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J와 INFJ 사이. 영화 인턴 (The Intern, 2015)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인생의 다른 막을 맞이한 사람에게 적절한 영화가 있다. 영화 <인턴>이다. 주연인 앤 헤서웨이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어시스턴트가 CEO로 성장한 듯한 재밌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비슷한 내용일 예상하게 만들지만, 전혀 다른 결의 감동을 안겨주는 이 영화의 면면은 어땠을까?
영화는 목표지향적이고 경쟁적인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변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자신의 일에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살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줄스. 인생의 여러 굴곡을 겪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픈 벤. 처음에는 시니어 인턴을 그저 골칫거리라 생각했던 줄스의 예상과 달리, 영화 말미에는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생의 멘토로 거듭난다.
여성 CEO와 가정주부 남자, 시니어 인턴 등등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몇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설정들은 반대로 작품에서만 실현 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을 매개로 정반대의 현실을 비판하는 의도를 가지게 된다. 더욱이 바라고 이상적인 모습을 필름으로 담아낼 때, 이상은 그럴듯한 현실이 되어 설득력을 가진다.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줄스이자 벤이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극 중 70대인 벤에게서 30대인 나의 성격유형(MBTI)을 투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연령대와 상관없이 각자의 MBTI를 가진다. 두 인물을 MBTI로 표현하자면 각각 줄스는 ENTJ, 벤은 INFJ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CEO 후보군으로부터 매번 무시를 당하는 줄스의 사업, 그러나 꿋꿋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줄스는 리더 유형인 '대담한 통솔자' ENTJ이다. 그리고 특유의 예민함과 공감능력으로 줄스 곁에서 조용히 빛나는 조언을 건네는 벤은 '선의의 옹호자' INFJ이다.
벤의 인프제(INFJ) 모먼트
: 벤은 은퇴한 시니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원자들과 다르게 일에 대한 통찰력과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능력을 보여준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해서 눈치도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또한 맷의 불륜 사실을 발각하고도 줄스에게 이를 알리는 것이 혹여나 선을 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갈등한다.
줄스의 엔트제(ENTJ) 모먼트
: 줄스는 회사의 규모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음에도, 고객 CS와 배송 포장 등 모든 업무 프로세스에 관여하며 고집스러운 경영철학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고집은 CEO 고용에 까다로운 잣대로 작용한다. 그 누구도 그녀보다 그녀의 이상을 잘 구체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바쁜 일상은 1분 단위로 쪼개어져 철저하게 계획, 관리되고 있다.
MBTI를 정신연령으로 환산했을 때, INFJ 유형은 80세에 해당한다. 음, 그래. 벤은 70세이지만 인프제인 내가 그에게 공감했던 건 이상한 게 아니었어. (반대로 줄스 유형은 20세 혹은 52세. 두 경우 모두 이해가 된다.) 신체 연령도 중요하지만 성격유형별 정신연령이 존재하기에 우리 모두가 영화 속 인물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한 영화이지만 결국은 모든 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통찰로 이어진다. 온라인 패션 이커머스와 전혀 관련 없는 벤의 경력은 지혜가 되어 줄스를 돕게 된다. 그리고 벤과 회사 직원들에게 거리를 두던 줄스도, 결국 직원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삶의 균형을 되찾는다. 홀로서기 위해서는 함께하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완벽해 보이는 벤도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길 원해서 인턴이 되었으니 말이다.
영화는 큰 반전 없이 평범하게 끝이 난다. 그러나 평범한 영화이기에 우리가 늘 지나쳐온 것에 대한 소중함과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렇게 호흡에 집중하는 체조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인생의 대소사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숨에만 집중하는 순간도 필요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