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들
#2 민주와 로마 밤거리를 헤집다
혼자 여행 중인 외국에서 마찬가지로 혼자 여행 중인 한국인을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조심할 필요도 있다. 이민사회에서도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게 한국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소렌토에서는 날이 어두워져 역에서 두정거장 떨어진 피아노 마을로 돌아가는 사철을 기다리고 있던 내게, 커다란 짐가방을 든 한국 여성이 갑자기 다가와선 무작정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도를 내밀며 물었다.
"한국인이시죠? 저 여기까지 가는데 이 길 안전한가요? 저 오는 길에 무서워서 4시간 동안 화장실도 한번 못갔어요ㅠㅠ"
이태리 남부에 대한 오해가 빚어낸 웃지 못할 사연이었다. 이미 5일간 남부에 머물면서 사철도 여러번 타고 소렌토도 돌아다니며 여행자가 충분한 대비만 한다면 안전한 곳이라는 걸 깨달았기에,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괜찮다고 안전한 곳이니 걱정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러자 순간 그 여자의 눈빛이 싹 바뀌며, "그런데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서있어요?" 하고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그 여자의 사정도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난 여전히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로마 게스트하우스 숙박 이틀째, 한국인 룸메이트 민주가 새로 들어왔다.
처음 숙소에서 만나는 한국인이 반가운 한편으로 예쁘고 화려한 인상에 약간 긴장도 됐다. 통성명을 하며 민주가 내뱉은 친숙한 경상도 사투리에 그 긴장감은 한순간에 무너졌지만 말이다.
민주는 로마가 첫 여행지여서 철저히 준비를 해온 듯 했다.
특히 맛집은 파스타집, 디저트가게 등 종류 별로 시험공부하듯 달달 외워와서 묻기만 하면 바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나는 이참에 이제껏 못한 맛집탐방이나 해보자 싶어서 다음 날 저녁을 민주와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가 들르기로 한 맛집은 인터넷 블로그에서 추천한 파스타 집이었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여기가 한국인지, 로마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한국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때까지 어떤 음식점을 가도 보지 못했던 한국어 메뉴도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말로 나는 로마가 아니라 서울로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실망스럽게도 맛도 없었다.
민주도 진심으로 실망한 눈치였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여행을 하는건가'
문득 게스트하우스 스탭 moon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파스타를 다 먹은 우리는(사실 민주는 거의 남겼다) 디저트를 먹기로 했다.
민주는 스페인 계단 근처에 있는 케이크가게와 유명한 젤라또집 제안했고, 난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파스타집에서 스페인 계단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우린 이미 낮에 많이 걸은 터라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한국인으로부터 버스에서 폰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민주와 나는 버스를 타는게 두려웠고 미련하게 계속 걸었다.
그러나 겨우 도착한 케이크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물어물어 겨우 도착한 유명 젤라또가게의 젤라또는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수확없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발은 점점 더 아파왔고 우리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민주에게 쓰러지면 이곳에 묻어달라는 어설픈 농담을 던지며 상태가 악화되어감을 증명했다..
밤 열한시가 다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해 프론트를 지키던 스탭에게 거의 울먹이며 힘듦을 토로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민주와 로마 밤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시간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들 중 하나다.
우리는 헥헥거리며 힘들어하면서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서 우리가 지금 로마의 한가운데에 서있음을 신기해했고 주변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리고 나중에 각자 이때를 그리워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서로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날 헤어지며 흔한 메신저 아이디 교환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지.'하고 쿨한척 인사했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이란 응당 그래야하는 것이라며...
가끔 민주가 생각난다. 민주도 어쩌다 한번쯤은 이때의 기억을 품으며 잘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