓이면 더 맛있다고 해서 양념이 잘 배도록 한참 끓였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정말 판매하는 밀가루 떡처럼 쫄깃하고 탱탱한 밀떡이 완성됐다. 이렇게 밀가루떡을 세 번쯤 만들고 나서 한국 마트에서 여러 가지 떡볶이 떡을 파는 것을 본 뒤로 떡볶이는 이제 사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때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핀잔을 듣는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땐 육수를 내는 것부터 시작하고, 떡볶이를 만들 땐 집에서 김말이를 튀겨내고, 휴일에도 집에서 쿠키나 케이크를 만들어 리본을 하나하나 달고 있는 것, 캠핑을 가서 굳이 닭을 튀기고 소스를 따로 만들어 치킨 요리를 내는 것 같은 일들이 주변 사람들 눈에는 영 성가셔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떡볶이를 먹고 싶으니 밀가루 떡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그렇게까지 해서 그걸 먹어야 해?”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살짝 의기소침해질법한 일인데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겨서 “응. 난 이런 게 정말 재밌어.” 하고 웃는다.


 밀가루떡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나도 그거 너무 해보고 싶었어. 우리 같이 할까?”라고 말하는 친구는 처음이라 마음이 떨렸다. 세상에 이런 걸 하고 싶은 사람이 또 있다니, 그런데 우리가 만났다니! 심지어 나보다 한술 더 떠서 밀떡 길이를 자로 재려고 들다니. 남들이 들으면 웃을 수도 있겠지만 내겐 하늘에서 운명 같은 사람이 벼락처럼 눈앞에 나타난 느낌이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린, 중용 23장


 

 밀가루떡 만들면서 무슨 중용씩이나 들먹이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앞으로도 난 이렇게 작은 일들에도 최선을 다하며 살 작정이다. 비록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사소하거나 시시한 일들이라고 해도 그런 것들이 세상을 변하게 하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나하나만큼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밀가루떡 만들기 대성공!





발리 떡볶이 맛집 추천:


1. 브로큰 커피가 조금 더 일찍 문을 열었더라면 밀가루떡을 만들려고 저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발리에서 먹어본 떡볶이 중에 제일 맛있어서 행복했어요.

Broken Coffee

0851-6105-1821

https://maps.app.goo.gl/E1bEG4aTe4BRVq9XA?g_st=ic



2. 유제품 가격이 비싼 발리에서 이렇게 쭉쭉 늘어나는 치즈를 처음 봤어요. 그런데 여기는 사실 짬뽕 맛집입니다.

korea chicken 한국 치킨

0813-5368-3331

https://maps.app.goo.gl/wrdQayh6Qwwoyq566?g_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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