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 2023년 2월21(화) ~ 2월23일(목)
첫째날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덕유산 종주를 하려면 삿갓재대피소나 향적봉대피소 중 한곳에서 하루는 묵어야만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교통편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삿갓재대피소를 이용하는 게 더 나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양군 서상면에서 출발해야 했다. 즉, 서상면에서 하루 자고 아침 일찍 영각사 버스정류장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영각사탐방지원센터를 기점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동서울에서 서상면으로 가는 직통버스가 하루 3번이나 있었다. 서상면에서는 잠만 자면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막차(밤9시 출발)를 타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차를 타면 자정무렵에나 서상면에 도착할 수 있어서 잠 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시간에 숙소 문을 열어줄지도 알 수 없었다(하긴 사전예약을 하면 열어주긴 할 테지만). 그래서 오후 2시반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 버스도 서상면에 도착하면 저녁 무렵이었다.
출발 당일 집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해도 버스 탈 시간이 충분했지만 마침 먹을 게 마땅치 않아서 동서울터미널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낮12시에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강변역에서 내려 길 건너 터미널로 갔는데, 내부가 썰렁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여기저기 안내문도 붙어있었다. 전에 이곳에 ‘롯데리아’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점심 먹을 요량이었지만, 그곳도 이미 없어지고 비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2층으로 올라가 돈까스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식당을 나오다가 터미널 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왜 이렇게 썰렁하냐고 물었더니, 내년쯤 재개발하기 위해 입주점포들을 내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지난해 10월 서울특별시보도자료가 있었는데, 신세계동서울PFV(‘스타필드’를 운영하는 신세계프라퍼티에서 투자한 동서울터미널 개발업체)에서 40층 규모의 판매업무 복합건축물로 개발할 예정이며, 내년 말까지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2024년에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의 공약사항이기도 해서 앞으로 원활하게 추진될 것이란 부연설명도 있었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진 않아도 궁금했던 내용을 알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아무튼, 점심을 먹고도 버스출발까지 시간이 남아 이번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한잔 주문했는데, 맛은 별로이면서도 값은 꽤 비쌌다. 그래도 시간을 보내려니 그곳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출발시간이 되어 서상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탈 때면 멀미걱정 때문에 늘 앞자리를 고수하게 된다. 그런데, 28인승 우등버스에 승객은 4~5명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타산이 안 맞을 것 같은데! 그것도 하루에 3번이나 직통으로 운행한다는 게 말이 되나? 주말에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가? 괜한 걱정을 하게 됐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는 게 만만치 않았다. 터미널에서 나온 버스는 강변북로를 따라 잘 달렸는데, 한강을 건너기 위해 성수대교 진입로로 들어서면서부터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2~3분 거리인데 20~30분은 걸린 것 같다. 성수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따라 한남대교까지 가는 중에도 빨리 달리지 못했다.
한남대교를 지나면서부터는 다행히 버스전용차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옆에서 서다 가다 반복하는 승용차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쾌감도 있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잠이 깬 것은 죽암휴게소에 들를 때였다. 정차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화장실에 다녀오는 게 다였지만, 1시간 넘게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다리를 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상면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은 6시 조금 전이었다.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를 예약할 때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서상면에는 숙소가 2개 있는데, 처음엔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곳에 연락했더니 예약확정을 할 수 없으니 다음에 다시 전화해달라고 했다. 아니,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 많나? 그래서 다른 숙소를 연락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침 숙소와 같은 건물에 식당이 있어서 그곳으로 전화했더니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식당과 숙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내려가기 전에 지도를 찾아봤을 때는 여기저기 식당이 많이 있었는데, 막상 나가보니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은 주로 고기를 구워먹는 곳이라 혼자 식사하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초행길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산채비빔밥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다른 메뉴가 있었지만, 혼자 먹을 수 있는 건 비빔밥 밖에 없어서 그걸로 주문했다. 맛은 별로였지만 시장이 반찬이니까.
식사를 마치고 길 건너 있는 하나로 마트에 들러서 다음날 아침과 점심 때 먹을 거리를 사려고 했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이번엔 숙소 쪽으로 가다가 CU편의점에 들어 햄버거와 샌드위치 등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젠 뭐하지? 샤워를 하려고 했지만 숙소에서 주는 수건이 손수건만 해서 세수만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TV가 나온다고는 했지만 리모컨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포기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둘째날
영각사 버스정류장(07:40) ~ 영각탐방지원센터(0.3km, 07:51) ~ 남덕유산(3.4, 10:01) ~ 삿갓봉(3.4+0.2, 12:10) ~ 삿갓재대피소(0.9, 12:34) 총 거리 8.2km
아침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났다. 버스정류장에서 영각사로 가는 버스가 7시30분에 있다고 해서 아침을 먹고 유튜브 동영상으로 보다가 7시쯤 밖으로 나갔다. 버스정류장까지는 5분 거리여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다행히 날이 밝아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마을구경을 했다.
7시 반에 버스가 왔다. 나 말고도 마을주민 2~3명이 더 타고 10분만에 영각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산행코스가 영각사를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300m를 더 가야 한다고 해서 사찰구경을 포기했다. 그리고 영각사 탐방지원센터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거리는 400m. 10분만에 도착해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 시작이다.
처음엔 길이 아주 좋았다. 경사도 별로 없는 흙길이었다. 그렇지만 웬걸, 500m쯤 가자 길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돌로 바닥을 깔아놓았지만 경사가 점차 심해졌다.
다리를 건너 계곡을 지날 무렵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너무 일찍 나오느라고 화장실에 다녀오지 못한 탓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적당한 곳을 찾기만 하면 됐다. 마침 큰 바위 뒤에 조그만 공터가 있어서 배낭을 내려놓고 시원하게 볼일을 본 후에 다시 출발했다.
길은 점점 거칠어지고 숨도 차오른다. 맞은편 능선에는 잔설이 쌓여있고 계곡의 얼음 속으로 물소리가 들린다. 잠시 쉬면서 물소리를 동영상에 담았다.
나무데크 계단과 가파를 돌산을 올랐다. 가끔 눈을 돌려 지나온 마을을 내려다보지만 그때 뿐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험준한 산악의 연속이었다.
보기만해도 아찔한 바위산을 경사 급한 나무데크 계단을 통해 올랐다. 하긴 멀리서 보기엔 아찔해도 막상 다가가서 오르다 보면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다.
10시 무렵 길가에서 재미있는 나무를 보게 됐다. 보통 상고대라고 하면 나뭇가지에 눈이 매달려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이곳에는 숫제 얼음이 얼어있었다. 심심하기도 해서 하나씩 따먹으며 걸었다. 물론 물맛이지만.
영각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한지 2시간40분만에 남덕유산(해발1,507m)에 도착했다. 이정표상 거리는 3.4km.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남덕유산이 당일 산행 중 가장 높은 곳이라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이 될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게다가 이후부터는 언제 내렸는지 알 수 없는 눈이 쌓여있어서 위험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덕유산 조금 못간 지점에서 마주 오는 등산객을 만났었는데, 아이젠을 차고 있길래 어디부터 필요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까진 길에 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남덕유산을 지나면서부터는 꼭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내리막길이 너무 가팔라서 눈이 없어도 위험한 길이었다.
아무튼, 남덕유산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삿갓재대피소를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여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상고대 나무들이 즐비했다. 길바닥에 눈이 쌓여있고 길 양 옆으로는 크고 작은 상고대가 있어 여럿이 왔다면 한바탕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의 장소였지만, 열심히 사진만 찍으면서 걸었다.
그 후로도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었다. 오를 때는 숨이 가프고 내려갈 땐 장단지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가 삿갓재대피소를 1km 남짓 남겨 논 지점에 ‘삿갓봉 0.3km’ 이정표가 있었지만, 산이 너무 가팔라서 올라가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좀더 가니 이번에 ‘삿갓봉 0.1km’ 이정표가 또 있었다. 그래, 거리고 가깝고 경사도 완만하니까 다녀오자. 그곳엔 정상적 하나서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뭔지 알 수 없는 시설물도 있었다. 사진을 찍었으니 땡!
이제 목적지인 삿갓재대피소까지는 1km가 채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낮 12시40분쯤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했다. 산행계획을 세울 때는 오후 3시쯤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봤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이른 시간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배낭을 메고 대피소를 나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시간에 5시간 정도를 걸어서 향적봉까지 갈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을 예약도 했지만 그럴만한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피소 직원에게 접수하는데, 오늘 2명(정원 14명)이 이곳에서 묵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구석자리를 줬다. 조용하고 사생활이 가장 잘 보장될 거라고 하면서. 하긴, 오는 사람도 없는데 사생활이랄 게 있나!
대피소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샘물이 있지만 음용(飮用)은 불가능하다고 해서 3천원을 주고 2리터짜리 생수를 한병 샀다. 그러고도 손도 씻고 양치질도 하기 위해 샘물 있는 곳으로 내려갔는데, 거리는 60m라고 했지만 얼마나 가파른지 두번은 내려가고 싶지 않아서 그 후론 씻는 것도 포기했다.
그 샘물은 황강의 발원지라고 했는데, 물의 양도 아주 적고 쓰기에도 불편했다. 이래저래 한번 쓰고 말았다. 하긴 간단하게 씻을 거면 주위에 있는 눈을 이용해도 되긴 했다.
점심은 대피소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 CU편의점에서 산 햄버거를 양지바른 바위에 앉아 먹었고, 저녁 때까지 동영상을 보다가(그곳은 와이파이가 없는 곳이었다) 5시 반쯤 취사장에서 떡국을 끓여먹었다. 너무 오래 동영상만 보는 것도 지루해서 되도록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하기도 해서(5시45분 알람을 맞춰놓았다).
셋째날
삿갓재대피소(06:29) ~ 무룡산(2.1km, 07:23) ~ 칠이남쪽대기봉(2.1km, 08:05) ~ 긴급재난안전쉼터(2.0, 08:48) ~ 백암봉(2.2, 09:44) ~ 향적봉(2.1, 10:51) ~ 설천봉(0.6km, 11:03) 총 거리 11.1km
딱딱한 침상에 온몸이 배겨 뒤척이며 잠 자다가 5시45분에 맞춰놓은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침낭과 짐을 정리하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벌써 출발하는 여자가 있었다. 엊저녁에 묵은 사람이 2명이라고 했었는데, 아마도 이 여자였던 것 같다. 아직은 6시도 안 된 시간인데, 일찍 출발하네! 아침도 먹지 않고.
전날 밤 눈이 왔는지 길바닥이 하얬다. 그렇지 않아도 눈이 쌓여있는 길에 더 쌓였으니 걷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 취사장으로 가서 또 다시 떡국을 끓여먹었다.
다시 침상으로 돌아와 짐을 꾸려 6시 반 조금 전에 대피소를 나섰다. 바로 급경사에 눈이 쌓여있으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아직은 날도 밝지 않아서 헤드랜턴을 쓰고 걸었다. 산등성이를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붉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 쌓인 길에 앞서간 여자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산중에선 눈이 쌓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바람에 날리기 때문에 종종 길이 사라지기도 하는데, 다행히 발자국이 있으니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하긴 그 사람도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땐 되돌아왔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직은 해가 뜨기 전인데도 날은 서서히 밝아왔다. 7시가 되기 전에는 헤드랜턴을 끄고 걸어도 될 만했다. 그러다가 7시10분쯤부터 장관이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왼쪽엔 발 아래로 구름이 가득했다. 예전에 지리산종주를 하면서도 구름은 본적 있지만 일출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햇빛을 바다 앞산도 붉은 빛이었다.
7시24분경 무룡산(1,491.9m)에 도착했다. 이젠 날도 완전히 밝았다. 그런데, 조금 가다 보니 나보다 40분이나 먼저 출발한 여자가 쉬고 있었다. 가다가 만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고작 1시간밖에 안 걸었는데, 어찌된 거지? 자세한 이야긴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침을 먹었냐고 했더니 안 먹었다고 하길래 간식이라고 챙겨줄까 하고, 간식은 갖고 다니냐고 했더니 있다고 하길래 그냥 지나쳤다.
이제부터는 앞에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눈길에 내 발자국이 제일 먼저 찍히는 거다. 별거 아니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발자국 없는 산길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때론 뒤돌아 서서 내 발자국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발자국 없는 눈길을 걸었다. 하긴 동물발자국이 더러 있기는 했다.
멀리 산들이 겹쳐있는 모습도 또 다른 장관이다(이런 광경을 ‘산그리메’라고도 한다는데, 표준말은 아니다. ‘그리메’는 그림자의 옛말. 꽤 정감 있는 말이긴 하다).
9시14분쯤 맞은편에서 오는 3명의 남자를 만났다. 향적봉대피소에서 출발했다는데, 조금 가다가 안성탐방지원센터 쪽으로 내려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발자국 없는 산길도 끝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눈이 바람이 날려 사라진 길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됐다.
백암봉에 도착하니 ‘향적봉 2.1km’ 이정표가 있어서 앞에 보이는 저 봉우리인가 생각했었는데, 거긴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완만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어디든 비슷하게 힘든 경사 급한 산길의 연속이었다.
‘향적봉 1.1km’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드디어 저 멀리 향적봉이 보인다. 향적봉 300m 전에 향적봉대피소가 있는데, 거기부터 정말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평지를 걸을 땐 조금 힘이 나다가도 계단을 만나면 힘이 빠진다. 얼마 전까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이탓? 날씨탓? 아무튼 쉬운 길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상대적인 것, 다른 사람들도 빨리 가진 못했다.
10시50분, 드디어 향적봉(1,614m) 도착. 이번에는 정상석에서 인증샷 한장 찍으려고 했었지만 먼저 와서 찍고 있는 여자애들을 보면서 생각을 접었다. 그대신 틈을 봐서 정상석 사진만 몇 장 찍었다. 그것으로 만족! 높은 곳이라 그런지 바람도 많이 차가웠다.
이렇게 해서 이틀 동안의 덕유산 종주는 끝났다. 이제 설천봉으로 내려가 곤돌라를 타고 무주 덕유산리조트로 내려가야 한다. 설천봉까지는 600m. 여느 때 같으면 계단으로 가볍게 내려갈 수 있는 길이지만, 이곳도 눈이 쌓여서 아예 계단이 없어지고 슬로프가 생겼다.
그 사이 설천봉에서 향적봉을 오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들도 다른 때라면 산책하듯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지만, 눈이 미끄러워 아슬아슬했다. 게다가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은 더 위험해 보였다.
11시05분, 곤돌라 타는 곳에 도착. 내려가는 요금은 1만6천원이었다. 요즘도 스키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리조트에 도착해 젖은 옷을 갈아입은 다음 푸드코트로 갔다. 배낭에 점심을 먹기 위해 준비해둔 토스트가 있어서 음료만 주문하면 될 것 같아 메뉴를 보니 마땅한 게 없어서 처음으로 대추차를 주문해봤다. 나온 걸 보니 마른 대추를 몇 개 썰어 넣고 따뜻한 물을 부은 거였다. 그래도 따뜻해서 토스트와 먹기엔 괜찮았다.
여기서 무주읍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오후 1시에 있다고 해서 시간이 될 때까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무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오후5시45분 버스를 예매해 놨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산행을 마쳤기 때문에 오후3시35분 버스로 예매를 변경했었다.
낮12시 반쯤 셔틀버스 승강장으로 가서 기다리는데, 날씨도 좋고 바람도 불지 않아 좋았다. 드디어 1시에 맞춰 셔틀버스가 도착했는데, 대형버스였다. 그런데 타는 사람은 고작 4~5명. 하긴 셔틀버스니까 조금 덜 타고 괜찮겠지. 그리고, 30분만에 무주읍에 데려다 줬다.
버스정류장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관광안내소에 들어갔더니 바로 길 건너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은 버스시간까지 2시간이나 남았다. 이러 저리 둘러봐도 들어가 쉴 만한 커피숍이 없어 두리번거렸더니 택시기사가 친절하게도 터미널 안에 커피 자판기가 있다고 알려줬다. 커피를 마시려는 게 아니라 쉴 곳을 찾는 건데.
어쩔 수 없이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버스시간이 될 때까지 또 다시 동영상을 보면서 기다렸다. 버스는 제 시간에 맞춰 왔다. 아니, 그전부터 대기하고 있었는데,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해 신탄진휴게소에서 한번 정차하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청주부근부터 차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스가 전용차로로 가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길래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평일에는 오산부터, 휴일에는 신탄진부터 전용차로가 적용된다고 나와있었다. 아직 오산은 멀었는데!
오산까지 와서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데도 빠르게 가진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많이 늦지 않게 종점인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조금 힘든 덕유산 종주였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날들이었다. 다음엔 지리산 종주를 해야 하는데, 아직은 날짜를 정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