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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기 Jan 30. 2016

4. 레이첼 할머니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유럽의 분위기

40일 남짓의 유럽여행 중 내가 가장 좋아하고 오래 머물렀던 마을 피아노에서 묵었던 곳은 레이첼 할머니의 민박집이었다.

그녀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미망인이었다.

방 세 개의 낡았지만 깔끔한 아파트의 사는 그녀는 남은 빈 방 두 개에 민박을 치고 있었다.

5일 동안 머물며 슬쩍 훔쳐 보았던 그녀의 생활은 이랬다.


아침엔 일찍 일어나 맛있는 빵을 구워서 게스트를 대접한다. 아침 9시부터는 청소를 한다. 오후엔 게스트를 맞이하고, 관광루트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며 마을 주변의 맛집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저녁에는 종종 이웃들과 저녁식사를 하거나 TV를 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게스트가 빠지면 여느 우리나라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이었다.

할머니는 민박치는 생활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민박을 위해 50살부터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웠다고 했다.

민박을 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별별 일을 다 겪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한 번은 어떤 게스트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이 사라졌다면서 할머니에게 화를 내며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결백했지만 작은 마을이었기에 소문날 것도 억울하고 해서 정말 당황했었다고 한다. 억양과 표정에서 그 때의 억울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다행히 게스트는 소지품을 찾았고, 할머니께 미안해하며 하루치 민박 금액을 더 지불했다는 훈훈한 스토리였다.


또 한 번은 커플이 왔는데, 80대 할머니와 20대 청년이었다고 했다.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더니,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이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겐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지요."

옆방에 묵고 있었던 비슷한 또래의 아르헨티나 여자애와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본인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할머니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 분은 한 번 결혼을 했던 사람이며 딸도 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며 딸들과 아주 잘 지내고 여름에 자주 함께 여행을 다닌다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새삼 유럽의 자유로움에 부러움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해군이었다고 한다.

그는 젊을 때 군인신분으로 중국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났던 사람의 자녀가 할머니를 찾아오기도 했다며 아시아에 친근감을 표했다.

그리고는 본인도 아시아에 매우 관심이 많다며 갖고 있던 일본 도자기 여러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의 삶을 보며 새삼 느꼈다.

'새삼 사람들이 참 다양하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구나.

반드시 한 가지 방식만을 고집할 필요가 전혀 없구나.'


아시아의 규율과 도덕을 강조하는 공동체적 삶은 분명히 그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젊은이로서 유럽의 자유분방함이 왠지 더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포기에 무언가 모를 확신을 얻은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획일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한 가지 길만이 성공이라 주장하는 우리나라 안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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