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둘째날, 에로 고개를 지나 수비리에서 머물다

by 이흥재

2018년 9월20일 (목요일)


어제 숙박비를 계산하면서,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식사까지 함께 계산했었는데, 모두 론세스바예스 입구에 있는 포사다(La Posada)에서 식사하는 거였다. 어제, 저녁 7시에 맞춰 식당으로 갔는데 곧바로 들여보내지 않고 시간을 끌더니, 식사시간에도 뭔가 푸대접 하는 느낌이 들었다. 순례자메뉴(Menú del Peregrino)를 주문해서 그런가! 그래도 다들 불평하는 사람들은 없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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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아침식사 때도 그러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기우(杞憂)였다. 아침 6시15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잤지만, 그 전부터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서 그냥 일어나 세수만 하고 일찌감치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7시5분 점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아침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요즘 매일 먹는 식사가 엇비슷한데, 오늘도 역시 구운 바게트와 각종 잼, 슬라이스 된 햄과 치즈, 그리고 사과와 주스, 우유, 커피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매일 딱딱한 바게트를 먹으려니 입천장이 헐을 까봐 염려스럽다. 그래도 걷기 위해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섰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떠나는 사람들은 6시 반(이때는 너무 어둡기는 하다)에 출발하기도 하지만, 7시 반인데도 난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다행스럽게 여행 중에도 장 운동은 정상적이어서 화장실에 들르고 양치질도 하기 위해서였다.


어제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면서 오른쪽 발목이 부어 오르고 약간의 통증이 있었지만, 상쾌한 마음으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를 나섰다. 7시 반이 지났는데 아직도 해는 뜨지 않았다. 그래도 여명(黎明)에 앞은 볼 수 있어서 카미노를 걷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오늘 목적지는 수비리(Zubiri). 어제에 비하면 거리도 짧고 난이도도 쉽지만, 하루하루가 만만하지는 않다.


카미노는 어쩌면 성당순례에 가깝다.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마다 역시 크고 작은 성당들이 있다. 출발지인 생장피드포르에도 물론 성당이 있었고, 어제 묵었던 숙소도 전에 수도원으로 쓰던 곳이라 당연히 성당이 있었다. 그리고 성당미사에는 순례자들도 많이 참여한다.


그렇지만, 종교와 없는 난 구경만 하면서 무심하게 지나칠 뿐이다. 오늘 지나는 마을마다 성당이 있었지만, 사진 한 장씩 찍고는 부지런히 걷기를 계속한다. 숙박지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도 그냥 지나치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카미노는 포장도로 옆으로 이어지거나 숲길도 있지만, 몇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자갈이 많은 너덜길이나 돌로 포장된 도로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발바닥이 매우 아프다. 어제 생긴 물집 때문인지 조그만 모래라도 신발 속으로 들어가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가능한 한 바로 신발을 벗어 모래를 털어내지만, 조금만 무시하고 걷다보면 괴로움이 몰려온다.


오늘 여정(旅程)에서 ‘고개’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 두 군데 있다. 그런데, 찻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이름이어서인지 산을 내려와서 만나는 곳이다. 하기는 그게 다행스럽기는 하다. ‘고개’란 이름만 듣고 한참을 올라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산길을 내려와서 고개를 만나니까!


한국사람 둘을 만났던 에로 고개(Alto Erro)도, 산을 지나면서 해발 840m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한번 봤었는데, 에로 고개에 도착하니 801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런! 아무튼, 에로 고개에서 만나 한국사람 중 한 명은 얼굴만 보고 지나쳤었는데,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인줄 알았다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다른 한 사람은 젊은 여자였는데, 에로 고개에 있는 간이매점에서 음료를 사 먹고 있었다. 나도 뭔가 먹으려고 들렀다가 오랜만에 얘기를 시작했다. 그 여자는 일정을 정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위에 카미노에 왔다고 했다. 엊그제 생장피드포르를 떠나 발카를로스(Valcarlos, Luzaide en euskera y oficialmente Luzaide/Valcarlos)에서 하루 머물고 어제는 에스피날(Espinal, Aurizberri en euskera y, de forma oficial, Aurizberri/Espinal)에서 잤으며, 오늘은 수리비를 지나 라라소아냐(Larrasoaña)에서 잘 거라고 했다. 짐은 아침에 숙소로 보내서 간단한 짐만 갖고 걷고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얼마 전에 그만두고 1년 정도 쉬기 위해 고향엘 내려갔다가, 특별한 계획없이 순례길에 온 거라서 걸을 수 있을 만큼씩만 걸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최종 목적지는 나처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지나 피니스테레(Finisterre, en gallego y oficialmente: Fisterra)까지라고 했다. 걷는 거리가 달라서 앞으로 카미노를 걷는 중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지는 모르지만, 원하는 대로 갔으면 좋겠다.


통계를 보면, 순례길을 걷는 한국사람들이 1년에 4~5천 명(2016년 4,534명, 2017년 5,106명) 정도로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선지 걷다보면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도 직접 대화할 기회는 많지 않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가장 많이 하거나 듣는 말은, ‘부엔 카미노(Buen Camino)!’다. 카미노를 잘 걸으라는 뜻이다. 인사말로 프랑스에서는 ‘봉주르(Bonjour)’라고 하고, 스페인에서는 ‘올라(¡Hola!)’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카미노를 아무 탈없이 잘 걸으라는 기원은 담은 ‘부엔 카미노’를 많이 하게 된다.


그렇지만, 힘들도 지쳐 있다 보면 그런 말을 하거나 대답하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다. 그래도,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해 주거나 내가 해 줄 때에도 왠지 힘이 나는 것 같다. ‘부엔 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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