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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유리의 성, 격리 생활 이야기

우리 마음도 항체를 생성하고 있겠지

by 이하비

그렇게 잘 피해 가고, 내가 혹시 슈퍼항체 보유자는 아닐까 우쭐해지던 즈음에 나도 결국 걸리고 말았다. 그놈의 지겹고도 지독한 코로나19 말이다. 이제 전체 감염자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니 거의 주변 사람 5명 중 1명은 걸린 꼴이다. 여태 내가 걸리지 않았던 건 순전히 확률게임에서 운이 좋았던 거겠지. 만약 코로나 사태 종식까지 당신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슈퍼항체 보유자이거나 슈퍼 행운 당첨자입니다. (아니면 불운하게도 히키코모리이거나.)


여차저차 갑작스레 원치 않았고 예상치도 못했던 격리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 5일을 지나고 있는 와중. 나뿐만 아니라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런 고독한 시간을 지냈다고 생각하니, 적잖은 나비효과를 일으킬 것이란 생각이 든다. 2~3일까지는 회복하는데 전념하느라 정신이 없다. 쉽게 지치고, 잠에도 잘 들지 못한다. 그러고 4~5일 즈음에는 정신이 멍해지면서 이게 브레인 포그인가 싶어 진다. 그리고 문 밖의 세계와 내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는 단절감이 심화된다. 뭐, 이제는 이전만큼 엄격한 격리생활이 아닌 만큼 누군가는 몰래 집 밖을 나설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이왕 시작한 격리기간을 열심히 지켜보려 하고 있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이틀 동안 나만의 우주에서 더 깊숙이 유영하고자 한다.


격리기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었다. 자는 것, 먹는 것, 휴대폰과 유튜브를 보는 것. 새로운 경험이 없는 멈춰있는 시간들은 나를 자연히 과거로 이끌었다. 유튜브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필두로 1,2차 세계대전 이야기부터 옛날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과거 2001년, KBS 일요일은 즐거워에서 방영했던 '유리의 성'이 떠올랐다.


당시 어린 나이였고, 그 프로를 즐겨보지는 않았지만 출연자 김한석이 비현실적인 건물인 유리의 성 안에서 괴로워하던 모습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비현실 혹은 초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극한의 감정. 그야말로 옛날 세대는 정말 살아남은 것으로 대단한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말로만 내뱉는 밸런스 게임 예시들을 실제로 행했다니, 정말 끔찍하다.


코로나19 격리 기간과 비교해서 말도 안 되는, 100일이라는 긴 시간을 혼자 견뎌야 했던 출연자의 감정상태는 어땠을까. 당시 그가 느꼈을 고통은 고작 7일을 격리하는 내 생활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1,000만 명 중의 1명이지만, 그는 1,000만 명이 지켜보는 1명이었으니.


그런 낮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나를 나의 깊은 우주로 데려가는 이 격리생활이란 모든 걸 시작 지점으로 되돌려놓는 힘을 지닌 듯하다. 이게 과연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도와주는 건지, 아니면 여태 이뤄놓은 습관과 마음가짐을 무너뜨려 놓은 건지.


확실히 코로나19는 우리의 몸을 아프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도 아프게 하고 있다. 건강하지 못하면 생각도 건강해지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것도, 내 몸이 항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열심히 나쁜 생각에 저항하는 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나 중시하는 삶의 주체성도 건강 무너지면 함께 주저앉기 마련이다. 그놈의 바이러스가 뭐길래 우리를 이렇게나 주저앉히는 건지. 바이러스가 삶의 의지도 무릎 꿇게 하는 존재였던가. 어르신들이 돈이고 명예고 됐고 왜 건강이 최고라고 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짧은 격리생활 동안 삶의 일주일을 혼수상태로 보낸 듯하다. 또렷한 정신으로 나아가며, 이제 우리 인생에서 더 이상의 양성 판정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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