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순수한 영혼에 대한 기록
지금도 제법 생생하게 기억나는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내가 12살 때의 일이다. 당시의 나는 500원짜리 떡볶이에도 기뻐하는 순수한 먹보 아이였다. 아이는 언제까지나 아이일 수는 없었던 것이었을까. 그 아이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건이 하나 생겨난다.
당시에 나는 이른바 속셈학원(초등학생 대상의 전과목 종합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후반 정도의 새로운 수학 선생님이 들어오게 되고, 늘 그랬듯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건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야!!! 너 이거 안 놔!!!!”
여느 날처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학원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안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여학생과 여자 선생님이 서로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당시 내 위로는 1살 형, 누나들(13살, 최강 6학년)이 있었다. 그중에 ‘센 언니’를 담당하던 한 누나가 새로 온 선생님과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선생님을 째려보고 무시하길 반복. 새로 들어온 선생님도 만만찮은 어른 버전의 ‘센 언니’였기에, 서로가 남들 모르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 터울의 여자 둘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말이다.)
배움의 장이자 항상 웃음만 넘쳤던 학원은, 순식간에 두 여자의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자 선생님은 육두문자를 남발하며 어린 여학생의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반면에 13살의 누나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여선생님의 머리채를 뜯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이 등판해서 기어코 두 사람을 뜯어말렸지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여선생님은 머리에서 흐른 피에 계속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내게 실로 충격적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서로를 증오하며 극한의 감정을 뿜어대는 광경을 목격한 나라는 어린아이. 믿고 따라야 할 선생님이 어린아이와 그야말로 ‘맞짱’을 떴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그동안 배워온 도덕, 윤리 규범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에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집으로 향하는 봉고차 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나는 계속해서 끅끅, 꺽꺽대며 울음을 멈추질 못했다. 누가 보든 말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무지 추슬러지지 않는 내 감정이 이해가 안 갔지만 내가 할 수 있던 건 그것뿐이었으니.
그날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며칠간 학원이고, 검도관이고 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던 모양이다. 다시 돌아간 학원에 그 여자 선생님은 더 이상 없었다. 요즘이었음 그야말로 미성년자 폭행으로 입건될 정도의 사건이지만, 당시엔 서로를 위로하며 또는 누군가를 해고하며 조용히 넘어갔던 사건이었다.
이 일은 작게 혹은 아주 크게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쳤다. 어찌 보면 나도 모르는 어떤 트라우마를 만들어낸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상처와 충격은 필연적인 것일까. 누군가의 순수함은 이렇게 원하지 않는 순간에 빼앗기기도 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비극인지라, 어린이의 순수함을 존중하고 더욱 보호해주기 위해 어린이날이 있는 것이겠지 싶어 진다. ‘어른이’라는 말이 철없는 어른을 위한 단어로 쓰임이 아니라, 여전히 순수한 어른을 위해 쓰이는 단어이길 바라며 어린 날의 한 페이지(feat. 트라우마)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