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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기 Jan 31. 2016

5. 로마,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 1

유쾌하고 친절한 게스트하우스 스탭들

고새 정들었던 이태리 남부를 떠나 로마로 입성했다.

로마는 전세계적인 관광지인 만큼 소매치기로도 악명이 높아서 나는 짐을 싸매며 한껏 긴장했다.


그러나 정작 로마에서의 경험들은 나의 긴장감과 정확히 어긋났다.

여느 곳보다도 유쾌한 게스트하우스 스탭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크인을 하는데, 웰컴 쥬스까지 주는 친절함에 괜히 호텔에라도 온 기분이 들어 긴장이 풀렸다.

밀린 빨래를 하려고 스탭에게 가까운 세탁소가 어딘지 물었는데, 체크인을 받은 여자 스탭이 초보였는지 청소중이던 다른 남자 스탭을 불렀다.

남자 스탭은 오자마자 여자 스탭과 내게 장난을 걸며, 유쾌하게 세탁소 위치와 특징들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내가 맛집도 추천해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파스타집과 타코집 몇 개를 추천해주곤 혹시 한국식당도 갈거냐고 물었다.

한국식당은 유럽에서 비싸다고 소문이 자자한 터라 사실 갈 생각이 없었지만, 혹시나 해서 'maybe...'라고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그는 유럽까지 와서 한국음식을 왜먹냐고 너는 여행을 온거고 그렇다면 여기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니가 먼저 물어봤잖아요... '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말이 옳았다.

어른들이야 입맛이 워낙 굳어져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여행하는 젊은이들이라면 그 나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맛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자의 자세일 것이었다.

내가 당황해서 허허거리며 웃자 그는 내 이름을 물었다.

내가 "my name is sun."이라고 하자 장난기 많은 그는 "your name is sun? then, my name is moon."이란다.

그리고 그는 떠날때까지 나에게 진짜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다음날, 바티칸 투어 때문에 일찍 일어나 주방으로 갔더니 한 스탭이 아직 음식을 준비중이었다.

내가 투어때문에 일찍 나가야해서 혹시 지금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친절하게 아직 준비중이긴 하지만 차려져있는 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가 "한국사람이세요?"하고 한국말을 건네서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그는 한국에서 3년 정도 살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인도식당에서 일한 파키스탄 출신이었다.

한국어 발음부터 문장구사까지 완벽해서 지금껏 내가 직접 만난 외국인 중에 가장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영어, 이태리어, 한국어, 파키스탄어, 스페인어 등등 약 7개의 언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세계 각국에 친구들이 많아서 여러 나라를 돌아가며 거주한단다.

파키스탄에서 나고 자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일하고 또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지금은 이태리에서 일하는 삶이라...

지금껏 내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삶의 방식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인터넷과 항공이 발달하면서 전세계는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까워졌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던가.

한반도 남쪽의, 그것도 외국인들은 알지도 못하는 부산에 살며 한국 제2의 도시에 산다고, 거기서 공부 좀 했다고 우쭐됐던건 아닌지..

새삼 내가 부끄러워지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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