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의 내면은 평화롭지 않았다
피렌체의 비앤비에 도착했을 때 주인 아저씨인 알베르토는 로마에서 왔냐고 묻곤 피렌체는 안전한 곳이라며 소매치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는 불신하며 "리얼리?"라고 되물었지만, 알베르토 아저씨의 그 말 덕분에 로마에서처럼 버스도 못타고 발바닥이 타들어가는 경험은 안해도 될 것 같아 안심했다.
피렌체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다. 과히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도시라 칭할만 했다.
한 소설책으로 인해 피렌체 두오모가 과대평가되었다고 항상 생각해왔던 나지만, 정작 피렌체 두오모와 처음 대면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붉은색 돔만 상상하며 두오모를 향했던 내게 등장한 그 첫모습은 조금 달랐다.
흰색 바탕에 분홍색과 회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져있는 벽이었다.
'건물에도 이런 색상을 사용할 수가 있다니, 심지어 이렇게 세련되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피렌체 두오모는 일생 처음으로 내게 감동을 준 "건축물"이었다.
기념품도 어찌나 예쁘고 아기자기한게 많던지.
민주랑 로마에서 기념엽서를 찾아다니며 우리가 사진 찍어도 이것보단 예쁘게 찍겠다며 볼멘소리를 하던 때가 어제였는데, 우리가 찾던 엽서가 피렌체에 다 모여있었다.
우피치 미술관도,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던 석양도 모두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감정상태는 자꾸만 다운되어갔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았다. 바티칸보다 훨씬 더.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끝없이 내게 밀려들어오는 아름다움은 나를 질리게 했고,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
미술관에선 작은 사건도 있었다. 미국 할머니가 갑자기 나에게 약간 무례한 톤으로 자기 작품 감상하고 있는데 앞에 지나가지 말라고 말했다. 그 부분은 명백한 나의 잘못이었고 내가 미술관을 많이 가보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난 이후 미술관에 있는 내내 매우 불편했다. 중간중간 그 할머니랑 마주칠 때는 더더욱. 누구나 이기적이다. 둘 다 이기적이기에 생긴 일이다. 나는 나한테만 집중해서 작품을 보았고, 그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시각차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앞으로 얼마나 수많은 갈등을 거쳐야 할까. 갈등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겪어내는 시간은 매번 고통스럽다.
그리고 내가 첫째날 발견하고 기뻤던 기념품 가게에 다시 방문했다. 친구들 선물을 사려고.
그때의 친절했던 직원과 다른 아줌마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저께 왔었는데 세트가 있었다고, 좀 싸게살 요량으로 그 말을 했더니 어이없어 하면서 나보고 잘가라는 것이다.
순간 어이없어서 벙쪄있었다... 그래도 물건이 예쁘니까 살까 고민하다가 내가 손해볼건 아무것도 없다 싶어서 나왔다.
단지 의사소통의 문제인걸까. 돈이 엮이면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추잡해진다.
유명 가죽시장에 가서 가방이랑 지갑을 샀는데, 이것도 왠지 속은 기분에 찝찝했다.
진짜 가죽인지도 모르겠고... 이왕 샀으면 내가 좋은 마음으로 잘 쓰면 되는 것인데, 마음속 깊이 남은 찝찝함은 왜 계속 사라지지 않는 걸까. 나는 이래서 흥정해야하는 시장이 싫다...
쇼핑은 내체질이 아닌 것 같다. 사람과 돈이 얽혀 나를 너무나 피곤하게 만든다.
일몰보다가 내려왔는데 미술관 앞을 지나는 길에 클래식기타 거리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클래식 기타를 쳤던 K에 대한 기억으로 왜그리 슬퍼지던지... 끝나버린 그 순간과 그 기억으로 슬퍼하고 있는 내 자신조차 슬퍼졌다.
두오모 앞에서 키스하고 있는 연인들을 보면서 조차도... 그들이 끝나고 다시 두오모에 오게 된다면 너무 슬퍼질 것 같아 문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건 행복해지고자 하는 건데, 순간은 행복해도 결국엔 어떤 건 나를 괴롭게 하고 어떤 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사실이 너무 슬프다.
모든 게 좋을 순 없다.
지금까지 충분히 많은 것들이 좋았고, 지금 여행을 끝낸다고 해도 나는 아주 많은 걸 얻었다.
남은 여행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일상을 살아내듯이 열심히 겪어내자 다짐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