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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Oct 24. 2022

오후 네시, 룸삐아 룸삐아 외치는 소리


 아주 오래된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새카만 밤이 내리고, 잔뜩 졸린 눈이 깜빡 감길 즈음 정신이 번쩍 나는 소리가 들린다. 찹싸아아알떠억 메밀무우욱 사리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지만 찹쌀떡과 메밀묵 장수 아저씨들은 늘 비슷한 톤으로 찹쌀떡을 마치 일곱 글자쯤 되는 단어처럼 길게 늘여가면서 한밤중 찹쌀떡을 사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찹쌀떡과 메밀묵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나는 그때 한밤중에 찹쌀떡을 먹기에는 너무 어렸고 메밀묵사라고 외치는 소리가 가로등 골목을 벗어날 때쯤이면 아득해지는 아저씨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들기 일쑤였으니까. 겨울밤이 되면 늘 들려오던 소리였는데 여전히 그 메밀묵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방식으로 파는 음식인지 알지 못한다.


 발리에도 비슷한 소리가 있다. 오후 네시쯤 골목 어귀에서부터 종소리와 함께 이부(Ibu=아주머니를 통칭)의 목소리가 들린다. 룸삐아 룸삐아 댕댕댕댕 룸삐아 룸삐아 댕댕댕댕 룸삐아 파는 이부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지면 어린이가 벌떡 일어나 흉내를 낸다. 룸삐아 룸삐아 마치 짧은 노래 같기도 하고 얼핏 찹쌀떡사려와 비슷한 이 소리를 흉내 내는 어린이를 보며 엄마랑 이모는 웃음이 터진다. 룸삐아는 튀김만두와 비슷한 길거리 간식이다. (필리핀 전통 음식이라고 한다.) 바닷가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직사각형 모양의 투명한 아크릭 케이스에 룸삐아를 잔뜩 담아 머리에 지고 다니는 이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안에는 여러 종류의 튀김도 함께 들어있다. 룸삐아를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가위로 잘라 접시에 담고 소스를 곁들여준다.


수레에 싱콩 칩을 잔뜩 싣고 지나가는 사람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싱콩은 카사바의 인도네시아어다. 맛과 식감이 감자칩이랑 비슷하다. 싱콩을 튀기면 고구마튀김과 비슷한 맛과 식감이 나고, 칩으로 만들면 감자칩이랑 비슷하면서도 더 담백하고 슴슴하다. 간이 센 더운 나라답게 싱콩 칩에 빨간 가루를 입혀 매운맛 싱콩 칩을 파는데 이맛이 또 별미라 하나둘 집어먹다 보면 어느새 빈 봉투만 들고 있기도 하다. 싱콩 칩을 주문하면 쓰레받기 하나 가득 퍼담아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음식을 쓰레받기로 푼다는 것이 처음엔 어색했는데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다.

싱콩튀김과 싱콩칩


어느 날은 옛날 드라마에서 보던 두부장수 종소리 같은 게 들려와서 도대체 뭘 파는 걸까 궁금해서 쫓아나가 보았다. 박소 파는 아저씨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종이 아니라 유리병을 젓가락으로 두들기는 소리였다. 고기나 생선에 밀가루를 섞어 동그랗게 성형한 어묵 비슷하게 생긴 박소와 튀김, 면같은 것들을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어 소스를 얹은 이 음식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엄청 자주 먹는다. 숙소 앞에 박소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유리병을 두들기면 직원들도 빌라 꼬맹이도 다 같이 정자에 앉아서 박소 한 그릇씩 시켜먹고 있다.


 오늘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양재역에 갔다가 손수레를 끌고 가며 찹쌀떡을 외치는 아저씨를 만났다.  오랜만에 듣는 찹쌀떡사려 소리가 마냥 신기했다.


 한국의 길거리 음식과 다른  닮은 발리의 길거리 간식들이 가끔 생각날때가 있다. 속살이 노오란 군고구마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던 마음을 달래주었고 박소 종소리를 들으면 80년대 골목길로 돌아가 친구들과 놀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메뉴도, 조리법도, 심지어 재료까지 뭐 하나 한국이랑 비슷한  없지만 발리의 길거리 간식은 내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오랜만에 찹쌀떡 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아저씨를 보니 발리의 룸삐아 이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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