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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Sep 30. 2022

발리니스 이마에 붙은 홀리한 밥풀


 발리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발밑에 차이는 짜낭사리를 밟지 않으려고 깡총깡총 뛰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짜낭사리는 색색의 꽃과 제물을 담고 향을 피워 신에게 바치는 작은 대나무 바구니다. (canang: 제물)

 발리에서는 가정집 대문 앞, 사원, 마트나 약국 아니 길을 걷다가도 짜낭사리를 볼 수 있다. 짜낭사리 위에는 꽃과 함께 밥이나 과자, 사탕, 담배나 동전 같은 것들을 올린다. 아침 일찍 우붓 시장에 가면 짜낭사리위에 올릴 꽃들을 커다란 바구니 하나 가득 담아두고 파는 상인들을 볼 수 있다.


 짜낭사리에 담긴 쌀은 참새들이 쪼아 먹고, 거리의 강아지들은 그안에 있는 밥을 먹는다. 밤이 되면 미처 발밑을 확인하지 못한 보행자들에게 밟히거나 오토바이에 치인 짜낭사리들이 거리를 뒹굴고, 날이 밝으면 다시 새로 만들어낸 짜낭사리들과 함께 발리의 아침이 시작된다. 코로나 이전에 읽은 기사에서 이렇게 매일 짜낭사리를 만들거나 종교 행사에 사용하는 비용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는 발리 사람의 인터뷰를 읽었다. 코로나로 사람들의 수입이 현저하게 줄어든 지금도 열심히 기도를 하고 행사에 쓸 물품을 만드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에 쓸 물품을 구입하는데 급여의 절반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발리니스의 신앙심이 참 대단하다.


나의 오랜 친구 Abenk 씨와 먼길을 동행하던 날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발리 사람들은 매일 짜낭사리를 올리던데 보통 하루에 몇 개를 쓰나요?"

"집 크기마다 달라요. 싱아라자에 있는 우리 집은 가족들이 다 함께 살고 있어서 각각의 방과 사원, 대문 앞에 두는 짜낭사리를 다 합치면 40개쯤 돼요. 매일 40개의 짜낭사리를 만들어요."

"Abenk은 지금 일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 기도하는 비용이 혹시 부담스러울 때도 있나요?"

"맞아요.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갖는 사람들도 많아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먹고살기도 힘든데요."


발리도 세대 간 의견 차이가 있다니 이방인의 속마음이 어쩐지 조금 후련하다. 이런 일로 속이 후련하기까지 한 이유는 기도하느라 밥을 굶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그저 들었지만 마음은 답답했다.


 오늘은 마침 갈룽안과 쿠닝안 명절 준비 기간이라 발리 전역에 뻰조르가 가득하다. Penjor는 기다란 대나무에 여러 가지 장식을 달아 집 앞에 세워두는 명절의 상징이다. 집 한 채에 하나씩만 둘 수 있다. 도로 양옆으로 늘어진 뻰조르가 아치 형태를 만들고 있어 뻰조르 아래를 지나가면 마치 대나무들이 어서 오라며 환영해주는 기분이 든다. 남에 나라 명절에 이런 말을 하면 혼쭐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이 뻰조르들이 잔뜩 보이는 갈룽안과 쿠닝안 시즌이 발리 명절 중 제일 좋다.

"Abenk, 또 궁금한 게 있어요. 뻰조르는 왜 어떤 집 앞에 있는 건 말랐고 어떤 집 앞에 있는 건 크고 화려해요?"

"그건 부잣집과 가난한 집 차이예요. 일단 기다란 대나무는 하나에 40k거든요 (3,600원) 근데 거기에 달린 장식은 한 개에 10k (900원)도 있고, 100k (9,000원),200k (18,000원)도 있어요. 그 장식을 하나만 달지 않고 여러 개 달아야 하니까 부잣집일수록 더 화려하고 비싼 장식을 달 수 있어요."

긴 대나무 하나에 장식이 8-10개쯤 달려있으니 이 장식에서부터 뻰조르의 빈부격차가 벌어진다.

"저기 봐요. 저 정도 뻰조르면 1.5jt (135,000원)는 들었을 거예요."

Abenk의 손가락 끝에 키가 크고 장식이 화려한 뻰조르가 서있다. 몰랐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이거 참 큰일이다. 여태 그 아래를 지나가기만 해도 즐겁던 뻰조르에 자꾸 가격을 매겨보게 된다. 부잣집 뻰조르, 가계 사정이 어려운 뻰조르가 눈에 확 들어온다. 각 집마다 한 개씩만 세울 수 있다는 건 언뜻 공평해 보이지만 일 년에 두 번, 한 달 이상 집 앞에 둘 뻰조르에도 자본주의 계급이 있으니 하나도 공평하지 않은 것도 같다.


 이제 제일 궁금한 밥풀이 남았다. 이른 아침 기도를 마친 발리 사람들의 이마에는 밥풀이 붙어있는데 아침에 본 밥풀이 늦은 오후까지 안 떨어지고 신통방통하게 찰싹 달라붙어있어서 볼 때마다 신기했다. 도대체 이 밥풀은 왜 붙이는 걸까? 그리고 밥풀이 왜 안 떨어질까? 떨어지면 또 붙이고 또 붙이고 그러나?


 발리 사람들은 기도를 마치고 이마와 가슴에 붙인 밥풀을 통해 좋은 기운을 받아들여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밥풀은 holy rice라고도 부른다. 홀리한 밥풀이라니 표현이 너무 재밌어서 웃고 싶은데 웃으면 안 된다. (참아야지) 좋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밥풀이라면 나도 몇 개 붙여보고 싶기도 하다.


코로나가 한창일 땐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를 하고, 물을 뿌려주고,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다.


Abenk도 한국 문화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포장마차가 뭐예요?"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발리 친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포장마차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너무 웃고 싶다.) 포장이라는 것은 선물 같은 것에다가 쓰는 말인데 마차라니? 마차는 말이 끄는 수레인데 그걸 포장하는 건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요? 질문이 너무 재미있고 외국인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저 심정이 이해가 된다. 심지어 요즘 한국의 포차 (포장마차를 줄인 말)는 옛날의 그 포장마차도 아니니까.

"포장마차는 지금 뜻이 완전히 다른 말이 됐지만 아주 오래전 한국에서는 손수레에 포장 비닐을 씌워 간이식당처럼 장사를 하는 곳을 포장마차라고 불렀어요. 발리로 치면 Kaki lima 같은 거예요. 저는 한국사람이니까 Kaki는 다리고 lima는 5인데 왜 이게 까끼리마가 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발리에서는 손수레의 바퀴 갯수 사람 다리 갯수를 합쳐 사람이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음식을 파는 것을 까끼 리마라고 부른다.

Abenk이 "아하." 하고 이해해주니 설명을 잘한 것도 같아 기분이 뿌듯해진다.


웃고 떠들다 보니 두 시간이 넘는 먼 거리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기도를 하고 왔다며 전통복장을 입고 이마에 밥풀을 붙인 Abenk과 작별인사를 하고는 뻰조르 사이를 걸어 약속 장소로 간다. 오늘따라 길게 늘어진 대나무들이 유난히 흔들거리는 것이 다른 날보다 더 환영받는 기분이 들어 발걸음이 신난다. 그래. 부잣집 뻰조르면 어떻고 가난한 집 뻰조르면 어때. 기다란 대나무 마디 사이 정성스럽게 장식을 매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똑같을 텐데.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뻰조르와 세리모니 행렬들



발리의 전통 마을. 길게 늘어선 대나무 장식으로 유명합니다. 대나무 숲이 멋져요.


https://goo.gl/maps/3sbJ8HMd8QNhXA3YA


발리니스들이 처음 발리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역이 우붓이라 종교 행사가 다른 동네보다 훨씬 많아요. 운이 좋다면 스타벅스에 앉아서 세리모니 행렬이 지나가는 걸 구경할 수도 있어요. 손재주 좋은 발리니스들의 멋진 석조는 우붓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요.


https://goo.gl/maps/LpPybV3n4Fnvqit9A



모든 건물이 대나무로 지어진 발리의 학교.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방문 프로그램이 있어요.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에요.)


https://goo.gl/maps/t3hyG7XQ14L8caW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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