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웃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근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지만,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대상이 더욱 확대된다는 생각이 든다. 반려동물에 이어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나오는 이상, 개개인이 생각하는 이웃의 정의란 함께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일컫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청계천을 거스르는 거대한 물고기들, 물가를 떠다니는 오리들, 학처럼 보였던 신비한 새 왜가리, 그리고 푸르름을 구성하는 녹색 식물들. 별 것 아닌 존재 같지만, 인간과 오랜 시간 함께해온 이들이 나의 이웃처럼 느껴진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 게으름이라는 것은 모르고 가장 열심히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 있는 그들. 어쩌면 가장 배울 것이 많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난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는 참새들을 부러워했다. 참 작고도 귀여우면서, 그 몸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모습이 나는 부러웠다. 자유를 만끽하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그러다 오늘은 불행히도 세상을 떠난 참새를 만났다. 매일 아침 참새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테라스에서, 털도 나지 않은 참새의 숨 죽은 모습을 보았다. 날개만 있으면 자유로울 줄 알았던 새도 죽음 앞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자유로운 존재도,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그 끝 앞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게 느껴졌다. 오늘도 누군가는 섭리를 거스르며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거나, 젊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희생하려 할 텐데. 섭리를 부정하고 거스르려 하면 그 끝은 더욱 비참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가 오늘 할 수 있었던 일은, 숨을 거둔 작은 참새의 명복을 빌어주려 땅에 묻어주는 방법 밖엔 없었다. 누군가는 저런 가엾은 존재에게 마음을 주려한다면, 그 마음이 모여 다른 선한 영향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자연스럽게 살면서도 자유로운 존재가 되길 바라며, 작은 우리 삶의 작은 이웃들이 더욱 행복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