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같은 현실에 나를 투영하며 찾아온 현타, <Gossip Girl>
가끔씩 즐겨보는 드라마는 가십걸. 사실 드라마라는 걸 그다지 잘 보는 편도 아니다. 매주 같은 시간, 혹은 매주 일정 시간을 컨텐츠 하나에 고정적으로 소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는 것 같다. 확실한 즐거움을 주는 것도 아닌데, 꼬박 시간을 투자하며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니. 다른 의미로는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나의 집중력을 드라마에 일부 할애하는 행위와 같다. 그것이 그렇게 썩 내키는 일은 아녔던 것이지. 그럼에도 어떻게 시작은 하면 끝을 보는 듯하다. 말은 이렇게 해놓고 또 콘텐츠에도 정이란 걸 주는 타입인지라, 한번 시작된 인연을 쉽게 놓는 행위는 안 내켜한다. (그렇게 해서 정주행을 내달린 게 펜트하우스 1~3…)
'미드'도 첫 시작을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꽤나 대중적으로 다가왔던 가십걸로 첫 미국 드라마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프렌즈도 있었으나, 회화력 향상을 위한 쉐도잉 콘텐츠(다소 어려운)로만 내게 사용되다가 그만 버려지고 말았다. 거기다가 90년대라는 이질적인 배경도 거리감을 만드는데 한몫했다. 그나마 2010년대를 담은 가십걸은 동년배의 이야기를 담기도 해서이지 더 와닿게 느껴졌다.
가십걸의 이야기들은 절대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종류들은 아니지만, 어쨌든 인간들이 살아가는 처절한 모습들을 담고 있는 점에서는 한국 막장드라마와 비슷해 보였다. 매일같이 마음이 뒤바뀌고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주인공들이다. 어떻게든 상대를 가지고 싶고 욕망하고, 파괴하지 못해서 안달 난 모습들이 모든 시즌 내내 반복된다. 그 짧은 1편의 안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고점과 바닥을 오가고, 지난 편에서 A와 사귀었던 주인공은 다음 편에서 B와 썸을 타고 있다.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는 그네들의 이야기. 그때까진 뉴욕에서 살아보지는 않았던 바, 이게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볼 수 있었던 건 그녀들도 그들도 마찬가지의 사람이었다는 점. 비이성적인 듯 보이지만 어딘가 납득이 갈만한 감정선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 역시 막장드라마와 가십걸의 공통점이었을까 싶은 부분이다. 다만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와 이야기가 반복되다 보니 모든 시즌을 정주행 할만한 동기부여는 되지 않았다. 그냥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스낵처럼 열어보는 드라마가 되었달까. 그래서 여전히 나의 가십걸은 시즌 3에 멈춰있다.
이런 바닥 같은 현실,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그들의 일상에 현타가 올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면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지금 나의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도록 마음먹게 만들었다. 하루하루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았고, 반대로 나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어딘가 안쓰러운 나의 지난 청춘들이 생각도 나고. (어쩌면 지금도 안쓰러울지도) 그래서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가지고, 나는 여전히 이따금 보고 있다. 가십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