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43일째, 산타 마리냐에서 둠부리아까지

by 이흥재

2022년 10월19일 (목)


아침에 일어나 짐을 챙겨서 출발하기 위해 알베르게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바람은 꽤 불었지만 그 정도면 견딜 만했다. 오늘은 비도 올 것 같고 날도 어두워서(매일 어두울 때 출발하긴 했다) 되도록이면 포장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다행히 카미노는 포장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왔다 갔다 하도록 나있었다. 카미노를 따라가면 거리도 멀어지지만 땅이 질척거리고 풀에 물기도 많아서 신발이 지저분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포장도로를 잘 걷고 있었는데, 출발한지 1시간 정도 지나면서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거세졌다. 왼쪽에서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오니까 다른 때는 무릎부터 젖던 바지가 왼쪽부터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어디서 쉴 곳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첫번째 만난 바르는 그냥 지나치고, 3시간쯤 걸어 올베이로아(Olveiroa) 마을에서 만난 두번째 바르에 들어갔다. 그곳은 피스테라나 무시아로 가는 많은 순례자들이 묵어가는 곳이라, 바르 안에는 배낭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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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나 무시아로 3일만에 가는 사람들은 대개 네그레이라와 올베이로아에서 묵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네그레이라에서 올베이로아까지는 물론, 올베이로아에서 피스테라나 무시아까지의 거리가 모두 30km가 넘기 때문에, 나는 4일 동안 걷기로 해서 올베이로아 전의 산타 마리냐와 그 다음의 둠브리아(Dumbría)에서 한번씩 묵어갈 예정이다.


바르에서 카페라테를 한잔 시켜서 마시고 있는데, 밖에는 조금 잦아들었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어쩌지?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바르를 나설 즈음에 비가 그쳤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오늘 같은 날씨는 언제 또 비가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올 거란 일기예보도 있었다.


올베이로아를 지나면 카미노는 숲속으로 이어지지만, 이번에도 포장도로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또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데,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의 산등성이마다 수많은 풍력발전기가 설치돼있었다. 아마도 대서양이 가까워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산들이 우리나라처럼 겹겹이 있는 게 아니라서 바람 맞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바람개비 돌아가는 걸 동영상으로 찍으려고 가까운 곳으로 가면 큰 나무들이 가로막아서 찍을 수가 없었다. 멀리서 보면 꽤 높은 곳에 설치돼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 가면 어김없이 나무들에 가려져서 사진 찍기가 곤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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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도로로 걷다 보니 오스피탈(Hospital) 마을을 지나쳤다. 지난번에 봤던 건물(Punto de Información al Peregrino de Hospital)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걸으면서 옆을 보니 뒷모습만 보였다. 포장도로만 따라 걷다 보니 오늘은 카미노보다 2~3km 적게 걸은 것 같다. 시간으로는 30~40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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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정도 걸어서 피스테라와 무시아로 갈라지는 지점(Great Divide)까지 갔다. 왼쪽으로 가면 피스테라고, 오른쪽으로 가면 무시아다. 표지석이 있는 거리를 보면 피스테라로 가는 게 조금 더 멀다(피스테라 29.593km, 무시아 26.589km). 나는 이번에 무시아로 가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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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전까지는 멀리서만 봤던 풍력발전기들이 바로 앞에서 보여서 열심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저렇게 열심히 돌아가니 가성비가 꽤 좋을 것 같다.

풍력발전기01.jpg

출발한지 5시간 만에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Conco en Dumbría)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을과는 꽤 멀리 떨어져있었다. 입구에는 오후 1시에 오픈한다고 게시돼있었지만 출입문을 밀었더니 스르륵 열렸다. 또 다른 안내문을 보니, 먼저 들어가서 침대를 차지하고 있으라고 해서 안으로 들어가 침대 하나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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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다니던 비누를 엊그제 잊어버려서 마을의 가게로 가서 비누를 사와서 씻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화장실에 물비누가 있어서 그걸로 샤워만 하고, 빨래는 내일 무시아에서 몰아서 하기로 결정하고 수건만 빨아 널었다. 젖은 신발도 잘 마르도록 양지에 세워뒀다.


그리고 점심도 먹고 저녁거리도 마련하기 위해 마을로 갔다. 언덕을 오르니 몇 채의 집 뿐인 작은 마을이 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바르와 슈퍼마켓 표시가 동시에 있어서 화살표를 따라갔더니 바르 한쪽에 ‘super’가 무색하게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다. 바르에서 함께 운영하는 것 같았다. 가게를 한바퀴 둘러보고 저녁거리가 될 만한 걸 점 찍어놓은 다음 바르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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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을 수 있느냐고 번역기를 돌려서 물어보니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따로 계산해야 하는 부분인지 잘 몰라서 당황할 때가 가끔 있다. 오늘도 뭘 마시겠냐고 해서 맥주를 달라고 했다. 그러고 앉아있으니까 에피타이저로 수프를 갖다 줬다. 국수와 조그만 파스타가 들어있었는데, 국물 맛에 전에 먹었던 것과 비슷했다. 대부분 닭고기로 국물을 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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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를 다 먹고 나니 작은 돈마호크처럼 생긴 돼지고기 2개가 들어있는 접시를 갖다 줬다. 감자튀김도 있었다. 먹어보니 조금 설익은 것 같긴 한데, 고기가 부드러워서 감자튀김과 먹어도 잘 넘어갔다. 그런데 양이 조금 많은 것 같아서 남은 고기를 칼로 토막 낸 후에 포장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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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났더니 커피를 마시겠냐고 해서 카페라테를 달라고 했다. 어떤 식당에서는 이것저것 먹을 거냐고 물어본 후에 나중에 계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심할 때도 있는데, 오늘은 세트메뉴에 모두 포함된 거였다.


오늘 묵는 알베르게에서는 와이파이가 안 되는 것 같아 바르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식사가 끝난 후에도 계속 앉아있었다.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눈치 받을 수도 있겠지만, 들어오는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주인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인터넷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 정도까지 앉아있다가 가게로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저녁에 먹을 걸 사야겠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그래도 점심을 먹고 남은 고기가 있으니까 여기서 고기를 또 살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샐러드라고 써있는 즉석식품과 음료수, 요구르트 그리고 처음으로 바나나도 1개 샀다. 물을 사려니까 큰 병만 있었지만 그것도 그냥 샀다. 요금은 전부 5.1유로. 대체로 싼 편이었다. 물은, 큰 슈퍼마켓에 가면 500ml가 20센트가 좀 안되고 큰 병도 40센트 정도면 충분한데, 여기서는 60센트였다. 다른 물건들도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해도 저녁거리로 비싼 편은 아니었다.


이제 드디어 내일이면 무시아에 도착하게 된다. 지금은 하늘이 맑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리바데오 이후 2주 만에 다시 바다구경을 하게 될 텐데, 비를 맞으며 구경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먹을 거리까지 구한 후에 알베르게로 돌아왔지만,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6시쯤 인터넷을 보기 위해 점심을 먹었던 바르로 다시 갔다. 커피 한잔만 시키면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은 곳이다.


바르에 앉아 인스타그램도 업로드 하고, 인터넷도 보면서 1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된 것 같아서 알베르게로 돌아갔더니 그제서야 알베르게 직원이 와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직원인줄 모르고, 나한테 말을 걸길래 뭔가 도와달라는 줄 알았는데 자기가 여기 직원이라고 했다.


얼른 침실로 가서 크레덴시알과 여권을 갖고 와서 접수를 마쳤다. 요금은 8유로였다. 와이파이가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역시 안된다고 했다. 이 알베르게에는 8인용 침실 3개와 장애인용이 있었는데, 어제 숙박한 순례자는 3명 뿐이었다. 결국 침실을 하나씩 차지했다. 누구한테도 방해를 안 받으니 조용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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