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직!"
서울시 종로구에 사는 이하비씨(32세)는 얼마전 매우 황당한 일을 마주했다. 그 일은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자고 글 쓰며 보내는 오피스텔에서 발생했는데, 경위는 이러하다.
이하비씨의 욕실 앞에는 늘 밝은 회색의 규조토 매트가 하나 놓여있었다. 규조토는 한결같이 물을 머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물을 머금지 못했다. 그렇다, 규조토를 청소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 규조토의 앞면과 뒷면을 바디워시나 세제를 발라 청소솔로 박박 문지르다 보면 샤워기가 뿜어내는 물줄기를 그대로 다시 머금는 규조토로 새로 태어났다. 이하비씨는 그런 규조토가 참 기특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이런 지속 가능한 녀석이라면 지구를 지키는데 일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도 기특한 규조토를 힘껏 닦아내고 건조를 시키려다 강렬한 햇빛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를 볕에 말린다면 훨씬 금방 마르지 않을까?'. 작은 원룸의 오피스텔인 우리 집은 부유한 누구네들의 집처럼 발코니가 있지도 않았다. 일광건조를 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침대 머리맡으로 규조토를 가져가는 방법뿐.
매트리스 위에 규조토를 잠시 내려놓고, 놓을 자리를 마련하려다 갑자기 이 아이를 살포시 밟고 싶어졌다. 푹신한 매트 위에 놓인 단단한 규조토가 안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위에 올라가면 굉장히 편할 것만 같은 단단하고 푹신한 상상이 머릿속에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주저 없이 발바닥에 무게를 실어 규조토를 밟았는데.
"빠직!"
순간 그야말로 '헉!'하고 놀라버렸다. 이건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는데... 애지중지 다루어 구석구석 깨끗하게 목욕시킨 나의 규조토가 반으로 갈라지며 그대로 운명을 다해버렸다. 지속 가능한 아이라 생각해왔는데, 나 스스로 이 아이의 명을 끊어버린 것이다. (잔인)
'왜 이런 짓을 벌였지'하며 머리를 쥐어박고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단단한 무엇이었어도 이 정도 두께의 물건이라면 내 몸무게에 휘거나 부서져 버리는 게 당연한 건데 말이다. 자책하며 망연자실하다 금방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정신 차리고 쿠팡을 켤 수밖에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운명한 친구에 대한 대한 예우를 갖추고 다시 현실로 복귀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는 작은 삶을 엿보았다. 매일매일이 크고 작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생각. 그것이 꼭 친구이거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작은 생물 심지어 무생물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었다면 그 또한 만남과 헤어짐의 대상일 것이다. 규조토라는 친구는 너무 황당하게도 내 곁을 떠나갔지만, 그 곁은 곧 더 크고 단단한 New 규조토가 채워주었다. 비워진 자리는 삶의 순환 과정에 따라 순식간에 다른 무언가로 새로 채워졌고, 그렇게 규조토와의 생이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