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계획, 라이프 플랜.

24.03.13.WED

by 이헤윰

우리 여사님과의 여행 삼일째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벌써 내일이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신다.

조식을 먹으며 작가님들과 코로나 시기 미대생들의 고충을 들었다. 실기 수업 때 작업실을 써야 하는데, 거리두기로 인해 작업을 마음껏 하기 어려웠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기간동안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바로 대학원에 가지 못했다. 자의도 아니었고, 성적이나 작업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1년 정도 학원 일을 하고, 나머지 반년은 학부 모교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며 입시를 준비했다. 이후 내가 석사 과정에 입학했을 시기는 코로나 유행 후반 즈음이었다. 다행히 실기실 사용과 교수님이나 학생들과의 크리틱 또한 수칙만 잘 지키면 문제 없을 시기였다. 만일 이전에 입학 했다면 온라인 수업만 들으며 작업실을 사용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해 답답하고 정체된 것 같아 슬퍼했었는데, 다시 한 번 주님의 때와 계획이 완벽하다는 것을 느끼며 감사했다.

여사님과의 오늘 여행 코스는 많이 걸어야 했다. 교래 자연휴양림에서 1시간정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용눈이오름을 올랐다. 느즈막히 점심을 먹고 나서는 서우봉에 올랐다. 오늘을 위해 어머니가 고운 한복까지 챙겨 입으셨다. 이 순간을 아름답게 담기 위해 한복 차림의 어머니 사진을 열심히 찍었더니 480장 정도 나왔다.

교래 자연휴양림은 이전에 작가님들과 한 번 방문했던 곳이다. 용눈이 오름도 마찬가지다. 자연 경관이 정말 아름답고 몽환적이었다. 그리고 걷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취향에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휴양림, 서우봉, 용눈이 오름까지 다녀오셨음에도 '성에 안찬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 여사님은 체력이 정말 좋으시다. 물론 낮 내내 운전을 내가 도맡아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1시간 정도 숙소 앞을 산책하셨다. 나도 우리 어머니의 나이 즈음 되었을 때, 이렇게 체력이 좋을 수 있을까. 운동을 계속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겠지만, 지금은 매일 꾸준히 하루 한 두시간씩 걷고 있으니 아예 못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코 적지 않은 중년의 나이에도 편안함보다 자기 관리, 운동, 건강, 성실을 지키시는 어머니께 많은 점을 배웠고, 또 배우고 있다.


서우봉은 어머니와 처음 방문했다. 유명한 관광지답게 사람이 많아 주차 자리가 꽉 차있었다. 올라가는 경사가 급한 편이었는데, 어머니와 나에게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서우봉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듯 보였다. 언덕을 오르며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 중 한 가지 주제는 '이렇게 좋은 곳의 정상을 가보지도 않고 입구에서 인증샷만 찍은 뒤 돌아가는 것이 과연 서우봉을 방문했다고 할 수 있는가.'였다. 물론 사진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충분히 다녀왔다고 할 수 있다. SNS의 발달로 여행 사진을 올려 공유하는 문화가 널리 퍼진 점도 한 몫 한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초창기, 유럽 여행을 다녔을 때, 마음에 드는 풍경과 골목 사진을 올렸던 것이 생각났다. 친한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 이전에 기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진을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은 나의 취향과 거리가 있었다. 여행으로 간 지역에 진득히 머물며 나의 동네와 다른 부분을 마음껏 체감하는 것이 나의 여행 루틴이었다. 엄마 또한 바쁘게 이곳 저곳 다니기보다 여유를 원하셨기에 다행이다.


엄마는 산책 후 엄마의 객실로 들어가신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샤워도 하고 내일 싱크대 소독이 있어 방정리가 필요했기에 이런저런 준비를 마친 뒤 어머니의 객실로 들어갔다. 저녁은 해녀집에 들러 포장해온 해삼, 멍게, 소라회였다. 저번에 맛있게 먹어서 엄마랑도 같이 먹고 싶었다. 라면도 한 봉지 끓여 국물까지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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