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쟁이의 삶

by 씀씀이

설날 연휴가 끝나고 첫날. 바람이 제법 매섭게 부는 날이다. 구정을 보내버리니 이제야 스물일곱의 나이가 실감이 난다. 이 나이에도 삼촌들을 비롯한 여러 친척들에게 세뱃돈이라는 명목으로 쌈짓돈을 루팡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새해 덕담과 함께 건네주신 말씀 중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은 "책 사는 데 써라"였다. 책쟁이에게 이 말만큼 신나고 듣기 좋은 말이 어디 있는가.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를 괜히 뒤적거리며 그 중에서도 인형 뽑기 하듯 책을 골랐다. 오늘은 고른 책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책쟁이의 삶은 고달프다.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책을 사러 간다. 우리 집 주변에는 큰 서점이 없어서 아주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책이 없다. 인터넷 서점에서 하루 배송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책을 빨리 펴보고 싶은 마음은 귀차니즘을 이겨내서 먼 거리도 불사하고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기다릴 줄을 모른다. 기다림 끝에 이 설렘이 사라질 것 같아서. 마치 애타게 연인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것 같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이든 시간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책을 손에 쥐고 나서 몇 번 펴보고 다시 책장에 전시품이 되어도 좋다. 처음의 설렘을 만족했으니까. 책장에 묵혀있는 것만 보아도 좋으니까. 충분히 영글었을 때 꺼내보면 되니까

오늘 중고서점과 교보문고에 들러 산 책들. 저거 말고 한 권 더 샀다. 탕진잼!


커피는 맛없어도, 책 씹는 맛에 하루를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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