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 타카가 있습니까?
24.03.03.SUN
맑아진 머리로 작업을 시작했다.
본작업을 시작하기 전, 워밍업이 필요해 작은 소품을 만들었다. 저녁 시간인지라 눈치를 보며 왁구에 천을 고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타카 소리는 정말 큰 것 같다. 무음 타카 같은게 발명 되면 참 좋을텐데.. 어쩌면 이미 있는데도 내가 잘 모르는 것 아닐까.
(*여담이지만 다음 날 나의 양 옆방에서 묵으시는 작가님들은 정말 괜찮으니 편히 작업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자정 가까운 밤과 새벽에 나는 소리도 아니고, 노느라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타카 소리가 하루종일 들릴 것도 아니니 전혀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의 답이었다. 만일 내가 작가님들의 상황이 되었다면 나 또한 괜찮다고 답할테지만, 어찌됐건 지금은 내가 타카 소리를 내는 장본인이었다. 감사하다는 말만 나왔다.)
미리 가져왔던 아주 작은 왁구와 검은 천으로 만든 캔버스를 들었다. 어두운 제주의 밤바다를 자수로 기록했다. 작업 도중 고개만 들면 넓은 창밖이 깜깜한 바다로 가득 채워졌다. 사실 아직은 자수라고 말하기 애매했다. 흰 실로 손수 박음질 했다. 검은 화면에서 하얀 윤슬이 수놓아지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느린 사람이기에, 시간에 구애 받지는 않았다. 오로지 꼼꼼하게 바느질을 했다. 다 해놓고 보니 엉성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미련은 없다. 요령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본작업도 아니고, 크기도 작고, 연습 작업일 뿐인데 잠을 쪼개어 오랜 시간을 들이는 과정은 효율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예술 작업에서 효율을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을 위해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성경을 펼쳤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통독을 다시 진행했다. 그전까지는 어렵게만 느껴졌고, 왕들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생각이 드는 역대하를 읽었다. 하지만 내게 마음을 굳게 먹고 주님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을 그저 서서 바라보라는 메세지를 주셨다. 생각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주님이 나의 기도를 모두 들으셨구나.
이 감사한 마음을 기도로 주님께 올려드렸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잠깐 행복하다가 금방 다시 슬퍼하며 하루하루 겨우 버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념에 잠겨 살았다. 잠에 들면 깨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오면 할 일들, 할 공부들, 싸울 것들 투성이였다. 기대보다 부담이 컸다. 그럼에도 아직 살아야만 하니까. 모두 버려두고 떠날 때가 오지 않았으니까. 나는 아직 어리고 젊으니까. 고생만 하는건 어쩔 수 없고, 버티는 것만이 답이었다. 내게 인생은 '버틴다.'는 해답만 존재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은 나의 삶과 마음을 만져주셨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장소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행복한 시간을 경험한다.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