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고즈넉함이 솔솔

by 씀씀이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원체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강남이나 홍대 같이 사람으로 가득 차 북적북적 대는 곳에 가면 현기증이 난다.(진짜 나진 않는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곳에서 소소하게 재미를 누리며 사는 모습이 내 바람이자 꿈이다.


오늘은 이런 내 생각에 금이 간 날이다. 눈인지 비인지 모를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에 가족들과 함께 고궁을 찾았다. 군인인 동생이 휴가를 나온 터라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시간을 함께 사용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던가? 화요일은 종묘와 경복궁의 공식 휴무일이다. 미리 찾아보지 않은 내 탓이다. 우리는 닫힌 문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 했다.

굳게 닫힌 문이 애석하다.

어쩔 수 없이 기수를 돌려 창경궁으로 향했다. (창경궁, 창덕궁은 월요일이 휴무일이다) 눈도 점점 그치고 날이 풀리고 있었다. 입장료를 결제하고 들어서자 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함이 풍겨왔다. 나는 이 고즈넉함이 좋다. 대학생일 때는 매년 3월 초 개강 전에 꼭 혼자 고궁을 찾았다. 이는 새로운 생각과 마음으로 새 학기를 다짐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매번 경복궁만 가다가 이번에는 창경궁을 혼자가 아닌 가족과 의도치 않게(?) 방문했다.


창경궁을 한 바퀴 돌면서 나도 종로구 시민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적하고 여유가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다. 최근에 새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들어본 적이 있었나? 기억도 나질 않는다.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눈도 귀도 호강.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면 매일 올 것 같다.

알록달록 옷 잘입는 패피 원앙새


결국 나의 미래 주거지 선정 기준이 더 복잡해졌다. 아파트든지 주택이든지 주변에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수 조건으로 등극했다. 서울은 자연보다 인공적인 요소들이 많아 싫어했는데 웃기게도 어디보다 공원을 잘 구성해놓은 곳도 서울이다. 역세권 이런거 나한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강세권, 숲세권 이런 단어가 있던데, 나에게 역세권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다. 눈뜨고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 간단하게 공원 산책 한 바퀴, 생각만해도 좋다. 집값은 눈뜨고 못 볼 정도로 비싸도 그만한 가치를 누릴 수 있다면, 서울살이도 그리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정월대보름달

날 풀리면 한강이나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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