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고양이. 양이 코 혹은 고양 리. 너의 솜방망이는 작고 사랑스럽지. 거기에도 모자라 발 끝에 앙큼하게도 젤리까지 숨겨놓고 있더구나. 어찌나 뺐고 싶고 손에 넣고 싶던지. 하지만 세상사 맘처럼 쉽게 무언가를 가지거나 내 것을 만들 수 없지. 너의 마음은 알듯 하다가도 잘 모르겠어. 너 안에서 세상의 이치를 보는 것 같아.
가끔은 내 맘을 몰라주는 것 같은 네가 밉기도 하지만, 그런 너에게 정이 많이 간다. 어쩌면 너를 통해서 나를 투영해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아주 예민해서 작은 손길 하나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너. 누가 너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간 살아남을 수 없지. 용맹한 맹수가 따로 없지 아주. 그러다가도 이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듯, 모든 걸 두려워하며 구석으로 숨어드는 너. 그런 널 보면 또 마음이 아프기도 해.
모든 고양이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이지 않을까. 아니다, HSC(Highly Sensitive Cat)라고 표현해야겠다만. 어쩌면 그런 이름을 붙이기 전부터 존재했던, 고양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수식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네가 길가에 문득 나타날 때마다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예민함을 극복하고 세상에 용기 내어 얼굴을 들이민 네가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그런 널 위해서 츄르 하나 준비해주지 못한 나를 용서해. 그래도 운동 나갈 때마다 주머니 한쪽에 널 위한 사료를 준비해 두었으니 언제든 날 찾아와 주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 너를 미워하는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만큼이나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 이만치 존재한단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도 아닌지라 온전히 겨울을 견뎌내어야 하는 네가 안쓰럽지만. 네가 가진 따뜻한 솜털 갑옷이 너를 안전히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잘 견뎌내다가, 햇살이 비추는 어느 날 다시 또 만나자. 그때는 웃으며 네가 좋아하는 츄르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때까지 잘 지내.
이하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