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9.FRI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은 맑고 따듯한 날씨다.
낮 온도가 19도였다.
조식을 먹고 마지막으로 숨비소리길을 산책했다. 산책 하면서 염색 때 사용할 나뭇잎도 주워왔다. 해가 쨍하게 나서 그런지 땀이 조금 났다.
샤워 하면 되니 괜찮다.
하도리 바다 방향으로 크게 돌아 세화 해수욕장 쪽까지 걸어 나왔다. 유채꽃밭도 만나고, 부지런히 일을 나가시는 주민 분들이 타신 트럭도 만났다.
점심은 안먹고 넘겼다. 조식도 먹었고, 저녁에 많이 먹기 위해서다.
세화 우체국과 다이소를 들러 짐을 부쳤다.
다이소는 S 작가님과 T 작가님께서 필요한 걸 구매하기 위해 간건데, 충동적으로 1000원에 2개 들어있는 작은 수첩을 사버렸다.. 이후에 S 작가님은 먼저 숙소로 향하시고, H 작가님, T 작가님과 함께 빛의 벙커 전시를 보러 갔다.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곳이라 30분 정도면 도착이었다. 마르크 샤갈과 이왈종 화백의 작업을 소재로 한 영상이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고 웅장한 클래식 음악으로 몰입감을 더했다. 몰입형 전시 관람은 이번이 처음인데, 평소 작업을 자세히 뜯어보던 것과 달리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신선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팀장님과 인터뷰를 했다. 질문지를 받아들고 최대한 정리해서 말하려 했는데.. 녹음기에 과연 잘 들어갔을지.. 요즘은 녹음한 음성이 텍스트로 변환되는 어플도 있는 모양이다. 나중에 녹음 내용을 나에게도 주시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냥 제주에서의 시간,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그냥 흘려보내기 싫어 기록하는 차원에서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쌓여 양이 제법 되자 팀장님께서 에세이북 제안을 해주셨다. 제주에서의 여행 얘기와 작업에 대한 고민, 내용들만 추려서 다음 주 내로 원고를 드리겠다고 했다.
아주 얇은 책이 되어 객실에 작품과 함께 놓일 예정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작가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주셨다. 저녁으로 탐나는 문어 식당에 갔다. 돌문어와 흑돼지 볶음, 돌문어 숙회 비빔면을 먹었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뭔가.. 특이한데 맛있었다. 볶음밥도 먹었다.
객실로 돌아오니 8시 20분 정도 되었다. 이래저래 정리를 마치고 철야예배 영상을 보기 위해 기도로 준비했다. 지금껏 허락된 수많은 기적들 모두 감사하지만, 나에게 새 삶과 새 생명을 선물해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전심으로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여사님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철야예배 끝난 후 바로 콜백 드렸다. 오늘 마지막 날이어서 철야 예배가 끝나고 운동 나오신 김에 전화 하신 것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했는데, 엄마의 건강이 안좋아지신것 같아 걱정이 됐다.
인터뷰 때 팀장님께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전 지금 제가 밑바닥에 위치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고생할 일만 남았고, 시작 단계에요. 저는 제주에 오기 전에 작업 외의 시간에 잠만 잤습니다. 그 이유는 길을 찾지 못해서였어요. 취업을 생각하고 준비하던 중에 이 레지던시에 당선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취업 준비 아예 다 접고, 계속 그림 할 생각으로 내려온거에요.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난 진심으로 이것이 내 혼자 힘으로 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 나에게 주어진 사역을 나눠 함께 도와주는 동역자들의 도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와 응원이 없었다면 3월 한 달간의 은혜, 선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구좌에서 만난 한 달 간의 눈부신 기적은 앞으로도 계속 마음 속에서 빛날거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