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의 벚꽃

잎이 나기도 전에 일찍 꽃이 져버렸다

by 공담

2008년 4월 4일

지금까지 그때만큼 예쁜 벚꽃을 본적 없다
그건 아빠의 장례식장 앞 벚나무에 핀 꽃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없어졌어도 피는 꽃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파랗기 보단 하얀 하늘에 흐드러지게 날리던 벚꽃 잎과 개나리 그리고 가득 피어난 봄이 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죽었는데 봄이 참 예쁘다고 생각하다니.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너무 선명해 매년 벚꽃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어쩌면 그 봄이 더욱 환하고 눈부시게 그려진 건 아빠를 잃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지나 들어간 곳은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추운 곳이었으니까.




나는 아빠를 무척 좋아했다


5살 때부터 조수석 자리는 내 자리였다. 아빠는 영어학원차량 운전사였다. 차종은 잘 모르는데, 길고 청록색이다. 딱 학원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 벌써 그 번호판이 없어진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까지 번호판을 미련하게도 외우고 있다. 학생들을 태우러 가는 길은 언제나 재미있는 드라이브 길이었다. 엄마는 춥지 말라고 담요를 앞자리에 두었다. 정확히 이름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집은 ‘밍크담요’라고 불렀다. 진짜 밍크는 아니지만 손으로 어루만지면 그만큼 부드럽다. 장미나 모란과 같이 크고 색깔이 화려한 꽃이 그려져 있다. 어린 나에게는 하나뿐인 나만의 조수석 이불이었다.

그 이불을 덥고 몸을 웅크리면 아빠는 웃으며 손을 잡아줬다. 거칠지만 늘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내 기억으로 전해져 시간이 지나도 차와 함께한 기억이 많다. 차에서 오징어를 먹으며 학원 앞에 지어지는 아파트를 구경한 거, 아빠랑 친한 학생이 조수석에 앉겠다고 나를 때려 아빠가 혼내준 거, 그리고 조수석 앞 나만의 창고에 늘 아빠가 숨겨두던 박카스 한 병.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에 다리도 닿게 되고, 조수석에 웅크리고 자기에는 불편하게 될 쯤 그렇게 없어져버렸다. 차도 아빠도 내 밍크담요도.




초등학교 5학년 평범한 하루, 선생님은 교실에 있던 나를 불렀다. 밤이 되니 나는 우리 집이 아닌 작은 아버지네 집에 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아빠의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은 네모난 틀처럼 생겨서 나를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가운데로 난 창문 아래로 조그마한 정원이 보였고 아빠도 보였다. 담배를 늘 입에 물고 살아서 여전히 병원에서도 끊지 못했다.

아빠의 병원생활은 짧을 거 했지만 그 보다는 훨씬 오래였다. 나는 주말마다 아빠를 보러 혼자 병원에 갔다. 병원까지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타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에게 1시간 동안 혼자 가는 건 내가 견뎌야 할 몫이었다. 난 불평 섞인 말투로 엄마에게 매번 투정을 부렸다. ‘작은 아빠 강아지 호두가 나를 싫어해서 맨날 짖는다’, ‘나는 콩밥도 생선도 싫은데 자꾸 먹으라 그런다’, ‘나는 그 드라마 보기 싫은데’.

일요일 저녁이 되면 작은 아버지는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낯을 유난히 많이 가렸는데 친척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차를 타고 가는동안 어색함이 싫어,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잠을 자거나 자는 척을 했다. 어느날은 작은 아버지가가 잠시 어디에 내렸다가 탔는데 뭔가를 사왔다.

‘애가 고기를 좋아한다고, 사주라고 하더라’.

나는 그냥 해본 소리라고 여겼는데, 엄마는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거기에 있어도 여기에 있는 내가 걱정이었다.




나가지 못하는 아빠는 나를 기다렸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은 엄마는 쉬는 날이었고 간이침대는 조수석처럼 나의 자리가 되었다. 하루는 좁은 그 곳에서 자다 굴러 떨어져, 밤새 같은 병실 아저씨들의 놀림거리가 된 적도 있다. 아빠가 병원 문 앞에서 돈을 쥐어주면 난 그 돈을 들고 늘 길 건너 슈퍼에서 아몬드 초콜릿을 사왔다. 빨간 포장을 벗기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초콜릿을 한 알, 한 알 빼먹으면 금새 다 먹는다. 그 초콜릿은 늘 하나가 모자랐지만 그게 그만의 매력이었다.

아빠가 침대에서만 있게 되었을 때는 그 작은 행복마저도 사라졌다. 누워만 있으니 아빠는 늘 좋아하던 담배가 그리웠다. 몸은 점점 나빠지고 엄마는 날카로워지니 입에도 대지 못했다. 아빠는 나를 살살 달래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말했다. 창문은 열고, 방문은 잠그고, 간호사가 오는지 망을 보고,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아빠에게 주었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프기 전 아빠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아직까지도 엄마는 후회한다고 한다. 그렇게 당신이 피고 싶어 하던 거 끝까지 말린 게 미안해서.




그저 12살이었다


아빠의 암을 받아들이기도, 병원의 찬 냉기를 느끼기에도 어렸다. 누구는 나에게 어른다워야 한다하고 누구는 나에게 애처럼 굴어라고 말했다.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이 져버리는 벚꽃나무처럼, 나는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을 지우는 준비를 했다. 병원 생활이 3개월이 지났을 때, 우리는 6인실이던 병실을 1인실로 옮겼다. 눈조차 내리지않는 추운 겨울동안 아빠는 야위어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흠칫 놀랐지만, 놀라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더 겁을 먹어버리니까. 우리는 그 ‘겁’을 다 감추려고 했지만, 감추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추운 새벽에 일어나는 걸 나는 제일 싫어했다. 어두운 아침에 찬 공기를 먹으며 씻으러 가는 것도,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오들오들 떨면서 서 있는 것도. 가야 한다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이 떠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찾아 입고 머리를 묶고 차에 탔다.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혼자 가는 병원 길은 그렇게 짧게 느껴졌는데, 차를 타고 달리는 길은 너무 느리고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새벽에 저무는 별들을 보면서 기도했다. 아빠가 가지 말게 해달라고 빌지는 않았다. 그냥 엄마가 덜 슬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싫어


엄마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잡아보라고 했다. 나는 못 잡은 게 아니라 안 잡았다. 지금까지 그걸 후회하지 않는다. 잠이 들면 잡아주던 손이, 두 팔 벌려 안아주던 손이, 그렇게 차갑게 덮여 버리는 건 싫었다.


어른들이 빈소에서 바쁠동안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 나는 까만 상복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가 사라진 장례식장은 먹먹함으로 가득해 숨이 막혔다. 떨어진 벚꽃잎들이 아스팔트 도로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올려본 벚꽃나무. 벚꽃나무에는 숨막히도록 핀 벚꽃들이 어지럽게 피어있었다. 고개를 들자 그제서야 눈물이 났다. 아빠는 이걸 못보는구나.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바라본 벚꽃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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