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파리구경

by 이흥재

2022년 10월24일 (월)


아침 6시45분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났더니 밖은 아직 어두웠다. 서두를 건 없으니 8시레 알람을 맞춰놓고 또 자다가 일어나니 아직도 훤하게 밝은 건 아니었다. 스페인에 있으면서 표준시간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었는데, 한참 동쪽이 파리도 8시가 되도록 밝지 않은 걸 보면 그 표준시간이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침식사는 엊저녁에 먹다 남겨놓은 훈제통닭을 먹었다. 어제는 그나마 따뜻할 때 먹어서 좀 나았는데, 식은 걸 먹었더니 더 퍽퍽했다. 그래도 음료수와 대추야자를 같이 먹으면서 살은 얼추 발라먹었다. 그 정도면 배도 찬 것 같다.


간단하게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가서 잠시 인터넷을 보다가 전철을 타기 위해 숙소 밖으로 나갔다. 첫 행선지는 개선문(Arc de Triomphe)이다. 숙소에서 5분쯤 걸어가면 전철역(Barbés Rochechouart)이 있고, 거기서 Porte Dauphine 방면으로 10정거장 가서 밖으로 나오면 길 한가운데 개선문이 보인다(12개 도로가 만나는 곳 중앙에 있다).


전철역으로 가서 표 파는 기계 앞에 서니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모르겠다. 티켓 끊는 조건이 여러 개라서 어느 걸 눌러야 하는지 몰라 창구로 갔더니 1.9유로짜리 티켓을 줬다. 전철을 타고 개선문역(Charles de Gaulle Etoile)에서 내렸는데, 나갈 때는 표를 제시하지 않아도 됐다. 어제는 표가 없어서 그렇게 애를 먹었는데, 아무런 제한도 없이 나갈 수 있다니! 역마다 다른 건가? 아무튼, 무사히 역을 빠져나가 개선문 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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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지만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정면을 찍으려면 도로 한가운데로 가야 하는데 차도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길가에서 찍었더니 모습이 찌그러져 나왔다. 그저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른 행선지로 가기로 했다.


개선문은 12개의 방사형 도로가 만나는 가운데 위치해 있는데, 지상으로 접근할 수는 없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차도를 가로질러 가기도 했다. 샹젤리제 거리(Av. des Champs-Élysées)와 그랑드 아르메 거리(Av. de la Grande Armée)를 연결하는 북쪽의 지하통로를 이용해 개선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당초 계획은,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가다가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III)를 건너 앵발리드(Invalides)와 로댕 박물관(Musée Rodin)을 본 다음, 에펠탑(Tour Eiffel)을 구경하고 사요 궁전(Palais de Chaullot)에서 전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거였지만, 개선문을 보고 나니 다른 건축물들도 별고 감흥이 없을 것 같아서 바로 에펠탑으로 가기로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샹젤리제 거리를 조금 걷다가 곧바로 오른쪽 길(Av. George V)로 갔다. 샹젤리제 거리 이름은 아름답지만,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이 거리에는 명품들이 많아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길 양 옆으로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하기만 했다. 그리고 명품가게는 샹젤리제 거리 말고도 개선문을 중심으로 여러 골목에 즐비하게 있었다.


에펠탑을 가는 동안 조지 5세 거리를 지나는데, 오른쪽에 루비비통 가게가 있었고, 문을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긴 줄을 서있었다. 잠시 후 문을 열었지만 한꺼번에 들어가지 못하고, 1~2명씩만 차례로 들여보냈다. 뭘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일찍부터 줄 서있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 광경은 에펠탑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에르메스 가게에서도 또 한번 목격했다. 그렇지만 다른 가게들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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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 거리를 따라가다 알마 다리(Pont de l'Alma)를 건너면 에펠탑 광장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광장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래 전 유럽여행을 하면서 왔을 때는 광장에 파란 잔디가 있어서 휴식하고 사진 찍기에 좋았었는데, 지금은 울타리를 쳐놓아서 아예 광장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요즘은 에펠탑에 20번째 페인트칠 하는 기간이라는데, 곳곳에 휘장이 둘러져 있었다. 그래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많았다. 가까이에서는 에펠탑 전경을 찍을 수 없어서 뒤로 조금씩 뒤로 가다 보니 길을 건넜다. 그곳에서 전경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날씨가 맑지 않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좋은 사진들은 인터넷이 많이 있다. 현장에서 본 것으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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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전망대에 오를 계획은 없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에펠탑 밑에는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안내문을 보니 에펠탑에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또한 오르는 층수와 방법에 따라서 요금이 달랐다. 예를 들어, 2층 전망대까지 엘리베이터를 타면 17.1유로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10.7유로를 내야 한다.


에펠탑 구경을 거의 끝냈을 무렵 경찰이 오더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그 옆에는 총을 든 군인들도 몇 명 있었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서, 광장 울타리를 돌아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전철 타는 곳으로 가고 있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보슬비 수준이지만 언제 더 내릴지 모를 일이었다. 벌써 우산을 펼쳐 든 사람도 보였다.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서둘러 걸었다. 좀전에 에펠탑으로 가면서 배가 고파 샌드위치를 하나 먹긴 했어도,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팠다.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면서 맥도널드 가게를 봤던 게 생각나 오랜만에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조지 5세 거리를 지나고 샹젤리제 거리를 건너 맥도널드 가게까지 갔는데, 입구부터 키오스크가 여러 대 설치돼있고,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 기다릴 것 같아서 바로 옆에 있는 햄버거 가게인 퀵(Quick)으로 갔다. 거기도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곧바로 주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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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먹어본 햄버거는 맛이 좋았다. 스페인에서는 대부분의 빵이 바게트라서 보카디요를 만들어서 먹든, 그냥 먹든 씹기가 어려웠는데 빵이 너무 부드럽고 패티도 맛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개선문역으로 갔는데, 여전히 티켓을 발매하는 기계의 작동방법을 모르겠다. 서비스코너로 가서 줄 서있다가 차례가 되어 그곳에서도 티켓을 파냐고 물어봤더니, 교통카드만 발급하는 곳이니 티켓은 기계로 가서 끊으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기계로 돌아가서 다시 시도해보니 티켓이 나왔다. 우리나라처럼 행선지를 고르는 게 아니라 구간별로 정해진 티켓을 사야 했는데, 내가 가는 행선지가 어느 구간에 해당하는지를 알아야 해서 조금 번거롭긴 했다. 다행히 오늘은 1구간이어서 1.9유로를 기계에 넣고 티켓을 끊었다.


개선문역에서 10 정거장을 지나 전철에서 내려 숙소로 돌아가는데, 한참 동안 걷다 보니 숙소를 지나쳐버렸다. 어, 여기가 어디지? 다행히 멀리까지 간 건 아니어서 기억을 더듬으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1층 로비에 잠시 들러 인터넷을 한 후에 침실로 갔다.


침실에서는 인터넷을 볼 수 없어서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6시쯤 저녁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갔다. 이곳은 스페인과는 달리 프랑스 음식뿐 아니라 아랍이나 터키 음식점들이 여럿 보였다.


우선 터키 음식점으로 가서 케밥을 하나 사고, 다른 식당으로 가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식을 하나 더 사서 숙소로 돌아와 먹어봤더니, 케밥은 조금 짠 반면 나중에 산 음식은 고소하고 맛있었다. 그렇지만 둘 다 먹기엔 양이 조금 많아서 케밥은 다 먹고 다른 음식은 다음날 아침에 먹기 위해 조금 남겨놓았다.


저녁식사 후에도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인터넷을 보다가 밤 9시경 침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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