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천천히, 내려놓기.
24.03.11.MON
새벽예배를 제시간에 드리지 못했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어 버렸다!
일어나니 7시 반이었다.
일단 준비를 마치고 조식을 먹었다. 오늘은 P 작가님, J 작가님, S 작가님, D 작가님과 다섯이서 먹었다. 어제 여행도 얘기하고 P작가님께서 친구분이랑 함께 갔는데 좋았던 장소도 알려주셨다. 해외 공모를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얘길 했다. 원래 레지던시에서의 계획은 자수작업을 조금 댕겨서 타이트하게 완성하고 14일 전에 해외 공모를 넣으려 했다. 만일 당선된다면 7월부터 해외에 2개월 간 체류해야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해당 공모에 대해 잘 아시는 작가님들이 좀 더 작업이 만들어지고 넣는게 좋을거 같다고 조언 해주신 것도 있고, 여기 레지던시에 와서 이 곳의 취지에 맞게 제주의 자연을 마음껏 바라보고 작품으로 충분히 표현하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예배 영상을 봤다. 약자, 소외된 계층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주님께서 날 구원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삶을 끝까지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릴 때 필요한 우산을 주는 것이 아닌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 공감' 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힘든 이의 필요를 모두 채워주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힘든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워 우산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럴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우산을 주고 싶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준 경우가 있진 않을까. 슬픈 일을 들으면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마음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현재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다. 항상 머릿속에는 과거와 미래만 가득했다. 과거의 잘못이 떠올라 고통스러웠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했다. 지금은 현재를 충실히 살고 느끼며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이 순간 또한 시간이 흐르면 금방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또 작업을 했다. 자수 작업은 붓그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성실하게 틈틈이 진행해두어야 한다. 그런 정직한 흔적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찰나에 폭발적으로 표현되는 작업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익어가며 정직하게 완성되어가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드디어 흰색 실로 채울 면을 모두 만들었다. 아직 다양한 색감을 올려야 해서 갈 길은 멀지만 하나의 작은 단계를 끝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다음을 향한 동기부여가 된다.
오랜 작업으로 조금 피곤해 산책도 하고 바람도 쐬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대표님과 H 작가님을 마주쳤다. 근처 카페에 커피 드시러 가시려던 찰나인 듯 보였다. "단비 작가도 같이가~"라는 대표님의 한 마디에 성남에서라면 할 일이 있다며 거절했을텐데 그냥 바로 좋다고 쫄래쫄래 따라갔다.
제주는 참 신기한 공기가 흐르는 것 같다.
어머니가 타고 오신 비행기가 연착되고 이런저런 수속과 렌트카 수령 때문에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리조트로 도착하셨다. 비가 오는 주차장을 지나 리조트 입구에서 꼬옥 안았다. 열흘만에 안기는 그리운 품이었다. 숙박비 정도는 내가 내드리고 싶었는데, 아직 그러지 못해 죄송스러웠다. 조식비라도 지불하려 했더니 작가님 가족 분이시니 리조트에서 제공 해드리겠다고 해주셨다. 아직 나는 베풀기보다 받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어머니의 객실은 4층이었다. 내 객실은 2층이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 소식가인지라 저녁 생각이 많이 없으신 듯 보였다. 내 방에 있던 라면을 하나 가져가 끓여 둘이 나눠먹었다. 엄마랑 여행할 곳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이곳에 오래 사신 분들의 추천으로 좋은 장소와 맛집, 그리고 카페를 많이 수집할 수 있었다. 늘 가족 여행을 준비할 때에는 인터넷을 끼고 살았는데, 현지 분들의 추천은 인터넷이 하나도 필요 없을 정도로 신뢰 가능하니 참 감사하다.
저녁을 객실에서 간단히 먹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저녁부터 내린 비로 어딘가 나가기 애매한데다 이 근방의 식당은 일찍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7시부터 대표님께서 번개로 여신 파티가 세화당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저녁을 객실에서 빠르게 먹고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어머니가 어려워 하시면 참석하지 않으려 했는데, 흔쾌히 괜찮다 하셔서 같이 갔다. 세화당에는 대표님과 H 작가님, P 작가님, 옆집 사시는 L대표님께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어머니를 소개하고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작업 얘기나 사는 얘기를 하게 되었다. 사실 어머니 앞에서 이런 공부와 직업에 관련된 얘길 하는게 처음이다. 집에서는 잠만 자다가 가끔 화판 앞에 앉아 그림 그리고 밥은 먹는건지 아닌지 모를 모습만 보였던거 같은데, 여기서는 전혀 다른 얘길 하게 되어서 신기했다. H 작가님은 프랑스에 오래 사셨다. 91년도, 열일곱의 나이에 언니와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17년간 파리에서 지내셨다. 전혀 다른 문화와 장소에서 사셨으니, 생활 방식도 이야기의 주제도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듣는걸 좋아하는 나로써는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국과 전혀 다른 물가, 전혀 다른 예술 교육 체계, 전혀 다른 여가생활과 자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제주에서 치는 골프는 바람 때문에 경로를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재미있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국적인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 대한 딜레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화 서양화 나뉘는 것에 대해 아주 형식적인 틀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지금은 평면과 입체 작업, 미디어 작업의 경계를 허무는 것도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더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 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다. 먹과 한지, 유화물감과 캔버스라는 재료로 한국화 내지는 동양화, 서양화라는 범주로 나누는건 굉장히 1차원적인 생각이다. 그렇다고 작업 소재와 내용으로 따지기에도 애매하다. 동시대미술, 현대미술은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메세지를 던진다고 해도 그 주제 또한 작가와의 연결고리가 어떻게든 있기 마련이다. 학교에서도 동양화 교수님, 서양화 교수님이 있기 때문에 학과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란 말도 있으니, 모두들 충분히 딜레마는 체감하고 있으나 바꾸기 쉽지 않을 뿐일거다.
그래서 학부 때에는 세부 전공 대신 조형 미술 전공이라는 회화과로 통칭된 순수미술 전공이었다. 산업 디자인과에 가서 시각 디자인은 물론이며, 팀 단위로 가상 회사를 만들어 타겟층을 공략한 제품 라인을 만들고, 시스템 디자인을 하고, 영상도 만들고, UX와 UI도 맛보기로 발담궈보고, 제품 프로토 타입도 만들고, 순수 미술과로 전향 해서 먹도 갈고, 붓도 유화 기름에 씻어보고, 설치 한다며 마네킹을 사서 물감칠도 해보고, 코딩까지 해본 나의 생각으로는 학부 때 다양한 장르를 반강제로라도 경험하고 대학원 때 적성에 맞는 장르를 깊이 연구해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물론 몸과 정신은 너덜너덜해지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으니 견디는거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제주 레지던시 지원자 수가 총 500명 가까이 된다는 말씀을 들었다. 선정된 레지던시 작가 단톡방에는 나를 포함해 총 17명이 있다. 대표님과 팀장님을 제외하면 선정 작가는 확인된 분만 15명이란 얘기다. 다른 분들까지 합치면 총 스무 명 정도 된다고 하셨다. 나의 포트폴리오 그림만으로 뽑힌게 정말정말 놀라워 기절할 뻔 했다. 경력이나 이력까지 심사 되었다면 아마 이 제주에서의 생활은 꿈도 못꿨을거다.
원래 어머니는 말씀이 많으신 편인데 대화 주제가 생소해서 그런건지 말씀이 별로 없으셨다. 마음에 걸려 내일은 조식을 먹고 운전해서 좋은 곳을 많이 모셔다 드릴 예정이다. 14일까지는 둘이 오붓하게 시간도 보내고, 그동안 분주한 삶에 미뤄졌던 얘기들을 많이 해볼 생각에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