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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Oct 07. 2022

꼬마 잭 오 랜턴, 학교에 가다

“trick or treat.”


 어느덧 10월도 마지막 주를 향하고 있다. 곧 핼러윈이다. 한국에서는 핼러윈이거나 말거나 상관없지만 여기선 숙제가 있다. 어린이 학교에서 열릴 핼러윈 행사를 위해 분장 준비하는 것을 함께 돕기로 했다. 어린이가 6살이 될 동안 SNS로만 보던 핼러윈 의상 만들기에 동참할 수 있다. 친구 가족은 이벤트에 진심이다. 생일, 결혼, 기념일 등등 의상이나 데코레이션, 소품 등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해 준비하는 모습을 17년간 늘 SNS로만 봐왔다. 남들이 신경도 안쓸 부분까지 구석구석 세심하게 준비하는 걸 보면서 한 번쯤 저런 이벤트 준비를 같이 해보고 싶었다. 그간 늘 각자 다른 나라에 살아왔으니 언감생심 꿈도 꿔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발리에 함께 살고 있다. 어린이의 분장 준비를 함께 할 수 있다니 너무나 설렌다. 고작 초등학교 행사 준비에 뭐 그리 요란을 떠냐며 핀잔을 받을 수도 있지만 17년 동안 좋아요만 누르던 친구의 이벤트에 손을 보탤 수 있다는 게 내겐 보통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올해 핼러윈 분장은 ‘잭 오 랜턴’으로 정했다. 일단 선명한 오렌지색 유럽 호박을 찾아야 하는데 호박 찾는 것부터 난관이다. 발리의 늙은 호박은 한국 늙은 호박과 똑같다. 넓적하고 둥그런 누런색 호박이다. 스미냑과 꾸따에 있는 마트란 마트는 다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어 결국 어린이의 아빠가 사누르까지 다녀왔다. 핼러윈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남은 호박이 몇 덩이 없어서 고르고 골라 간신히 색이 곱고 어린이 머리통에 잘 맞을법한 사이즈의 호박을 구했다. 아빠가 호박을 구할동안 엄마와 이모는 코듀로이 오버롤을 만들기 위한 원단을 찾으러 다녔다. 사실 옷까지 만드는 건 계획에 없었는데 토코페디아 (인도네시아의 쿠팡 같은 인터넷 쇼핑 플랫폼)를 다 뒤져도 성에 차는 옷을 찾지 못한 친구가 핼러윈을 사흘 남기고 옷을 만들어버리겠다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지쳐 떨어져 나간 이모를 두고 혼자 온 동네를 뒤져 마음에 쏙 드는 원단을 찾았다며 친구는 그날 밤부터 부지런히 바느질을 시작했다.


손바느질로 한땀한땀 만든 의상, 최대한 가볍게 만들기 위해 속을 파내고 또 파낸 호박

 

호박 속을 파내고 동그란 눈, 삼각형 모양 코, 웃는 모양 입을 그린다. 선하나라도 잘못 그으면 큰일이다. 발리에서 다시 이 호박을 찾을 수가 없으니 단단한 껍데기를 파내는 손길이 덜덜 떨린다. 무른 속을 다 파낸다고 끝이 아니다. 껍데기에 가까울수록 돌덩이처럼 단단해지는 호박을 최대한 얇게 파내야 한다. 어린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까지 호박 속을 파내려면 아직 멀었다.


 아빠는 호박 속을 파내고 있고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바느질을 하고 있고 이모는 파낸 호박 속으로 수프를 끓이고 전을 부친다. 유럽의 늙은 호박도 한국 호박이랑 맛이 똑같아서 늙은 호박전을 부쳐내니 달콤하고 고소하다. 친구 가족은 늙은 호박전이라는 음식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다며 마냥 신기해했다. 사흘을 꼬박 다 같이 호박을 파고 손바느질을 했다. 발리는 조명이 밝지 않다. 한국처럼 밤에도 온 세상이 환하도록 하얀 전등을 쓰지 않는다. 어두침침한 밤에 조선시대 삯바느질하는 사람처럼 바늘을 바짝 붙잡고 바느질을 하는 친구 뒷모습이 짠하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게 완성됐다. 친구는 시력을 살짝 잃은 것 같고 오빠는 새벽 세시까지 호박을 파다가 팔힘을 잃었다. 이모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영혼을 잃은 것 같다. 코듀로이 원단이 겹치는 부분 중 도저히 손바느질로 안 되는 곳은 동네 수선집에 맡겨서 해결했다. 미싱이 드르륵드르륵 돌아가는 걸 보면서 지난 사흘이 허무해졌다.


 다음날 아침 다들 퀭한 얼굴로 어린이 등굣길에 따라나섰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뛰어가는 꼬마 잭 오 랜턴의 뒷모습이 귀엽다. 청록색 코듀로이 오버롤을 멋지게 차려입고 오렌지색 호박을 뒤집어쓴 뒤통수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나니 어쩐지 홀가분해진 어른 셋은 마침내 마음에 여유를 되찾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오후 두 시, 학교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어린이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턱을 다쳤다고 한다. 괜히 호박 같은걸 머리에 뒤집어씌워 보내서 넘어졌나 싶어 가는 길 내내 울고 싶은 심정이다. 자세한 전말을 들어보니 호박은 쓰고 있지 않았고 그저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졌다고 하는데 턱에 상처가 꽤나 깊게 벌어져있다. 발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외과의를 찾아가서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상처를 소독하고 작은 밴드 하나 붙이고는 끝이란다. 한국이었다면 꼼꼼하게 다 꿰맸을 텐데 이 정도 치료만으로 괜찮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몇 달 뒤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상처가 아물었다. 어린이 턱 아래 상처는 이제 꽤 희미해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응급실에 다녀오고나서도 6개월이 넘도록 매일 재생 밴드를 챙겨 붙인 엄마 아빠 덕분이다. 단 한순간도 어린이 턱에 재생밴드가 떨어지는 걸 본적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보살핌이 있었다. 덕분에 깊게 벌어져있던 턱의 상처가 많이 좋아졌다. 엄마, 아빠는 재생 밴드를 항상 지퍼백에 담아들고다니며 6개월이 넘도록 끊임없이 어린이 턱을 살폈다. 이모가 아무리 어린이를 사랑한대 봤자 이모는 같이 뛰어놀다가 재생 밴드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계속 노는 사람이고, 엄마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턱에 재빨리 새로운 밴드를 붙여주는 사람이었다. 어린이 턱에 새로운 밴드를 붙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라는 존재는 이런 걸까 알수없는 기분이 들어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내 왼쪽 팔목에는 희미한 화상 자국이 있다.  5살 무렵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에 손을 덥석 집어넣어서 혼비백산한 엄마가 왼쪽 팔을 쭉 걷어올렸다가 살이 쓸려 올라가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다시 내려서 피부를 덮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때 그렇게 하면 안 됐는데.." 하며 연신 내 왼쪽 팔목을 본다. 주전자에 손을 넣은 건 나인데도 어쩐지 그 상처를 본인이 낸 거처럼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몸에 난 상처라는 건 그저 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일 뿐이고 나는 이 화상 자국이 그저 에피소드일 뿐인데 상처 없이 곱게만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 마음은 미안함이 되는걸까. 친구가 재생 밴드를 붙일 때마다 엄마가 내 왼쪽 팔목을 보던 얼굴이 생각났다.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지만 아주 조금은 뭔지 알 것도 같았다.



*맞춤법 검사를 하니까 할로윈이라고 쓴 게 다 핼러윈으로 바뀌어서 뭔가 창피하고 재밌습니다. 브런치 사람들은 이런 기분 이해하겠지 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





 발리 여행 중 병원에 가야할땐 실로암을 추천합니다. 꾸따에 위치해서 접근이 쉽고 규모가  편이에요. 외국인 환자도 많은 편이라 보험 처리 시스템에 필요한 서류 구비가 용이하고 서핑하다 다친 환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외과 처치가 필요할때 조금 안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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