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18일(수)
작업할 코드가 없어서 할 일 없이 지내면서도 1주일에 한번 산행은 되도록 계속하려고 한다. 그래서 주초엔 항상 1주일간의 기상예보를 보면서 어느날 산에 가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날씨와 기온은 감안해서 이번주에는 수요일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수요일이 날씨도 맑으려니와 주말로 갈수록 다시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어서였다.
산행하는 날은 어김없이 6시 기상. 그렇지만 오늘도 산에 안 갈 핑계를 한번쯤 생각했는데, 마땅한 게 없다. 국을 데워서 떡과 함께 먹고 집에서 출발.
오늘 목적지는 관악산. 사당역에서 갈 수도 있고, 과천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지만 지난해 5월 개통한 신림선 ‘관악산역’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전에도 서울대에서 출발한 적이 있긴 하지만,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서울대 정문으로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관악산역이 개통되면서 한결 수월해졌다. 하긴, 집에서 관악산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오금역과 교대역, 신림역에서 3번 갈아타야 해서 만만한 여정은 아니다.
관악산역에 내려서 밖으로 나오니 ‘관악산공원’ 일주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산에 가는 복장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 시간에 산에 가는 사람은 나혼자 뿐이다. 그런데 웬걸 조금 오르면서 보니까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도대체 언제 올라간 거야? 물론 그들의 행선지가 관악산 정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보다 훨씬 일찍 출발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정말 부지런하다.
관악산역과 관악산공원 일주문 사이 오른쪽에는 ‘관악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왼쪽에 관악산(冠岳山) 안내문도 붙어있다.
“관악산은 관악구, 금천구와 경기도 안양시, 과천시 경계에 있는 산으로, 최고봉은 연주대(629.1m)이며 1968.1.15 건설부고시 제34호로 지정된 도시자연공원이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경기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근기오악(近畿五岳, 송도 송악, 가평 화악, 적성 감악, 포천 운악, 서울 관악) 중 하나이기도 하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한양을 에워싼 산중에서 남쪽의 뾰족한 관악산은 화덕을 가진 산으로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게 한 ‘불기운의 산’이라고 하는 유래도 있다.
산의 형태를 비록 태산은 아니나, 준령과 괴암이 중첩해 장엄함을 갖췄고, 봄철에 무리 지어 피는 철쭉꽃과 늦가을 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정기가 뛰어나 많은 효자효부와 충신열사를 배출한 명산으로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과 조선시대 신자하 선생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관악산과 인접한 삼성산은 삼성(三聖)이라고 일컬어지는 원효, 의상, 윤필이 이 산중에서 일막, 이막, 삼막 등 세 암자를 지어 수도했다는데 일막, 이막은 임진왜란 때 타버리고 지금은 삼막만 남았는데, 이것이 삼막사다.
그 외에도 1,500여 봉우리와 구릉 곳곳에 사찰(관음사, 보덕사, 호압사, 성주암, 자운암, 약수암, 연주암 등)이 산재하고 있으며, 계절마다 변화무쌍한 아름다운 경치가 있고 관문을 비롯한 각종 편익시설과 등산로가 말끔히 정비돼있어 수많은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휴식처로 그 쾌적함과 신선함은 가히 서울의 명소다.”
10분쯤 걸어 삼거리에 왔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서울둘레길로 가는 길이고, 오던 길로 곧장 가면 관악산 정상이다. 오늘은 관악산엘 가기도 작정했으니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걷는다.
다시 10분도 채 걷지 않아 연주대와 삼성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 연주대 방면으로 가면 이내 ‘관악산 호수공원’인데, 입구에는 서정주 시인의 시비(관악구에 새해가 오면)가 여전히 서있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 조그만 안내문이 있는데, 서정주 시인이 친일활동을 했기 때문에 시비의 이전철거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친일활동’을 했다는 것도 애매하지만 굳이 철거하지도 않으면서 안내문을 붙여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나라 좌파들은 죽어서 백골이 된 친일인사(그들이 그렇게 부른다)들은 그렇게 미워하면서, 지금도 살아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소위 ‘빨갱이’들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관대한지 모르겠다. ‘가재는 게 편’이라 그런 건가! 볼 때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과연 이들이 바라는 게 뭘까?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하다. 친일인사들은 내 안위를 보전하려는 뚜렷한 목적이라도 있었는데.
호수공원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구간이다. 바닥은 돌이고 잔설이 있긴 해도 별로 미끄럽지 않아서 아이젠 없이 걸었다. 왼쪽 계곡에서는 얼음 속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에 놓인 조그만 나무다리를 건너기 전에 왼쪽을 보니 ‘관악산에 얽힌 강감찬 전설’ 안내문이 붙어있다.
“관악산은 그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고려 강감찬 장군(948~1031)과 관련한 전설도 많이 지니고 있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뽑아 없앴다는 전설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을 뒷받침해주듯 관악산에서는 칡덩굴을 별로 볼 수 없고 곳곳의 바위에 아기발자국 같은 타원형 발자국들이 보인다.
고려명장 인헌공 강감찬 장군 탄생지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관악구 낙성대로 77에 사당 안국사를 지어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낙성대공원을 조성했다.”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로 오르는 길은 계단도 많고 급경사여서 걷기에 쉽지 않은데다가 눈까지 쌓여있으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래도 끝까지 오르는 동안 한번도 미끄러지지 않았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오른쪽에 전망대가 설치돼있고, 연주대와 그 옆에 조그만 암자도 보인다. 암자 앞에는 아직도 붉은색 연등이 많이 걸려있어서 마치 단풍을 보는 듯하다. 전망대에는 연주대에 대한 설명문도 있다.
“연주대(戀主臺)는 해발 629m 높이로 관악산의 깎아지른 바위벼랑 위에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 17년(877) 의상대사가 관악사를 창건하고 연주봉에 암자를 세웠기에 의상대(義湘臺)라고 했지만, 지금은 연주대라고 불린다.
연주대로 불리게 된 데에는 2가지 전설이 있다. 조선개국 후 고려유신들이 이곳에서 망국의 수도였던 개경을 바라보며 그리워했다는 이야기와, 세종대왕의 형들인 양녕대군효령대군이 왕위계승에서 밀려나자 이곳으로 입산해 경복궁을 바라보며 국운을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 연주대 축대 위에는 현재 응진전(應眞殿)이란 법당이 있다. 법당 내부에는 석가여래 삼존불상이 모셔져 있고, 응진전 옆 암벽에는 인공감실을 마련한 마애약사여래입상이 조각돼있다.”
전망대에 막 도착한 여학생 2명이 재잘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그대로 두고 정상으로 오른다. 연주암부터 가파른 계단이라서 오르기 쉽진 않지만, 어차피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 비슷한 여정을 계속해왔으니 참으면서 오를 만하다.
정상바위에는 또 다른 바위에 ‘冠岳山’이라고 쓴 정상석이 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 마음 놓고 사진을 찍었다. 바위를 오르다 우연히 정상석 뒷모습 사진도 한장 남겼다. 뒷모습을 찍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별다른 모양은 없지만, 처음이니까 기념이다.
오른쪽으로 난 좁은 바위길을 따라 응진전으로 가려는데, 기도도량이니 참배객이 아니면 출입을 삼가 달라는 안내문이 있어서 되돌아왔다. 전에도 이 안내문이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관악산에 올 때마다 내려가봤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되돌아와서 내려가려는데 막 도착한 남자가 정상석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했다. 처음엔 밑에 서서 찍어달라고 했는데, 구도를 보니 너무 애매해서 정상석까지 올라가라고 다시 찍어줬다. 이왕이면 멋있게 나오는 게 좋으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내가 원하는 만큼 찍히지 않아, 이후에는 잘 부탁하지 않는다.
정상을 밟고 사진을 찍었으니 이제 해산해야 한다.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 연주암 툇마루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셨다. 바로 뒤가 사무실이라서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문이 있어서 되도록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아직은 10시밖에 되지 않아서 점심을 먹기엔 너무 애매한 시간이다.
연주암에서 왼쪽 과천향교 방면으로 내려가면 계단이 많아 걷기에 쉽지 않을 것 같아, 오른쪽 구세군 과천교회 방면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물론 이 길도 바위가 많고 길도 애매한 구간이 있어서 쉬운 길은 아니지만 늘 그랬던 대로 내려간다. 기상관측소를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볼 때마다 한번쯤 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애당초 사람이 타려고 설치한 게 아니라니 그저 생각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