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9.SAT
단조로운 하루다. 하지만 특별하다.
조식을 먹고 있으니 새로운 작가님이 들어오셨다. 유화 작업을 하시는 분이셨다. 작가님들은 모두 객실이나 공용 작업실을 이용하시는데, 유화나 아크릴을 뿌리며 작업하시는 작가님 두 분은 객실 사용이 어려워 작업실에 계신다. 나는 작업 때면 항상 객실 안에 있으니, 다른 분들의 작업을 구경하려면 객실이나 작업실에 방문해야 한다. 새로 오신 작가님께서는 40대셨다. 20대 작가는 아직 나 혼자였다. 까마득한 후배, 신진 작가로써 드는 생각은, 그 분들처럼 오랜 시간동안 작업을 끌고 갈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둘 다 말이다.
오후에 작업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요즘은 매일이 깨고 싶지 않은 꿈같다. 한창 방황할 시기에 한 가지 목표를 잡았었다. 서른이 딱 되면 모두 내려놓고 삶에서 떠나자고. 밀린 학자금을 갚고, 부모님께 남겨드릴 목돈을 마련해 둘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삶이 단순하게 느껴져서 나쁘지 않았다. 내가 말만 뱉으면 주변에 걱정만 끼치는 것 같아 말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단짝친구 U와 어디론가 버스를 같이 타고 갔다. 아마 같이 카페에서 작업이나 수다를 즐기기 위해 만났던거 같다. U가 버스에서 "단비야, 나는 네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라고 했었다. 고등학교 단짝친구 B는 "우리 꼭 100세까지 살아서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100세 파티를 하자."고 했다. 그 말 한 마디로 살 이유를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하루하루를 버티다보니 부모님이 표현을 안하신 것 뿐이지, 나를 얼마나 목숨처럼 아끼시는지 알게 되는 날도 있었다. 지금은 엄청나게 많아진 친구들과도 은은한 광기와 함께 재미나게 지낸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부 잘 모르겠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책임감이 강하고 어떨 땐 로봇 같기도 하고 날카로울 땐 무섭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건 모두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실 정말 유약하고, 종종 잠만 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족한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나도 들어 쓰시는구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주님께서 날 부르시고 정금과 같이 다듬으시는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작업 하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오늘은 센치한 날이다.
울기도 했다.
그러려니 한다.
하루종일 자수 작업을 했더니 허리가 아파 누워있다가 잠들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어머니와 같이 갈 우도 교통편을 알아봤다. 배를 타고 우도 안에서 1인용 전기차를 대여하기로 했다. 우도는 처음 가보는데 기대된다.어머니와 함께 갈 맛집이랑 카페들도 정리해뒀다.
엄마를 제주에서 만나면 가장 먼저 꼬옥 안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