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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비 Jan 04. 2022

속세를 떠나 얻은 새로운 나,
템플스테이

단양 구인사에서의 1박 2일


인생의 가장 치열한 순간을 마주했다. 나를 찾기로 결심하고 퇴사한 이후의 나날들이다. 아이유는 말했지. 나의 바다를 마주한 뒤로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는다'라고.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중). 누구에게나 이상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라 마음 한편에 숨겨두었을 바다와 같다. 하지만 난 감히 내 바다를 마주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친애하는 친구는 내게 템플스테이를 제안했다. 리프레쉬 한 번 해보자고.


단풍이 짙게 든 구인사. 아쉽다 일주일만 빨리 왔더라면!


단양의 구인사는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단일 사찰로서 국내 최대 신도 수를 가질 만큼 규모가 남다르다. 가파른 경사에 지어진 웅장한 사찰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느지막이 도착하여 템플스테이 승복으로 갈아입었다. 의복이 사람의 자세를 만든다고 했던가. 어딘가 진중해지는 기분. 사찰 소개 영상을 본 후에는 108 염주를 꿰었다. 알차게 보내겠노라는 결심 앞에 행동이 어색해졌고, 이내 염주를 떨어트리며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나이를 서른 하나 먹었지만 홍보관 선생님으로부터 "군대 안 갔다 왔죠!?"라는 농담을 들으며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직접 꿰어낸 108 염주와 템플스테이 목어 굿즈(!)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꿰어낸 108 염주를 손에 들고서 진행한 구인사 묵언 포행. 매 한 걸음이 조심스러워지고 마음은 이내 공손해진다. 스님들은 하루 취침시간이 두어 시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이외에는 모두 끼니 사이에 청하는 쪽잠이 전부. 그런 스님들을 길에서 볼 때면 존경을 담은 합장 인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본 순간, 붉게 익은 단풍과 단청은 본래 하나인 듯 조화롭다. '아, 뭔가 물아일체가 될 듯 말듯한 순간인데?'. 


법당에 들어설 때, 일반 신도는 부처님에 대한 공경의 의미로 가운데 어간문을 이용할 수 없다. 들어서면 합장 반배 후 방석을 들고 각자의 자리에 앉는다. 여전히 전통의 예를 따르는 까닭일까. 남자와 여자가 절을 올리는 공간이 분리되어있다. 법회가 끝날 때까지 더 가벼운 내가 되길 바라며 절을 올리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절을 올리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드는 부분)


범종, 묵어, 운판


하루 일과를 종료하면, 스님들이 모여서 범종 타종식을 진행한다. 각각의 행위에 대한 모든 깊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합장하며 진중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목어과 운판을 두드리는 행사도 함께. 귀여운 물고기 형상을 한 목어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항상 경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종소리를 들으며 차가워진 두 손을 느끼고 있으니, 이제 연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터지지 않는 전화기와 함께 현실 세계와는 다른 곳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진다.


시린 손을 양손 앞으로 가지런히 모았지만 저녁 공양 생각에 신이 났다. 구인사는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의 밥이 맛이 없다는 피드백을 받아들여 직원식당에서 공양을 제공해준다. 그러다 보니 고기 조각을 몇 개 발견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밥을 먹다 보면 스님으로 보이는 분들도 함께 와서 식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스님이 고깃국을 먹는다고!? 하는 의문이 들어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자, 그분들은 준 스님(?) 정도 되시는 분들이라 하신다. 세월이 갈수록 스님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기본적인 식을 함께 치러줄 스님조차 부족해지자 직업 스님 같은 개념으로 함께 일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과 같이 외출은 달에 한 번만 허용된다고 하니, 저분들 또한 굉장한 분들이시란 생각이 든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하는 식사여서 그런 걸까. 절밥이 이렇게 맛있다니.


포근했던 숙소


식사를 마친 7시. 속세에서는 이제 막 놀아볼 시간인데 이곳은 완전히 하루를 마감한 듯하다. 숙소에 돌아와서 동행인 친구와 하루 간의 느낀 점들과 불교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다. 내려놓음과 절제, 그리고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기억에 남았다. 사찰의 하루는 일찍이 저물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속세의 취침시간이 다가왔다. 새벽 법회는 친구의 몸상태가 좋지 않은 관계로 우리의 스님들께 맡기기로 했다(?).


구인사의 아침


이튿날 새벽이 밝았으니 아침을 먹어야지 않겠는가. 모든 길은 한 곳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선생님 말을 따라 몸이 가는 대로 움직였지만, 말씀과 다르게 공양 장소로 가는 길은 미로 같기만 하다. 이 또한 수행의 과정이겠거니. 6시 이른 아침 공양을 위해서 비구니 스님들은 또 얼마나 이르게 하루를 시작하셨을까. 공양이 어디서부터 오느냐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이라는 벽의 글귀를 읽으며 한 끼를 소중히 받는다. 구인사의 모든 공양 음식은 직접 재배한 채소로 만드신다고 하니, 더욱 정성이 느껴졌다.


참선의 길이란


오전 일정은 동행인이 매우 고대하던 야외 포행과 명상. 구인사에서 마련해준 봉고차를 타고 구인사의 어느 무덤으로 향했다. 이미 몇몇 신도들이 절을 올린 후였다. 무덤 뒤편의 벌판으로 나가자, 어느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풍경은 저리 가라 할 절경이 등장했다. 사유지여서 이렇게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걸까. 자연을 자연답지 못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란 생각에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광활한 대자연 앞에 소박한 돗자리를 폈다. 가부좌를 틀지는 못하니 양반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했다. 바람은 차디차지만 햇살은 추위를 물리치고 몸을 더욱 감싸 안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아있는 듯한 자연의 소리가 들렸고, 그 가운데 내가 있음을 느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자극에 자극을 덧대어 우리를 모든 것으로부터 무뎌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내려놓지 못해 아등바등 살았을까. 그야말로 현자 타임이 따로 없는 순간이다. 현실 자각이던, 현자의 시간이던.


다시 구인사로 돌아와서는 템플스테이를 마치며 따뜻한 차와 함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첫날과는 다르게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님들에 대한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종교인이라는 인식을 내려두니 역시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 한 구석이 저렸던 각자의 이야기들. 차담을 나누고 나니, 인생이 이전과 다른 막으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의 기운을 한 껏 받은 음식들 덕분인지 에너지도 달라졌다. 이제는 내 안의 바다를 더 자신 있게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곧 되돌아온 속세, 서울은 해외여행을 온 것처럼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렇지만 이전보다 편해진 마음은 왜일까. 절에서 얻어온 선한 기운을 잊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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