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7일(토)
산엘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어제 12시도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악몽까지 꾸면서 잠을 설쳤다. 게다가 밤에 눈이나 비가 올 거라고 해서 혹시나 아침에까지 내리면 오늘 산행을 포기할까도 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땅은 젖은 것 같은데, 비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결국 다시 잠자리에 드는 걸 포기하고 곧바로 찌개를 데워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은, 차를 갖고 검단산에 가려고 했었다. 2021년 3월, 하남검단산역이 생기면서 지하철을 타고서도 검단산에 갈 수 있게 됐지만, 강동역에서 한번 갈아타고 다시 한참 동안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1시간 이상 걸리는 반면, 자동차로는 20~30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시간절약을 위해서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차를 몰고 나가는 걸 포기하다 보니 급하게 생각난 산이 가까운 곳에 있는 청계산이었다. 청계산도 2021년 11월부터 청계산입구역이 생기면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게 됐다. 오금역과 양재역에서 2번이나 갈아타야 하지만.
그렇게 2번을 갈아타고 청계산입구역 밖으로 나왔는데, 7시 반이 지났는데도 아직은 환하게 밝지 않았다. 아니, 날씨가 흐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일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산에 가려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단체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륵당(彌勒堂)을 지나는데 아직은 밝지 않아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이곳에는 미륵당에 대한 설명은 없고,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원지동 석불입상’과 울타리 안에 조그만 ‘석탑’에 대한 설명문만 세워져 있는데, 그 내용을 이렇다.
“원지동 석불입상 및 석탑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3호다. 석불입상은 225cm에 달하는 큰 규모로 원래 사찰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미륵당 안에 모셔져 있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큰 기둥 같은 모습이고 표면에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있다. 이 불상은 머리가 커다랗고 머리 윗부분이 뾰족하며, 얼굴이 길고 어깨가 좁아 토속적이고 위축된 모습이다. 미륵당 옆 바닥에는 이 불상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 천개(天蓋, 삿갓머리)가 있으나, 석불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미륵당 앞에는 작은 3층 석탑이 있는데, 지붕돌[屋蓋石] 귀퉁이가 훼손됐고 상륜부(相輪部)는 남아있지 않다. 석탑 지붕돌 받침은 3단이며 몸돌(石核, 석기[石器]를 제작할 때 원재[原材]에서 격지[剝片]를 떼어낸 나머지 돌)과 지붕돌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이 석탑과 석불을 통해 볼 때 이 일대는 원래 절터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석탑과 석불만 남아있다. 이 불상의 영험(靈驗)함이 알려져 이곳 주민들이 1년에 한번씩 동제(洞祭)를 지낸다.”
미륵당을 지나면 ‘원터골 굴다리’에 채소 등을 파는 좌판이 있는데, 휴일이어서인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덮어놓은 포장을 벗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살 게 있는 것도 아니니 아쉬운 마음 없이 구경하면서 지나간다.
상가를 지나 등산로 입구에 많인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마도 단체로 온 사람들이 산행을 위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그곳에서 아이젠을 착용했다. 지난주 아이젠 없이 북한산을 오르면서 고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입에는 눈도 거의 없고 길도 상태가 좋아서 아이젠이 없어도 되겠다 싶다. 조금 가다가 갈림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오른쪽 길 대신 조그만 다리를 건너 왼쪽 길로 접어들었는데, 여자 등산객 둘이 뒤따라오더니 이내 나를 앞질러 갔다.
청계산이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서울의 여느 산들과 마찬가지로 경사가 급하고 계단이 많아서 오르기에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정도 쯤이야 하면서 쉬지 않고 오르다 보니, 좀 전에 나를 지나쳐갔던 여자 둘이 쉬는 틈에 그녀들을 다시 앞질러 갔다.
조금 오르다 보니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지난번 북한산을 오를 때도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갈 길을 가면 그만이다. 내 앞에 가선 등산객들을 몇몇 지나쳐 올라갔다.
그런데 오르면 오를수록 눈이 많이 쌓여있다. 아이젠이 있어서 미끄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하면서 올라갔다. 이럴 때는 계단을 오르는 게 더 낫다. 경사로였다면 한 두번 미끄러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매봉 600m 전 지점에 있는 나무로 만든 아치를 지나고, ‘청계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가라’는 돌문바위에서 돌문을 한번 통과한 뒤에 충혼비 지점에 이르렀다. 나는 청계산을 오를 때마다 한번씩 다녀오는 곳인데, 오늘은 앞서 가던 남녀 커플이 그 길로 갔다. 아니, 이들도 충혼비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가? 그렇지만 아니었다. 그저 그곳의 눈 내린 경치가 다른 곳보다 더 보기 좋아서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충혼비에 다다르니 묘역주위에 눈이 가득하다. 등산로에서는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렸는지 몰랐는데, 그곳엔 꽤 많이 쌓여있었다. 잠시 묵념한 후에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청계산 충혼비(A War Memorial to Fallen Patriots)’ 옆에는 전에 없던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창공의 꽃으로 피어 후배들의 가슴속 깊이 자리한 영령들을 기리며
세계최강의 특전부대 용사로 거듭나기 위한 공수기본 250기 대원들은 3주간의 지상훈련을 마치고 1982년 6월1일 자격강하를 실시하기 위해 공군수송기(C-123)에 탑승했다. 서울시 거여동 소재 강하장으로 이동하던 중 짙은 안개로 방향을 잃은 공군수송기는 청계산 상공을 비행하던 중 추락했고, 당시 수송기에 탑승했다가 사망한 특전교육단 장병 및 교육훈련기간 중 순직한 영령 53인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 충혼비를 청계산에 건립했다. 이들 53인(특수전교육단 교관 5명, 교육생 44명, 공군부대원 4명)의 유해는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 27번 묘역에 안치돼있다.”
나는 1979년 8월, 204기로 공수교육을 받았었다. 교육기간은 총 4주인데 3주간 기본교육을 받고 마지막 주에 4번의 기본강하를 마치면 공수교육을 수료하게 된다. 그때도 마지막 주 기본강하 때 심한 돌풍으로 인해 먼저 이륙한 훈련생들이 목표지점인 미사리 모래밭을 지나 팔당호에 떨어지는 바람에 더 이상 강하하지 않고 3번의 강하만으로 수료한 적이 있었다.
충혼비를 나와 곧바로 나무계단을 오른다. 역시 계단에 눈이 쌓여있지만 오르기에 힘들지는 않다. 바위를 지나 ‘매바위(578m)’까지 올라갔는데, 다행히 먼저 온 사람들이 없어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 매봉(582.5m)까지는 이제 지척이다. 청계산의 주봉은 만경대(望景臺 618m)지만, 군사시설이 있어서 오르지 못하니 이곳이 주봉이라고 할 수 있다. 매봉에 다다르니 몇몇 먼저 온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앉아서 휴식하고 있다. 다행히 많이 춥진 않아서 휴식할 만은 하지만 사진만 몇 장 찍고 이내 하산이다.
계단에 눈이 쌓여있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앞에 젊은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었지만 이내 그들을 지나쳤다.
내려오면서 보니 원터골입구 1.1km 전에 있는 휴식장소 옆에 있던 돌탑이 무너져 내렸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건지, 누가 일부터 무너뜨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쌓으려면 쉽지 않겠다. 아무래도 마저 무너뜨린 다음 다시 쌓아야 할 것 같다.
내려가는 동안 단체로 온 듯한 사람들을 여러 팀 만났다. 서울에서 단체로 산행하기에 좋은 곳이 아마도 아차산과 청계산인 것 같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무렵 길 가운데 얼음 속으로 여자 하나가 들어가 어쩔 줄 모른다. 앞에 동료인 듯한 남자가 하나 있었지만 도와주질 못했다. 발을 보니 아이젠 없이 얼음 속으로 잘못 들어가서 미끄러워 나오질 못하는 거였다. 얼른 손을 잡아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줬다. 산을 오를 때, 특히 요즘처럼 겨울 산을 오를 때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등산로입구까지 내려와 아이젠을 벗었는데, 그곳에도 단체 등산객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다. 부지런히 올라갔다 와도 늦게야 점심을 먹을 수 있을 텐데. 뭐, 어떻게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