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쉼표
벌써 6월 중순이다. 날이 제법 더워 땀이 난다. 슬금슬금 여름이 찾아오고 있다.
최근에는 글을 쓰기 위해 펜을 잡는 일이 적어졌다. '책은 마음의 금을 내는 도끼'라고 말한 박웅현 작가처럼, 글도 일종의 마음의 금을 긁어 부스럼을 내는 일이다. 허나 긁을 벽이 있어야 할 텐데 스스로 찾지 못하는 것인지 금이 없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은 단단한 내면을 가졌다는 뜻이다. 말랑말랑 만져지는 유순한 마음이라기보다 퍽퍽한 치킨 가슴살과 같다.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해도 틀에 박힌 일상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친구가 전화를 하기 전까지는
띠 리 리 링
"하은아 가자!"
"어딜?"
"캠핑"
"엥? 난 못 간다 했잖아. 너 혼자가"
"안 가려 했는데 다시 가야겠어. 가자 같이. 즉흥적으로"
"아...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 저번에 가려고 했던 거기로 가는 거야?"
"ㅇㅇ 고고"
"하... 할게 좀 있는데...."
"할 일 좀 챙겨서 거기 가서해. 나도 할 일 있어"
"......"
"오키?"
"..... 하 그래 준비해서 나간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 아니, '캠핑'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인천 신도와 시도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해외여행에 들뜬 여행객들 사이에서 캠핑 가방을 멘 친구와 둘이 신나게 떠들었다. 막상 여행을 간다고 마음을 먹으니 신났다. 이번 여행을 영상으로 남기겠다며 카메라로 열심히 찍었다. (언제 편집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펜만 잡던 수험생에서 아이폰6s를 든 일일 카메라 감독으로 변신. 확실한 건, 일상을 조금만 비틀면 배배 꼬인 꽈배기처럼 달콤한 하루가 된다.
신도에 도착한 우리는 캠핑 목적지인 수기해수욕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수기해수욕장은 시도에 있었다. 신도는 시도와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충분히 갈 수 있다. 거리도 약 7km 정도로 우리는 젊으니까(가 아니라 차가 없으니까,,) 걸어가자고 했다.
그렇게 걷고 걸어 7시 반에 도착한 수기해수욕장은 한산했다. 갈매기 울음소리만 때때로 들려올 뿐이었다. 바로 텐트를 치기 위해 나는 삼각대를 꺼내 핸드폰으로 타임랩스를 돌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첫 번째는 친구가 이 텐트는 처음 쳐봐서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외국에서 산 텐트여서 설명서도 영어.. 오지선다 답만 고를 줄 알던 토종 한국인은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다행히 텐트 완성된 모습이 영상으로 있어 그걸 참고해서 쳤다. 두 번째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점점 텐트가 모양새를 갖춰갈수록 나는 의문이 생겼다. "여기서 둘이 잘 수 있어?"
지금 사진을 다시 봐도 헛웃음만 나온다. 정말 1인용 텐트다. 친구는 이 텐트를 한 번도 펴보지 않아서 사이즈가 어떤지 몰랐다고 했다. 여행을 온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집에 있을걸. 이제 어디서 자냐. 망했네.'
혹시나 지금이라도 다시 육지로 나갈 수 있는지 보려고 배 시간표를 조회해보니 7시 반이 막배. 우리 둘은 이 섬에 갇혔다. 저 텐트 하나 가지고. 눈 앞이 깜깜했다. 급하게 나온다고 옷도 카디건 하나에 반팔, 반바지만 걸치고 나왔기에 노숙은 절대 불가능했다. 밖에서 잔다면 모기 친구들의 좋은 옹달샘이 될터. 주변 펜션이나 숙박시설을 찾기 시작했다. 수기해수욕장에 있는 펜션은 하루에 10만원이라 포기. 육지였음 모텔이라도 찾았을 텐데 오면서 모텔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호텔은 없고 모텔도 없고 펜션은 비싸고 그럼 어디서 자지?' 그러다 생각난 게 '민박'이었다.
'민박은 있지 않을까?'
주변에 민박집이 몇 개 검색되었다. 그중 번호가 안 뜨는 곳이 많아 번호가 뜨면서 수기해수욕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전화를 걸었다.
"저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숙박 가격 좀 여쭤보려고요."
"몇 명인데요?" (친근한 할아버지 목소리였다)
"두 명이요."
"어 그럼 4만원"
"아 4만원이요? 아.. 그렇구나"
"무슨 일이여?"
"친구랑 캠핑을 왔는데 텐트가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잘 곳을 찾고 있어요"
"아하하하 그려? 그럼 3만원에 해줄게"
"정말요?"
"아 그럼~ 나도 젊었을 때 가방 매고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어. 가방 멘 친구들이 제일 반가워"
"그럼 그리 갈게요! 저희 수기해수욕장이에요"
"아이고 내가 술만 안 마셨으면 데리러 갈 텐데.. 조심히 와요"
"네!"
그렇게 사장님의 호의(?)로 자연스레 숙박비도 깎고 싼 가격에 잘 수 있었다. 도착한 민박집은 정말 허름 그자체였지만 이상하게 정감이 갔다. 마중 나온 주인집 할아버지는 거나한 목소리로 반겨주셨다. 저녁도 안 먹고 온터라 배가 너무 고팠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니 라면 두 개랑 밥 한 공기(고봉밥), 장독대에서 꺼낸 김치 반 포기. 그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이었다. 둘 다 말도 없이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씻고 누워있으니 신도에서 반나절이 눈에 그려졌다. '난 어쩌다 여기 누워있냐.' 나는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어떻게든 문제를 타개할 방법이 찾아진다는 것이 신기했고 성경에 있는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의 대사 '제일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말도 생각났다. 인생은 어찌 흘러갈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 주인 할아버지의 환대는 밤에도 이어졌다. 6월 중순임에도 난방을 틀어주셔서 바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때아닌 난방에 당황한 나는 에어컨을 틀고자 했다. 그러나 어딜 봐도 에어컨 리모컨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찜질방에 왔다고 생각하고 땀을 흘려가며 밤을 보냈다.
글을 치다보니 팟캐스트에서 시가 한 편 들려온다. 손이 멈추고 시에 귀가 붙들려버렸다. 안도현의 바닷가우체국이라는 시. 마지막 연에서 내가 이번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과 해소된 욕망이 교차되는 것 같다.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 속 주머니에 넣어 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수평선을 잡아 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안도현- 바닷가우체국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