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즐겁게, 국수와 티타임

24.04.22.FRI

by 이헤윰

섬의 날씨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낮에 산책을 할 정도로 잔잔했는데, 객실에 돌아오자마자 강풍 주의보 문자가 날아왔다.
그래도 실내에 있을 때 변하니 감사하다.

오랜만에 조식을 먹었다.
대표님은 서울에 가셔서 늘 있던 피아노 반주가 오늘은 없었다. J 작가님, T 작가님, H 작가님과 함께 얘기를 하다가 J 작가님께서 서울 다녀 오시는 날 아침에 내가 육지로 돌아가니 마지막으로 밥 한 끼 먹자고 해주셨다.

나 혼자 한참 막내이다보니(내 바로 위로는 10살 더 많으신 S 작가님이시다. 다른 분들은 더 많으시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나이차이(14살)면 이모뻘 아니냐 하시는데, 보면 볼수록 정말 소녀 같으신 분이다. T 작가님도 함께 하기로 얘기가 되어 점심에 만나 식당으로 향했다.

제주에 있는 서울 국수 식당이었다. 서울에서 봤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제주에 있으니 색달랐다. 순두부 찌개와 고기국수를 시켰다. 두 명 이었다면 순두부 찌개만 시킬 수 밖에 없었을거다(기본 2인 이상이다.). 다행히 T 작가님과 셋이 간 덕에 맛있는 메뉴를 모두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밥을 J 작가님께서 선뜻 사주셔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커피를 사겠다고 나섰다.


전에 근처 베이커리를 찾아두셨다 했다. 1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고, 바람도 그 때는 잔잔해서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갔다. '가는 곶, 세화' 라는 카페였는데, 화이트와 우드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또 오고 싶은 곳이다.

해가 날 때 즈음이라 외부 테라스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여유가 참 소중하고 감사했다. 농담으로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얘기 했다가 금방 매일 이러면 너무 지루할 것 같다고 했다. 여유가 있는건 좋지만, 계속 영원히 반복된다면 그것의 소중함을 쉽게 잊을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4시였다.
저녁 생각도 없고 작업이 한참 남아있던 터라 곧장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바다를 수놓다보니 6시 반이 되어있었다. 최근 몸살기가 있는 채로 작업과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했어서 그런지 잠이 늘었다. 바닥에 누워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는데, 일어나니 8시였다.
J 작가님의 연락을 받고 잠시 얘기하러 1층 작업실에 들어갔다. 작가님은 손이 정말 빠르셔서 그런지 벌써 4점을 거의 다 완성해두셨다.
몽환적이고 차분하며 포근한 그림들에 노란 모자를 쓴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자연을 바라보는 그림들이었다. 모자 색 때문인지 어린이 같기도 했다. 동화 같은 이미지로 힐링을 받았지만, 전반적인 색감은 명도가 낮아 색달랐다.
이후에 나의 개인적인 작업 고민을 얘기할 겸 피드백이 필요해 나의 객실로 잠시 모셨다.
다행히 이전에 해뒀던 작업은 그대로 완성으로 두어도 좋을거 같다는 결론이 나왔고,
나중에 액자 프레임 색을 어두운 색으로 하는게 좋겠다 해주셨다.

나도 피드백을 듣고 나서 막혔던게 풀린 느낌이 들어 감사 인사를 했다. 작품 가격 책정에 대한 부분도 고민을 얘기했더니 작가님께서 여러 조언들과 함께 괜찮을 것 같다고 답해주셨다. 덕분에 나도 가격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작업 마무리에 도움을 많이 주신 것이 감사해서 기념품 가게 사장님이 선물로 주신 쿠키를 몇 개 드렸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 받을 수 있는건 많은 이들의 넉넉한 마음 덕임을 깨닫는 하루였다. 나 또한 여유롭게, 누군가를 소소하게나마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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