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17일 (월)
아침식사는 숙소에서 7시 반부터 먹을 수 있다고 해서 6시45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배낭을 대충 꾸린 다음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갔더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식당 안에 있었다. 아마도 7시 반에 딱 맞추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아침메뉴는 뷔페식으로 빵과 음료수가 있었다. 물론 빵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토스트기에 넣어서 구워먹을 수도 있었다. 잼도 여러 종류고, 음료는 우유와 커피였다. 주스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요구르트가 있으니 디저트로는 괜찮았다.
30분만에 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가 배낭을 다시 꾸려서 숙소를 나섰다. 당장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오늘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판초우의를 뒤집어썼다. 오전 8시가 지났는데도 밖은 아직 밝지 않았다.
이 길은 4년 전에도 걸었었기 때문에 낯익은 곳들이 꽤 있었다. 15분쯤 걸어가니 피스테라(89.586km)와 무시아(86.482km)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표지석이 있었다. 이번에는 무시아로 먼저 갈 예정이지만, 오늘과 내일 걷는 길은 피스테라로 가는 길과 같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출발했더니 앞서가는 순례자들이 꽤 보였다. 그렇지만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앞질러 가기도 하고 뒤쳐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그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나의 경쟁상대도 아니었다. 물론 오늘의 목적지는 대부분 네그레이라(Negreira)이겠지만, 거기엔 알베르게도 많고 더욱이 나는 예약까지 해놓은 터라 신경 쓰 게 전혀 없었다.
날씨가 그런대로 괜찮았었는데, 출발한지 1시간쯤 지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즈음 첫번째 바르를 만났지만 너무 이른 시간인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었다. 마침 마을주민이 지나가다가 이 길이 아니라고 가르쳐줘서 크게 힘들진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다 적게 오다 반복해서 옷이 많이 젖었다. 그렇게 1시간을 더 가서 두번째 바르를 만났는데, 또 그냥 지나쳤다. 다른 날 같으면 시원하게 맥주라도 한잔 마시고 갔겠지만 오늘처럼 비를 흠뻑 맞은 날은 맥주 마시기에 적당하지 않다.
비가 좀 멎으면 바지가 조금 말랐다가 다시 비 맞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국 세번째 만난 바르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마을주민과 인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먼저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에 처음 마셔보는 카페라테(café con leche)를 주문했다. 설탕을 따로 줬지만 넣지 않고 그냥 마셨는데도 맛이 괜찮았다. 지금까진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셨었는데, 앞으로는 카페라테로 대체해도 될 것 같다.
비에 흠뻑 젖은 옷 때문에 벌벌 떨면서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고 바르를 나서자마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소나기였다. 지난번에도 소나기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보다 더 굵은 것 같았다. 조금 말라가던 바지는 다시 젖었다. 게다가 신발에도 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비옷 안에 입은 점퍼는 물론이고 티셔츠까지 전부 젖었지만,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그냥 걸었다.
소나기가 그친 다음에도 비는 계속 오락가락 했다. 소나기를 한번 맞고 났더니 조금씩 내리는 비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그렇게 걸어서 12시가 조금 지났을 때쯤 마세이라 다리(Ponte Maceira, 마을이름도 폰테 마세이라다)와 산 블라스 예배당(Capilla de San Blas)을 만났다. 마세이라 다리는 모양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위해 카미노를 벗어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걷다 보니 오늘 묵을 알베르게(Albergue Alecrin) 안내판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 1시가 되기 조금 전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오늘은 늦게 출발했는데도 또 첫번째 도착이었다. 이 알베르게는 1시에 오픈한다고 했으니, 시간도 딱 맞췄다. 알베르게 문이 열려있어서 비옷을 벗고 들어가 첫번째로 접수한 후에 침대를 배정 받았다. 그런데 예약을 해서 그런지 침대에 내 이름표까지 붙여놨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샤워를 마친 다음 어제 입었던 옷까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세탁기를 돌렸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려는데, 인터넷에는 이 알베르게에서 식사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왔길래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요즘은 식당 문을 닫았다면서 바로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먹으라고 했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어서 좀 주춤거렸더니, ‘이 정도 비쯤이야’ 하는 눈치다. 그래서 비를 맞으면서 식당으로 뛰어갔다.
식당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더니 종업원이 왔다. ‘menu!’ 하고 외쳤더니 메뉴판을 갖다 줬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menú del día를 원한 건데. 그렇게 말했더니 다시 적어다 줬다.
오늘도 선택은 수프와 고기였다. 음료는 맥주(어떤 식당에서는 음료를 물이나 와인 중에 선택하게 하고 맥주를 시키려면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프(sopa casera)는 여느 때처럼 국수가 들어있는데, 그것 말고도 버섯이나 야채가 많이 들어가서 지금까지 먹었던 수프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고기(churrasco con patatas)는 LA갈비처럼 생긴 걸 그릴에 구운 거였다. 역시 지방이 없어서 조금 퍽퍽하긴 했지만 간이 짜니까 그게 또 먹을 만했다. 가격은 12유로.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또 비가 내렸다. 그래서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조금 기다렸더니 다행히 비가 멎었다. 그런데 언제 또 비가 내릴지 몰라 숙소까지 빠르게 질주했다. 그리고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 건조기에 넣었는데,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몰라서 알베르게 직원을 불러 도움을 받았다.
일기를 쓰고 있는 동안 파란 하늘이 보였다. 인터넷에는 내일도 비가 올 거란 예보가 있었지만 제발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 비 맞으면서 걷는 게 정말로 성가시기 때문이다.
비가 오락가락 해서 시내구경도 하지 못하고 숙소에 있다가 저녁 8시가 되어, 점심 때 갔던 식당으로 다시 갔다. menú del día를 먹기 위해. 그런데 저녁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입구에는 분명히 20시에도 한다고 안내돼있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어떻든 없는 음식을 달라고 할 수는 없어서 단품을 하나 주문했다. 프랑스식 오믈렛이라는데 뭔지는 잘 몰랐다. 그저 번역기를 돌려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으로 주문한 거였다. 스페인식 오믈렛은 감자가 많이 들어있어서 모양도 맛도 오믈렛과는 거리가 있는데, 프랑스식은 계란만으로 만들어서 식감도 부드럽고 맛도 좋았다. 함께 나온 샐러드도 오믈렛과 대충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